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북 국제 AI·메타버스 영상제에서 많은 이의 주목을 이끈 것은 바로 서양화가 소피 오 작가의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다. 사실주의에 근거한 서양화에서 출발한 소피 오 작가는 사실성과 추상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돌가루, 점토, 아교, 먹물, 모래, 유화 등 물성이 다른 여러 재료를 활용한다. 은은한 색감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특히 비밀스러운 사슴 형상은 순수한 생명의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체험형 미디어아트 전시로 응용하기에 적합하다. 미스터리하고 장엄한 기운을 북돋는 분위기,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시각적 자극, 따뜻한 색상에 담긴 메타포까지, AI를 통해 새로운 체험으로 재탄생한 그림은 사람들의 경험과 감정을 내밀하게 연결한다.
전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작은 방 하나가 나온다. 그리고 눈을 사로잡는 안내 문구 하나. '빛과 움직임으로 다시 태어난 작품을 만나보세요' 정지된 상태의 그림을 관찰하던 시야 안으로 이내 움직이고, 확장하고, 존재하는 이미지가 채워진다. 이 영상은 인공지능, AI 소규모 언어 모델, 블록체인 기반 등 융합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니스트'에 의해 제작되었다. 보통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미디어 기반의 예술 활동을 이어온 창작자가 미디어 작품을 직접 창조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소피 오 작가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 그대로 자기만의 회화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시니스트는 그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혁신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 개개인의 기술적 역량을 강조하기보다 기술의 보편화를 촉구하니 창작자가 개성을 잃지 않는 동시에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기회가 생겨난 것이다.
많은 이들은 AI와 예술이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AI가 인간만큼 창작의 영역을 수행할 수 있는지 시험에 들기도 한다. AI가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원활한 작업물을 내면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위협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을 통한 서로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하는 관점이라면 어떨까. 회화를 감상하고 받아들이는 방식과 AI를 통해 영상적인 체험과 경험을 선사하는 방식의 이중 트랙. 두 개념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보완적 관계에 가깝고, 서로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는 협업자에 가깝다. 상상해 보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구현된 공간에 입장한다면. 모네의 '수련'이 잔뜩 만개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클림트의 '키스'하는 연인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AI와 예술이 만나는 순간 우리의 경험은 무한대로 확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