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테토녀’, ‘에겐녀’, ‘테토남’, ‘에겐남’ 같은 신조어들이 눈에 띈다. 보통 처음 보는 인터넷 밈은 무슨 뜻인가 싶어서 찾아보는데 이 용어들은 보자마자 단박에 감이 왔다. ‘테토’는 남성호르몬이라고 (잘못)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을, ‘에겐’은 여성호르몬이라고 (잘못) 알려진 에스트로겐을 줄인 말이겠지. 그렇다면 테토남은 남성스러운 남자, 에겐녀는 여성스러운 여자, 테토녀는 남성스러운 여자, 에겐남은 여성스러운 남자라는 뜻이겠구먼. 그래도 혹시 몰라 찾아보니 짐작대로다. 이건 퇴보다! 어느 모로 보나 MBTI가 훨씬 낫다. 일단 다양성 측면에서 MBTI의 승리다. ‘테겐녀’, ‘에토녀’, ‘테겐남’, ‘에토남’까지 더한다고 해도 8가지밖에 안된다. 그에 비하면 MBTI는 16가지나 된다. 용도 면에서도 MBTI가 월등하다. 상대방이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에 관심이 있을 상황은 연애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어렵다. 반면 MBTI는 소개팅 자리에서도 쓸 수 있지만 누군가와 스몰토크가 필요할 때도 꺼내볼 수 있고 심지어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할 때도 참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ESTP와 ESFP를 오가는 내 MBTI는 꽤 마음에 들지만 ‘에겐녀’라는 테스트 결과에는 딱히 끌리지 않는다.
새로운 밈의 문제는 또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몸에서만 분비되는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몸에서만 나오는 호르몬이 아니다. 이 정도는 이제 상식일 것이다. 생물학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테토녀와 에겐남은 여성의 몸에서도 테스토스테론이 나오고 남성의 몸에도 에스트로겐이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듯하지만 여전히 성호르몬을 성별 정체성 및 수행성의 근거가 되는 물질로 착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착각은 성호르몬이 이차성징의 발현에만 관여하는 물질이라는 오해와 이어진다. 특히 에스트로겐은 그 기능과 역할이 매우 다양하다. 에스트로겐의 항염 작용은 에스트로겐 생성이 감소하는 갱년기에 발생하는 각종 신체 증상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난소적출을 한 여성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에만 에스트로겐을 주사하면 주사를 맞은 집단의 여성에게서 더 높은 인지능력이 관찰된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심부전이 있는 남성 중 에스트로겐 수치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경우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에스트로겐이 자궁내막을 두껍게 하고 유선조직을 발달시켜 프로게스테론과 함께 임신에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천재 코미디언 강유미씨가 ‘에겐남이 끌리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은 에겐남이 결국 ‘애밴남’(애를 밴 남자)이 되는 기막히는 결말을 보여준다. 비현실적인 결말이기는 하지만 에스트로겐의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 중 하나에 주목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남성이라니, 그런 에겐남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덜란드, 독일, 홍콩, 덴마크, 영국,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한국 중에서 여성의 출산 의향이 가장 낮은 국가이자 남녀간 출산 의향 격차가 가장 큰 국가는 한국이었다. 애초에 남성에게 ‘육아’ 의향도 아닌 ‘출산’ 의향을 질문한다는 사실이 의아했는데 에겐남이 ‘애밴남’이 될 수 있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