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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에서 미술이 잘 구현되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 제프 맥페트리지 그래픽 아티스트 & 댄 코버트 감독
조현나 2025-08-14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 <그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처녀 자살 소동> 작업에 참여한 이력 외에도 제프 맥페트리지는 나이키, 애플, 에르메스 등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해왔다. 그의 얼굴과 이름이 낯설지라도 운동감이 느껴지는 그의 간결한 드로잉은 어딘가 기시감을 안길 것이다. 댄 코버트 감독은 자신의 첫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제프 맥페트리지를 등장시켰다. 처음으로 그림에 흥미를 느낀 유년 시절부터 칼아츠를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그랜드 로열 매거진>을 거쳐 영화, 패션, LA 카운티 공공사업부, 리옹역 등의 공공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온 그의 커리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영화에는 유흥과 불규칙한 리듬, 감정을 원료 삼아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들과 달리 정갈한 루틴을 유지하며 자신의 삶과 가족을 우선시하는 제프 맥페트리지의 태도에도 주목한다.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공유하다보면 역으로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왔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화상 인터뷰로 만난 제프 맥페트리지와 댄 코버트 감독은 이미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절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전한다.

댄 코버트, 제프 맥페트리지(왼쪽부터). ⓒAndrew Paynter

- 첫 장편으로 제프 맥페트리지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댄 코버트 개인적으로 20여년간 제프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디자이너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영화를 만들게 됐다.

- 제프 맥페트리지는 “들어오는 일의 87%를 거절한다”고 영화에서 말한 바 있는데 어떻게 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수긍하게 되었나.

제프 맥페트리지 댄이 절대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려하게 쓴 메일을 보냈다. 그가 87%, 어쩌면 92%에 가깝게 영화에 관한 대부분의 작업을 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바로 수락했다.

- 다큐멘터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영화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댄 코버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나의 역할은 대상의 바이브를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래 나는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는 편이지만 제프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의 리듬에 맞췄다.

제프 맥페트리지 내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끝도 없이 떠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댄 코버트 감독의 관점에서 내 인생에 관한 포트레이트를 제작해주는 셈이니 그의 관점이 드러나는 게 가장 중요해 보였다. 작품 외에도 가족, 삶과 같이 내게 중요한 부분들이 영화에 잘 담겼다. 그 순도를 지키고 싶어 작품에 관해 별다른 말을 얹지 않았다.

- 제프 맥페트리지의 삶과 작업을 단순히 연대기순으로 나열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4개의 파트로 나눈 이유는.

댄 코버트 제프가 박식하고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를 보여주는 방식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첫 파트에서는 구조화되지 않은 작품들로 제프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두 번째 파트부터 제프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인생이 펼쳐졌는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 팬이자 감독으로서 제프 맥페트리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댄 코버트 제프의 작업실은 창작 활동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테이블이 있고, 그곳을 지나치면 색을 칠하는 공간이 나오는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리고 수천개에 달하는 방대한 작업물이 놓여 있어 그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제프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인스타나 잡지, 책이 아니라 삶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며 영감을 받는데 그런 모습 또한 놀라웠다.

- 댄 코버트 감독이 촬영한 것 외에도 제프 맥페트리지가 남겼을 사진, 영상이 영화에 삽입됐다. 평소에 기록을 잘 해두는 편인가.

제프 맥페트리지 거의 모든 걸 아카이브한다고 보면 된다. 스캔을 하거나 사진을 찍지 않으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할 정도다. 내겐 습관이나 다름없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이 기록들을 보지 못했다. 이 영화의 스태프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그리고 사진작가 앤드루 페인터와 10여년 전부터 함께 작업해왔는데, 내가 일하는 모습을 꾸준히 담아주어 좋은 사진들이 남아 있다. 그 덕분에 이와 같은 비주얼 바이오그래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

- 영화에 등장시킬 작품은 어떻게 선별했나. 새롭게 작업한 것도 있나.

제프 맥페트리지 영화를 위해 완전히 새로 그린 그림이 없다는 게 새삼 놀랍다. 대부분의 내 작업이 보편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기에 그대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었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의 타이틀도 기존 작업을 애니메이션화해 완성한 것이다.

댄 코버트 제프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제공해줬기 때문에 그때그때 영화에 맞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고, 보여준 작품만 수천개가 넘기 때문에 그에게 추가로 과제를 주는 듯한 부담감은 안기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그가 꾸준히 그려온 작품들을 활용하는 것이 영화의 취지에도 맞고 결과적으로 더 멋진 것이 아닌가 싶다.

-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의 인터페이스 작업에 관해 묻고 싶다.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감독이 이 작업을 제안했다면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헙업한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제프 맥페트리지 내게도 정말 겁이 나는 경험이었다. <그녀>는 SF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믿을 만한 세계관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영화를 망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미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SF영화를 많이 봤다. 그래서 과연 내가 잘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바라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내가 해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자 도전이었다. 영화에서 미술이 잘 구현되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만들어진 작업물이라고 인지하기 이전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 세계를 믿고 몰입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에서 미술이 잘 구현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띄고 그로부터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내 작업이 관객들의 눈에 걸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미래를 예측해본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 영화를 보면 제프 맥페트리지는 항상 현재의 작업 방식을 고민하고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재는 어떤 작업 방식에 몰두하고 있나. 무엇을 더 해보고 싶나.

제프 맥페트리지 새로운 오일로 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한 지 1년 반 정도 됐다.

댄 코버트 제프의 오일 페인팅은 15년 넘게 그가 해온 작업으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프 맥페트리지 영화는 4년간 촬영된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에겐 나의 작업 방식이 이미 완성됐고, 내가 모든 걸 마스터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가끔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 커리어는 내가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던 기간도 포함한다. 이게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어떤 과정에 놓여 있는지 모르고, 처음으로 뭔가를 시도해보는 시기를 오히려 선호한다. 계속 시도하다보면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게 된다. 그래서 아직 정립되지 않은 이 시기를, 이 시기를 지난 이후의 나와 나의 그림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감독으로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제프 맥페트리지 내 가족을 보여준 장면이 가장 좋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컸다. 내 작품들과 함께 더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이 무척 마음에 든다.

댄 코버트 제프가 실제론 재미있는 사람인데 다큐멘터리에는 아무래도 제프의 진지한 모습이 주로 들어가게 돼 그게 아쉽다. 그러다 보니 제프가 유쾌하고 재밌는 모습을 드러낼 때 오히려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 제프 맥페트리지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인에 관해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 있나.

제프 맥페트리지 영화제작 과정 자체가 내게는 또 하나의 실험과 같았다. 마치 처음 보는 거울 앞에 나를 비추는 기분이었는데, 그 속에 내가 몰랐던 모습이 비치고 그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또 다른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화제작 과정이 단순히 이미지만 보여주거나 선형적이지 않고 무척 복합적이다보니 그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내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한다.

- 몇년 동안 한 사람에게 집중해 첫 장편을 완성한 소감은.

댄 코버트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제프가 좋아하는 작품은 계속하고 좋아하지 않는 건 그만두는 걸 보면서 나 역시 삶을 어떻게 채워왔는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또한 그가 나보다 10년 이상 먼저 살아왔기에 그의 삶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관해 그려보는 식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4년간 좋은 심리치료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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