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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3호 [경쟁] 갈망과 권위의 목소리, <또 다른 탄생> 이저벨 칼란다 감독 인터뷰
조현나 사진 백종헌 2025-09-19

파라스투(슈크로나 나브루즈베코바)는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조용하고 고요한 시골 마을, 노환으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죽기 전 아들을 품에 안길 바라고 혼자서 파라스투를 키우는 어머니 또한 남편을 그리워한다. 아버지의 행방을 묻기 위해 파라스투는 신화 속 존재인 파리를 만나고자 무작정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타지키스탄의 협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이저벨 칼란다 감독은 아버지의 공백으로 인해 가족이 겪는 갈등과 고난을 그린다. 가부장적 사회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대신 전통적 관습에 굴하지 않고 고독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여성의 삶을 차분히 묘사한다. 한 신인의 첫 장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담백한 필치다.

- 첫 장편으로 <또 다른 탄생>을 연출했다. 파라스투의 시선을 통해 어머니 파라빈과 가족의 고민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드러난 ‘부재한 아버지상’에 대한 나의 개인적 사유가 담겼다. 아버지의 부재가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남기는 정서적, 심리적 상흔을 탐구하고자 했다. 특히 파라스투의 어머니 파르빈(이저벨 칼란다)은 고독과 갈망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의 집단적 경험을 대변한다. 영화는 내가 어린 시절 접했던 한 여성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에서 일을 하다 가끔씩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어느 날 그가 다른 여인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조용히 고립된 삶을 살다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종종 추측했다. 누군가는 그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희생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어리석은 선택이라 했다. 또 어떤 이는 그녀가 남편을 깊이 사랑했으며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추측이 가장 끌렸고 이를 영화에 끌어들였다.

- 파라스투 가족의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파리’라는 페르시아의 신화 속 존재를 등장시켰다. 결과적으로 파리는 파라스투 가족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다.

파리라는 요정은 오직 선한 사람 앞에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내가 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타지키스탄 바닷샨 지역의 사람들이 파리의 신화를 실제로 믿는다는 걸 안 뒤부터다. ‘진정 선한 사람만이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신화적 믿음을 영화 속에서 탐구해 보고 싶었다. 가령 파라스투의 아버지는 한때 파리를 목격했다는 점으로 인해 선한 사람으로 추앙받지만, 실제 그의 모습과는 단순히 선하다고 판단하기엔 복잡한 서사를 지닌다.

- 실제 어머니의 고향인 파르주드 마을을 극의 배경지로 삼게 된 계기는.

영화는 바닷샨 주의 샥다라 계곡, 그리고 말한 대로 내 어머니의 고향인 파르주드 마을에서 촬영했다. 한정된 예산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했고, 웅장한 산에 둘러싸인 마을의 공간적 특성이 파르빈이 겪는 정서적 고립과도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실제로 이곳엔 내 외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파라스투를 연기한 슈크로나 나브루즈베코바 외에 영화에 등장한 모든 소녀가 내 사촌이며 파라스투의 할아버지는 실제 나의 할아버지다. 그 밖에도 나의 삼촌, 이모, 할머니가 출연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내겐 작은 가족 앨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어른이 아닌 파라스투라는 아이로 하여금 예견된 죽음, 상실, 사랑, 신화적 존재 등을 바라보고 경험하게 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중심에 둔 이야기들에 끌린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사티야지트 레이 감독의 <아푸 제 1부-길의 노래>, 켄 로치 감독의 <케스>, 그리고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벌집의 정령>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들 모두 아이의 시선에서 깊고 진지한 질문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아이의 순수한 눈을 통해 현실 세계의 잔혹함을 목격할 때, 우리는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고통과 상실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체험할 수 있다.

- 본인의 첫 연출작에 배우로서 참여한 경험은 어땠나. 여러 인물 중 특히 파르빈 역으로 출연하길 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나는 파르빈을 전형적인 시골 여인과는 조금 다른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내성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시집에 몰두하느라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듯한 인물로 말이다. 원래 내 친구가 파르빈을 연기하기로 했는데 여권 문제로 출국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현지에서 배우를 섭외하려 했지만 마침 수확 철이라 모두가 바빴고, 마을의 여성들은 카메라 앞에 서길 부끄러워했다. 솔직히 한 작품의 감독, 공동 프로듀서, 배우를 동시에 맡은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벅찬 경험이었다. 촬영 도중 쓰러질 정도로 아팠는데 그로 인해 급격히 체중이 줄었고, 촬영이 끝날 무렵엔 실제로 불안에 사로잡힌 파르빈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 덕에 파르빈의 감정이 누군가에겐 더 설득력 있게 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 대사를 적게 배치한 대신 파르빈과 파라스투가 시를 낭독하는 내레이션을 길게 넣었다.

페르시아와 아랍 문학에서 시인은 늘 권위 있는 목소리로 존경받아 왔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 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인 루다키는 당시 군주였던 나스르 2세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자신의 시를 통해 설득한 바 있다. 나 또한 ‘권위의 목소리’로서의 시인이라는 관습을 영화에 활용하고 싶었다. 영화에선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시 두 편을 인용했다. 파르빈은 대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가 읊는 시를 통해서만 그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쓴 그 어떤 대사보다도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시가 여성의 고통을 강력하게 전하는 권위의 목소리가 된다고 느꼈다.

-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시 ‘또 다른 탄생’을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했고, ‘포르흐 파로허저드를 추모하며’라는 문구로 영화를 마친다. 당신에게 감독이자 시인인 포르흐 파로허저드는 어떤 영감을 주는 예술가인가.

내가 ‘또 다른 탄생’이란 제목에 끌린 이유는 영화의 이야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파라스투가 친구와 함께 지붕 위에서 실제 출산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후반부에선 파르빈이 강가에서 맞이하는 영적인 재탄생을, 파라스투가 또 다시 몰래 지켜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고전 페르시아 시로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다. 나의 할아버지는 기쁠 때든, 화가 날 때든, 답답할 때든 늘 시 구절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곤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방식이 답답했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유년기에 사용하던 언어로 쓰인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현대시를 발견했다.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내겐 너무도 친근하고 가까운 언어였다. 그녀는 아름답고 정교한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대담한 필치를 보여주고, 동시에 내가 자라면서 보아 온 여성들의 고통을 담았다. 포르흐 파로허저드의 시를 통해 나는 ‘용기를 가져도 된다’는 힘을 얻었다. 시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계속 살아있게 하지 않나. 이 영화를 그녀에게 바친 것 또한 작품을 통해 그녀를 기리고, 그녀의 기억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이저벨 칼란다

이저벨 칼란다 감독은 컬럼비아대에서 영화·미디어학을 전공한 뒤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타지키스탄계 미국인 감독이다. 프레임을 가득 채우기보다 비움으로 그 공백에 집중하게 만드는 특유의 연출은 특정 대상의 부재, 그로 인한 상처를 꾸준히 다루고자 하는 감독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이저벨 칼란다 감독에 따르면 그는 “망명 3부작이란 연작을 계획 중”이며 <또 다른 탄생>이 연작의 첫 영화다. 두 번째 작품 <여전히, 우리는 살아야만 한다>는 “이주가 남기는 심리적 상흔”을 다루는 영화로 2026년 개봉을 앞뒀으며, 세 번째 작품 <부드러운 목소리의 죽음>은 현재 초기 개발 단계로 타자성에 관해 다룰 예정이다. 더욱 확장해 갈 그의 작품 세계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