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경기도 안성시에 설립된 디마종합촬영소는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믿고 가는 곳으로 통한다. 600평대의 초대형 스튜디오부터 300평대 중형, 100평짜리 소형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크기의 세트 공간을 갖췄고 활용도가 높은 야외 촬영장, 샤워실이 포함된 VIP룸과 온돌방 등 숙박시설까지 있어 장기 촬영에도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대관 비용 덕에 많은 제작진이 우선 고려하는 장소가 되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출신의 베테랑 소장이 운영을 맡고 있는 점도 디마종합촬영소의 강점으로 뽑힌다. 이곳을 탐방지로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어떤 점이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직접 방문해 알아봤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입구에서 한화성 디마종합촬영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차를 몰고 캠퍼스 안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일반적인 교내 건물과는 분위기가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디마종합촬영소가 캠퍼스 안에 자리한 이유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현장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한화성 소장 또한 영화예술과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촬영소 앞에 다다르자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과 거대한 장비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디마는 늘 북적인다”라는 재학생들의 후기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용 중인 1스튜디오 대신 안내받은 곳은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 2스튜디오였다. 한면을 꽉 채운 크로마키가 눈길을 사로잡는 가운데 뭔가가 다르다고 체감한 것은 쾌적함이었다. 한화성 소장은 “내부 장비의 컨디션과 이용자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늘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려고 한다”며 뽀송뽀송함의 비결을 귀띔했다.
한화성 소장이 벽쪽으로 성큼 걸어가자 마치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벽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문이었고, 손잡이를 당기자 깊고 넓은 공간이 눈앞에 드러났다. 이 숨겨진 공간의 정체는 바로 멀티룸. 디마종합촬영소의 모든 스튜디오에 설치된 일종의 킥이다. 멀티룸은 한 소장이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안에 각종 조명과 촬영 장비를 보관할 수 있다. 찾기에 편리하도록 불도 달아놓았다.” 장비를 매번 나르고 정리해야 했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장의 현실적 고민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이었다.
오랜 현직자답게 한 소장은 시설 곳곳을 돌며 산업 전반에 대한 우려와 의견도 또렷이 풀어놓았다. AI 기술의 발전으로 스튜디오 촬영이 점차 줄어들 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AI가 실제 제작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앞으로 5년 정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결국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미술감독 등 제작 실무자들이 직접 공간을 구상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은 문은 또 무엇일까. 구석진 벽면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금속 문이 있다. 외부 발전차와 스튜디오 내부를 잇는 전력 케이블 전용 통로로, 다른 스튜디오에서는 본 적 없는 ‘배전 구멍’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정전이나 전력 불안정에 대비해 자체 발전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전국이 동일한 전기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급 안정도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서울은 군사 기밀망도 겸한 특급지라 순간 정전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지만, 이곳은 1급지 수준이라 트러블이 발생할 여지가 늘 있다”라는 게 한 소장의 설명이다. 전기 품질에 민감한 아날로그 장비를 보호하고 촬영 중에 생길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외부 발전차를 연결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결국 발전차도 누군가의 밥줄이다. 이왕이면 불편하지 않게 연결하도록 하자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예 벽에 구멍을 뚫고 전용 통로를 만들었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디마종합촬영소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15년 동안 단 한번도 임대료를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육적 환경 제공이라는 설립 취지에 따라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해왔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18~20% 정도 인상했다. “가파른 유류비 상승 등으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전기, 기계, 미화, 관리 등 최소 6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한 운영 구조상 인건비만으로도 매달 적지 않은 부담이 따랐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스튜디오 운영에 타격이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스튜디오의 인지도가 높고 한 소장이 오랜 시간 일하며 구축한 네트워크의 힘도 크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의 가동률이나 공실률을 단순 수치로 묻는 데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365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안된다. 한 작품이 들어오면 미술 세팅부터 촬영, 철거까지 시간이 필요한데 철거 기간에는 별도 비용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실질적인 가동 일수는 272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항상 만실이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100%가 안되고 있다.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든다.”
그 원인으로는 제작 환경 변화를 꼽았다. “여름 시장이나 명절 시즌처럼 일정한 리듬이 있었는데, 그게 다 없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제작이 멈춘 시기도 있었고. 자본이 끊기면서 회수가 어려워져 시장 전체가 위축됐다.”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스튜디오 산업은 규모가 커졌지만 한 소장은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플랫폼이 이곳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 그때 남은 시설을 누가 운영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알 수 없다.” 제작 편수 전체가 줄었고, 대작 상업영화는 더욱 적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처럼 공간을 채우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규모 자본을 들여 큰 스튜디오를 짓기보다 도시 첨단화 흐름에 맞춘 경량형·다기능형·유연한 구조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마종합촬영소의 대표작 <하이파이브>
영화 <하이파이브> 멤버들과 젊은 영춘(박진영)의 대격돌이 펼쳐진 공간이 바로 디마종합촬영소의 1스튜디오다. 600평 규모의 초대형 스테이지답게 전방위로 뻗어나가는 액션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영화 <84제곱미터> <검은 수녀들> <범죄도시3>, 시리즈 <정년이> <무빙> <수리남> 등 많은 작품이 1스튜디오를 거쳐갔다. 공개 예정작에는 김지운 감독의 <더 홀>이 있다. 1, 2스튜디오에서 진행했으며, 효율적인 동선으로 제작진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