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설립된 kt 스튜디오지니는 드라마 전문 제작사 이미지가 강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존재감을 키웠고, <신병>과 같은 시즌제 콘텐츠의 생명력을 이어가면서 <남남> <당신의 맛> <금쪽같은 내 스타> 등 매해 이채로운 화제작을 세공해왔으니 말이다. 이제 이 스튜디오는 영화 시장에서도 선구안을 발휘하고자 한다. 그 첫 걸음을 떼며 지난 9월11일 쇼박스와 전략적 파트너십도 맺었다. 변화를 주도한 이는 쇼박스 운영본부장, 메리크리스마스 부사장을 거쳐 kt 스튜디오지니에 당도한 정근욱 대표다. 모두가 영화 투자·제작을 주저하는 혹한기, kt 스튜디오지니는 어떻게 도전을 선언할 수 있었을까. 정근욱 대표의 답은 명료했다. “후발 주자에게는 지금이 기회다.”
- 2024년 12월에 kt 스튜디오지니 대표로 부임했다. 새 일터에서 지나온 계절을 돌아본다면.
kt 스튜디오지니는 120명 이상의 직원이 모인 큰 조직이다. 모두가 효율적인 구조로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고 적응하는 데 시간을 들인 기간이었다. 업계 전반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경각심도 크게 느꼈다. 영화 시장만큼이나 드라마 시장이 어려워 드라마 투자·제작 방식에 변화를 줬고, 숏폼 콘텐츠에 관심을 더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한 오랜 시장 조사를 거쳐 우리도 영화 투자·제작을 타진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 어떻게 가능성을 점쳤나.
영화인들은 누구나 대박을 꿈꾼다. 쇼박스에 재직하는 동안 천만 관객의 짜릿함을 맛본 기억들이 있다. (웃음) 하지만 500만 이상의 관객 수부터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만들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영화가 좋아야겠지만, 흥행 추이라는 것은 시류를 타면 생물처럼 움직인다. 누가 계획할 수도, 의도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더 중요하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해내는 종합 예술이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 배급 일정과 마케팅, 심지어 개봉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까지 잘 맞아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 결국 단계마다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kt 스튜디오지니가 담당할 수 있는 범위를 잘 세팅해 리스크를 줄이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한다면 후발 주자로서도 충분히 영화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 영화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같은 상황이기에 오히려 후발 주자도 영화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한국영화의 공급 자체가 줄어든 시점이니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혼자 하기보다는 여러 플레이어의 힘을 합쳐보고 싶다.
- 그 첫 발을 떼며 쇼박스와 영화 공동 제작을 위한 전략적 사업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우리는 중·저예산 규모의 영화로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다. 비슷한 갈망을 가진 여러 플레이어의 제안을 받았는데, 쇼박스라면 3년 이상 함께 지속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양사가 향후 3년간 총제작비의 50%씩을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총 10편의 상업 영화를 제작·배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배경은.
kt 스튜디오지니가 영화업에 진입해 자리를 잡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본다.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듯 1년 만에 몇 작품이 잘 된다고 한들 유지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3년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기간으로 두고, 1년에 3, 4편씩 총 10편은 쇼박스와 같이 해보겠다는 의지로 출발해보려고 한다.
- 영화 사업 비전과 그 접근법 또한 궁금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OTT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소비 패턴이 고도로 발전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고, 취향도 분화됐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이들이 돈을 내고 극장에 와서 관람할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해 <탈주>의 사례를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제작자인 박은경 더램프 대표와 친한 사인데, 그에게 줄거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영화가 과연 재밌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른 호흡과 문법으로 90여 분 안에 엔터테이닝한 경험을 이끌어내더라. 이렇게 작품의 소재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든, 과거에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내부적인 기준점들도 마련했다.
- 최근에는 어떤 장편영화를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나.
kt 스튜디오지니가 부가 유통한 작품 중 <콘클라베>와 <서브스턴스>가 극장 안팎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나도 두 작품을 좋아하는데, <콘클라베>가 비교적 익숙한 방식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서브스턴스>는 굉장히 파격적이다. <서브스턴스>도 주제 자체는 익숙하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공격적이고, 엔딩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엄청나다. 이런 에너지가 지금 한국영화에 부족한 부분 아닌가. 이렇게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여러 감상이 섞이고,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작품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다.
- 그렇다면 신인 창작자들, 해외 프로덕션과의 작업에도 열려있겠다.
물론이다. 시나리오를 모니터링하는 내부 패널을 세대 별로 꾸렸는데, 확실히 젊은 패널들의 시선이 다르다. 윗세대 패널들보다 게임 세계관 등 새로운 설정을 잘 받아들이고, 귀엽고 신선한 발상에 환호한다. 거기에 투자하는 것 또한 실험적인 측면이 있으나 그들이 영화로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더 잘 아는 신인 작가,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해외 공동제작도 마찬가지다. 나 또한 과거 영화 공동제작 경험이 있지만 이제 그 형태가 많이 달라졌다. 시나리오 개발부터 참여하는 등 보다 크리에이티브한 측면에서부터 협업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니즈가 특히 많다.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네트워킹 행사도 꾸릴 것이라고 들었다. 어떤 자리를 기대하나.
영화인들과 부산에서 만나면 다른 곳에서 만날 때보다 몇 배 이상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게 되지 않나. 과거 경험에 미뤄보면 그때 나눈 아이디어들이 실제 프로젝트로 연결되는 확률도 높더라. 이번 행사를 통해 kt 스튜디오지니가 앞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