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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더 화려하게, 더 개성 있게 - 웹계 애니메이터가 현대 애니메이션에 준 영향
이우빈 2025-09-12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폭발적인 기세와 화려한 애니메이팅 기술에는 웹계 애니메이터(이하 웹계)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근래 가장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여겨지는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체인소 맨>에 직접적인 인적 기반과 애니메이팅 스타일을 다지게 했고 <귀멸의 칼날> 시리즈와 같은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웹계의 특징은 한마디로 캐릭터의 ‘움직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적인 것보다는 동적으로, 최대한 화려한 애니메이팅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셀애니메이션이 아닌 디지털 작업을 중심으로 애프터 이펙트, 포토숍, 블렌더 등의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화려한 시각적 움직임과 이펙트를 구현한다. 웹계의 시조로 알려져 있고 <천원돌파 그렌라간>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애니메이터 료치모는 웹계의 본질을 “애니메이션이 너무 좋아서, 그 움직임의 표현만을 위해 지금까지의 방식을 무시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행”(<풀 프런털>)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또한 웹계는 가능한 한 빠르게 고품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산업적 체계를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 웹계의 간략한 역사를 훑으며 그 영향이 어떤 체감으로 다가오는지 살펴보자.

웹계의 역사와 논쟁들

<메이크 어 걸>

웹계의 역사는 2000년대 중후반, 2ch와 같은 일본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발전하면서 시작됐다. 원래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체계는 과거 한국의 충무로 영화 시스템처럼 애니메이터가 특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들어가 선 긋는 연습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며 연출로 입봉하는 도제 시스템에 가까웠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어도비 플래시 툴 등으로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을 올리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들이 점차 상업 애니메이션의 제작에도 참여하게 됐다. 기존 애니메이션 업계의 도제 체계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의 주축이 된 대표적 애니메이터 중 하나가 야마시타 신고다. 전술한 2ch을 기반으로 개인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던 그의 이름이 일약 논쟁의 중심이 된 것은 <나루토 질풍전>(387화)의 작화를 담당했을 때였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속도감에 집중한 나머지 기존의 그림체와 너무 다른 결과물이 탄생했고, 이는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작화 붕괴’라는 말로 웹계에 대한 여러 부정적 의견을 촉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늘 후대에 큰 영감을 준다. 이러한 야마시타 신고의 개성에 반한 <주술회전>의 원작자 아쿠타미 게게는 <주술회전> TVA의 오프닝 애니메이션 연출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렇게 웹계가 점차 애니메이션 산업에 진입한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들이 위세를 떨친 배경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웹계의 작업 방식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기성 애니메이션 제작 체계를 극복할 수 있었고, 이는 본격적인 변화의 불씨가 됐다. <주술회전> <체인소 맨> <진격의 거인 The Final Season>을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MAPPA(마파)가 각국의 웹계 애니메이터를 대거 기용한 대표적 사례다. 마파의 오오쓰카 마나부 대표는 지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기기로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자라서 회사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며 “이러한 업무 방식 변화에 따라 효율적인 디지털 작화 과정을 위해서 센다이 지역 부근에 따로 전문 스튜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또 코로나19 이후 공간적 구애를 안 받게 된 상황이라 더 글로벌한 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지금도 아프리카에 있는 애니메이터가 우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현황을 전하기도 했다. 마파의 범용적인 인력 구조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박성후가 <극장판 주술회전 0>의 감독을 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2020년대, 신웹계의 등장과 세대의 융합

<주술회전>

2000~10년대 웹계 애니메이터들의 활약은 2020년대 무렵부터 등장한 웹계 성향의 주류 애니메이터들을 발굴하는 토대가 됐다. 기존 웹계와 달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속하여 활동하긴 하지만, “그림보다는 움직임을 만드는 데 적합”(<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의 방법 21세기 애니메이션 표현론 입문>, 다카세 야스시)한 이들을 웹계 성향(혹은 포스트 웹계)으로 통칭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체인소 맨>을 감독한 나카야마 류다. <주술회전> 19화에서 주인공 이타도리의 액션신(기술 ‘흑섬’을 사용하여 화려한 충격파 이펙트를 구현했다)을 탁월하게 연출하여 마파에 섭외된 그는 이전 세대 웹계의 단점으로 꼽혔던 작화 붕괴를 보완했다.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안정감과 웹계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동세를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된다. 9월24일 개봉하는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감독 요시하라 다쓰야 역시 CGI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기포, 연기, 공기 중의 압력 이펙트 등을 주로 활용하는 웹계 성향의 애니메이터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이처럼 기존 2D 셀애니메이션으로 아날로그 작업을 이어오던 일본의 전통적 애니메이션 업계와 웹계를 기반으로 한 3D애니메이션의 감각은 적절히 융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제작한 유포테이블은 애초 웹계를 잘 활용하지 않는 스튜디오로 언급됐지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우선 3D 레이아웃을 기본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기에 캐릭터 가이드와 초기 단계의 러프 캐릭터 배치에는 웹계의 방식을 일부 채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웹계 성향의 애니메이터 시미즈 유지가 <귀멸의 칼날> TVA 참여에 이어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공동 연출을 맡은 사실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애니메이션은 원래부터 표현을 즐기는 문화였다. 앞으로도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틀은 점점 더 무너지고, 다양한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 본다. 개인 레벨에서도 큰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료치모)라는 웹계의 미래는 실제로 다가오고 있다. 유튜브, 핀터레스트, 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뉴미디어를 통해 자기만의 작업물을 게재하여 인기를 끄는 애니메이터들이 증가하는 모양새다. 대표적 사례는 오는 9월10일 한국에도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메이크 어 걸>이다. 감독 야스다 겐쇼는 블렌더를 활용한 3D애니메이션을 웹에 공개해왔던 인물이다. 특별한 도제 시스템이나 스튜디오 제작을 거치지 않고도 장편애니메이션 개봉에 성공한 것이다. 말 그대로 신구 세대의 융합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은 더 큰 잠재력을 원기옥처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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