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5일부터 시작된 450만장 규모의 극장 할인쿠폰 사업은 정말 극장가를 살렸을까.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가 드러났다. 사업 진행 이후 극장 관객수의 유의한 상승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약 2달 동안 이뤄지는 단기성 사업이 극장가의 침체를 우상향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여러 의문이 뒤따르고도 있다. 극장가의 오랜 침체가 결국엔 비싼 영화푯값의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도 논박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3주차에 접어든 사업이기에 아직 명확한 성과를 판정하기엔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이뤄졌던 유사 사업의 결과, 현재 박스오피스의 경향, 영화계 관계자들의 반응을 종합해 한국 극장가의 현황을 살피기에는 이번 할인쿠폰 사업이 충분한 촉매가 되어주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월1일부터 3일(31주차 주말)까지의 전체 관객수는 220만2962명이었다. 올해 주말 박스오피스의 최고 스코어였다. 30주차 주말(7월25~27일) 관객수인 173만545명에 비해 47만여명 늘었다. 물론 현재 박스오피스 1위인 <좀비딸>이 7월30일에 개봉한 사실 등 여러 변수가 있기에 이전 주와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예년의 박스오피스 성적과 비교해도 유의한 결론이 나온다. 이번 31주차 주말 관객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2019년의 관객수를 따라잡긴 어렵지만, 전년 대비 상승했다. <한산: 용의 출현> <헌트> <비상선언> 등 다수의 블록버스터 한국영화가 여름 시장을 노렸던 2022년과 비슷한 수치다(표1 참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밀수> 등 한국영화 대작이 있던 2023년 31주차 주말엔 218만명, 32주차 주말엔 213만명이 극장을 찾았다. 제작비 200억~300억원 규모의 대작 영화가 줄고 <파일럿> <탈주> 등 제작비 100억원대 영화가 선전했던 2024년 31주차 주말(8월2~4일)의 관객수는 168만1009명이었으며, 32주차는 152만3667명이었다. 올해는 전반적인 영화계 투자·제작의 위축 여파로 여름 대작 영화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 한국영화들이 극장에 걸려 있던 시절의 관객수 규모를 지킨 것이다.
할인쿠폰의 소진율도 긍정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8월3일까지 멀티플렉스 4사의 할인쿠폰은 30%가량 소진됐다. 270억원 규모의 예산 중 90%가 멀티플렉스 4사에 배정됐던 만큼 전체 할인쿠폰의 소진도 유사한 수치일 것으로 추정된다. 황재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CGV는 현재 30%가량의 쿠폰을 소진”했으며 “지난 1년간 극장을 찾지 않았던 관객 10명 중 3명이 할인쿠폰을 사용해 영화를 관람”했다는 고무적인 수치를 알리기도 했다. 할인쿠폰 사업이 한동안 극장을 멀리했던 국민을 다시 극장에 돌아오게 한 유인책으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10%를 배정받은 멀티플렉스 외 비계열사 극장들도 대체로 할인쿠폰 사업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주희 엣나인필름 기획마케팅총괄이사는 할인쿠폰 사업 이후 “독립예술영화관 아트나인의 관객수가 20~30% 정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또한 “특정 작품에만 관객이 몰리기보다 상영작 전반의 관객수가 골고루 높아”졌다는 긍정적 현상도 따랐다. 전환웅 씨네큐브 선임 프래그래머에 따르면 씨네큐브는 “사업 이전보다 관객수가 약 2배 늘었고 쿠폰도 절반가량 소진”되었다. 지역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들도 대개 비슷한 의견이었다. 대구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의 김창완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진행됐던 유사 사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쿠폰이 소진”되고 있는 현황을 전했다.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의 김슬기 사무국장은 “할인쿠폰 사업 이후 며칠 동안 관심도가 있는 예술영화엔 회차당 30~50명, 비교적 관객이 적은 다큐멘터리 작품 등에도 10명 이상의 관객”이 들었다며 “사업 이전과 비교해서는 확실히 전반적인 관객수 상승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7월30일 개봉한 조정석 주연의 코미디영화 <좀비딸>이 8월6일 기준 관객수 237만5286명을 기록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할인쿠폰 사업이 진행된 후 8월2일에는 하루에만 48만 관객을 이끌었다. 아직 올해 최고의 흥행작(관객수 339만명)인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일일 최고 관객수 42만4천명(5월17일 토요일)을 훌쩍 넘긴 수치였다.
미봉책일 뿐?
이처럼 극장 할인쿠폰의 효과가 멀티플렉스와 여러 작은 영화관에 긍정적인 모객 효과를 부르고 있으나, 할인쿠폰 사업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우려와 의문이 따르고 있다. 첫째는 사업 종료 이후의 반작용이다. “워낙 상황이 어렵다 보니 산소 호흡기를 달아 단기적인 성과를 이끌긴 했으나 할인가로 극장을 찾았던 관객이 사업 종료 이후 또 극장에 올 것인지는 미지수”(주희)란 것이다.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 역시 “긴급하게 가격 이슈에 대응한 것은 의미 있는 처방이었으나 산업의 구조를 바꿀 만큼의 중장기적 논의가 없는 점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는 2021년 11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됐던 정부의 할인쿠폰 사업 추이를 비교할 수 있다. 11월1일부터 영화관 입장료 할인권 사업이 시행됐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최종 관객수 758만명을 기록하며 2021년 최고 흥행작에 올랐다. 12월 전체 관객수가 850만명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였다. 이듬해인 2022년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흥행이 1월 초까지 이어졌고, 설 연휴에 <해적: 도깨비 깃발> 등의 한국영화가 개봉하며 572만명의 관객수를 지켰다. 그러나 이후 2월엔 327만명, 3월엔 280만명, 4월엔 312만명으로 예년과 비슷하거나 저조한 수치를 보였다. 5월에 <범죄도시2>가 이례적으로 천만 관객을 기록하기 전까지 극장은 할인쿠폰 사업 기간의 활력을 잃고 다시금 만성 침체에 빠졌었다. 즉 할인쿠폰 사업의 단기적 효과는 증명된 바 있으나, 이것이 극장가 전반의 부활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에도 <서울의 봄> <파묘> 등의 천만 영화가 등장했으나 여전히 한국 극장가는 해외에 비해 코로나19 팬데믹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영화푯값 할인이 관객수 견인의 필요충분조건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진행된 유사 할인쿠폰 사업과 비교해볼 수 있다. 2020년 6월4일부터 3주 동안 목~토요일에 사용할 수 있는 극장 할인쿠폰이 배포됐으나 당월의 극장 전체 관객수는 386만명이었다. 반면에 7월엔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 등 대작 개봉으로 562만명의 전체 관객수를 기록했다. 팬데믹 기간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등 지금과 다른 전제는 있겠으나, 관객수의 저하가 영화푯값의 문제만은 아니며 극장에 걸리는 콘텐츠의 양질과 분명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영화계 관계자 A씨는 “예를 들어 6월에 개봉했던 <28년 후>가 각종 이벤트로 1만원대의 푯값을 만들었으나 관객수 36만명에 불과”했던 사례를 들며 “지금은 마침 사업 기간에 가족 단위 관객이 보기 좋은 <좀비딸>, 할리우드 대작 <F1 더 무비>, 아동용 애니메이션 <배드 가이즈2> 등의 개봉이 겹친 덕에 순간적인 관객수 상승이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장 성수기와 비수기의 차이, 민간이 주도한 할인 사업과 정부가 진행한 전 국민 대상의 사업이란 차이가 있으나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영진위가 2024년에 발표한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영화소비자의 극장 관람 빈도 감소의 이유(그림1 참고) 중 1위는 ‘볼만한 영 화가 없어서’(24.8%)였으며, 영화나 극장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가 2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셋째는 영진위 예산인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 소진에 대한 걱정이다. 요컨대 271억원(사업 운영비 1억원 포함) 규모의 할인쿠폰 사업이 영발기금으로 집행됨에 따라 영진위의 누적 예산이 고갈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 탓에 이후 영화 기획개발비·개봉 지원, 독립영화 지원, 영화제 지원 등의 기존 영진위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지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진행됐으나, 집행 예산은 영진위의 자체 재원으로 이뤄지며 생겨난 부작용이다. 영발기금은 대개 영화푯값의 3%를 거두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이하 부과금)으로 조성된다. 그외엔 영진위의 자체적인 운용 수입으로 충원된다. 2019년엔 545억원의 부과금 수입을 거뒀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꾸준히 줄어 2024년 결산 기준으론 영발기금 잔고가 130억원으로 본격적인 고갈 위기를 맞았다(표2 참고). 이에 따라 지난해엔 체육기금 300억원, 복권기금 54억원을 전입하여 영진위 예산을 충당하기도 했다. 한편 부과금 징수 조항(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직전 연도의 입장권 판매액이 연 10억원 미만인 영화 상영관’은 부과금 징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영화계 관계자 B씨는 “도 심의 주요 멀티플렉스 지점들조차 지난해에 10억원 미만의 매출을 내는 곳이 수두룩했다. 그러니 올해 거둬질 부과금은 예년보다도 적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영진위 관계자 C씨는 “할인쿠폰 사업 등의 영향으로 최근 관객 회복 추이가 나타나고 있으나 극장 관객수 회복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상태”이며 “따라서 영화산업 지원에 대한 새 정부의 의지와 영화발전기금 국고 투입, 혹은 타 재원으로부터의 전입 방안 모색 등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전했다.
넷째는 스크린독과점 등 극장 산업구조에 대한 악영향의 우려다. 영화계 관계자 D씨는 “극장이 성행이라고는 하지만, 사업 기간에 멀티플렉스 극장은 당연히 더 많은 관객을 단기간에 이끌기 위해 인기작 위주로 상영관 배정”을 할 수밖에 없으며 “저예산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는 사업 기간 전에 비해 상영관을 절반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상황을 전했다. 이번 사업이 극장 상영작의 다양성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다. 그외의 잡음도 있다.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할인쿠폰 사업의 할인권 다운로드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몰리면서 기존에 계획됐던 450만장 이상의 쿠폰이 발행됐다는 후문이 있다. 영진위는 초과 배포된 할인권이 있더라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에 대한 정부나 영진위의 추가 예산은 없다. 해당 쿠폰의 할인가를 극장이 부담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극장에 모처럼 관객이 들었으나 막상 극장이 별개의 비용을 써야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할인쿠폰 사업은 분명히 극장에 단기간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일시적인 미봉책에 가깝고 정부의 민생 회복 계획에 따른 부가 사업이었다고는 하지만, 유의한 결과를 낸 점에 대해선 영화계 관계자들의 동의가 잇따랐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순 없는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 영화산업 구조 개선의 근본적인 방식 부재, 사업 진행에 걸친 몇몇 걸림돌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 관계자 E씨의 말처럼 “여러 한계와 제약이 있더라도, 볼만한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면 관객이 온다는 희망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