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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스튜디오’가 필요하다
이우빈 2025-07-25

국내 스튜디오 인프라 현황, 문제점과 개선의 방향성까지

“한국의 스튜디오들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 복수의 영화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영화산업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올해와 내년 기준 주요 투자배급사의 영화 제작 편수가 10여편대로 긴축됐고, 극장업계가 존폐의 위기에 빠져 있는 등 영화업계의 불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찍는 영화가 없다는 것은 스튜디오의 가동률이 낮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현재 한국 스튜디오 인프라의 문제는 단순한 가동률과 공실률 등 수요와 공급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영화산업에 다시 돈이 돈다면 스튜디오야 당연히 다시 가동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한국에 제대로 ‘스튜디오’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제작자 A씨)라는 것이다. A씨의 말은 한국의 영화산업이 스튜디오를 단순한 ‘촬영 장소’로서의 기능으로만 바라보는 고질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본래 스튜디오란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촬영 장소 및 후반작업, 부대시설 인프라가 결집해 콘텐츠 공정 과정의 전반을 책임지는 곳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논의하는 ‘스튜디오 인프라’는 대개 ‘촬영 장소’라는 공간 임대의 차원에서 말해진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스튜디오 인프라의 난점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우선이다. 단순히 스튜디오가 얼마나 가동되고 있는지에 몰두하기보다는 스튜디오의 기능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산업 체제의 미진함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민간 스튜디오의 포화, 지역·공공 스튜디오 활용의 저하, 낙후된 스튜디오의 시설 노후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위기를 두고 대부분 극장 상영과 배급, 투자와 제작의 측면을 언급하지만, 위기의 요인으로 “국내 스튜디오 인프라의 기본적인 미흡함”(제작자 B씨)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실질적으로 찍을 수 있는 환경이 효율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면 제작비 절감과 영화 품질의 향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논리다. 국내 스튜디오 인프라의 개선을 위해 실질적인 국내 스튜디오 활용 현황을 살피고 필요한 논의점을 검토한 뒤 어떤 방향성을 설정하면 좋을지 살피고자 한다.

스튜디오 가동의 현황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5년 공개한 ‘2023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촬영 스튜디오는 80여개다. 스튜디오 운영 업체는 35여개지만, CJ ENM 스튜디오 센터(파주)에 16개의 실내 스튜디오동이 있는 것처럼 한 업체가 복수의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기에 도출된 수치다. 80여개 스튜디오 중 실내 스튜디오의 80%가량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 및 방송 제작 업체의 80% 수준이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있는 것과 유사한 지표다. 제작자 C씨는 “2019년 무렵 영화산업이 호황일 때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이후 불황이 이어지며 많이 사라졌다”라는 현장의 사정을 전했다. 이처럼 스튜디오 인프라가 수도권 위주로 형성되면서 지역의 스튜디오는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2023년 대비 2024년에 스튜디오에 들어온 작품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는 그것보다 조금 나은 상황”(양종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이다. 다른 지역의 스튜디오들도 비슷한 실정을 전해왔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촬영소 가동률이 크게 저하됐으며 전주와 같은 지역은 특히 로케이션 촬영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 촬영 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든 상황”(양수연 쿠뮤필름스튜디오코리아 본부장)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지역 촬영이 점차 줄어드는 기조를 보이면서 일어난 결과다. 대전 스튜디오큐브 역시 “OTT 콘텐츠 제작 편수가 늘면서 스튜디오 수요가 다소 보충됐으나 2023~24년 가동률이 급감”(김재동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기반조성팀 과장)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제주실내영상스튜디오도 “다른 곳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촬영 수요가 많이 줄어 운영이 어려운 게 현 상황”(제주콘텐츠진흥원 관계자 D씨)이다.

수도권에 있는 민간 운영 중심의 스튜디오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한화성 디마종합촬영소 소장은 “기존의 인지도와 네트워크 덕분에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외 고양, 파주 등 수도권에 자리 잡은 민간 스튜디오들은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 주체의 스튜디오에 비해서는 가동률 자체에 문제를 겪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즉 “한국의 스튜디오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라는 소문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침체하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쪽은 대개 지역의 공공 스튜디오들이다. 오히려 “수도권 인근의 여건이 좋은 스튜디오는 다른 촬영이 계속 뒤로 밀리면서 계약을 해놨는데도 촬영에 못 들어가는 경우”(E씨)가 잦다.

가격만이 문제는 아니다

케이필름이 운영하는 경기도 양주 스튜디오 단지의 전경. 출처 케이필름

지역 스튜디오 촬영이 줄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 돈, 제작비의 문제”(제작자 F씨)다. “전반적으로 영화제작 예산의 긴축이 이뤄지면서 운송비, 체류비 등이 추가로 소모되는 지역 촬영이 점차 줄었고, 심지어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던 각본인데 투자·사전제작 단계에서 지역 로케이션 촬영분을 없애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F씨)는 것이다. E씨도 “업계 불황이 이어지고 지역 영상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지역 촬영 인센티브가 줄어들면서 지역 촬영의 명분이 많이 사라진 상황”이며 “제작 편수가 줄어들며 특정 배우, 헤드 스태프들의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서도 지역 촬영은 더 어려워진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스튜디오의 임대료가 수도권 스튜디오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임대료 외의 제작비와 일정 문제로 지역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500평의 스튜디오의 일 이용료가 70만원(월 기준 약 2천만원)이다. 업계에선 흔히 스튜디오 평수를 월 임대료 기준으로 책정한다. 즉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의 이용료는 평당 4만원 수준(4만원×500(평)=2천만원)이란 뜻이다. 다만 “수도권 민간 스튜디오 중 여건이 괜찮은 곳은 평당 7만~8만원 수준으로 2배쯤 비싼 평균치”(E씨)를 보이고 있다.

이에 영화 촬영의 품질은 자연스레 하향할 수밖에 없다. 서울, 파주, 양주에 7개가량의 실내 스튜디오와 VFX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콘텐츠 제작사 케이필름의 김민섭 감독은 “최근 영화 제작사들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평당 4만~5만원대의 스튜디오를 찾으면서도 지역 촬영을 꺼린다. 어쩔 수 없이 수도권 근방의 경기도, 충청도 등에 있는 4만~5만원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데 그런 곳은 가격만큼 시설이 낙후된 곳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제작 실무자들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미술감독 F씨는 “평당 4만~5만원대의 스튜디오는 대개 창고형 스튜디오로 실내 세트를 짓는 일에도 제약이 크고, 방음 시설이 미흡해 날씨나 외부 상황에 따라 동시녹음이 어려운 상황까지 빈번하게 일어난다”라는 경험을 전했다.

결국 스튜디오 인프라의 활용에 있어 여러 측면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이다. 수도권에 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현상이나 스튜디오 임대료 문제를 특정 원인으로 규정하긴 어렵다.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집중되어 있다 해도 스튜디오 환경에 따른 고비용과 대형 영화, OTT 콘텐츠의 장기 대여로 인해 다수의 영화가 좋은 스튜디오를 활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에 있는 스튜디오를 활용하기엔 앞서 말한 부대 비용과 일정 조율의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개의 영화는 궁여지책으로 수도권에서 조금 벗어나 있되 싸고 시설이 낡은 스튜디오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영화 콘텐츠의 질적 하락, 지역 로케이션 촬영의 축소로 인한 콘텐츠 다양성의 저하, 제작진의 고충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최근 100억원 이상의 순제작비를 투입하는 대규모 영화의 제작이 줄어들고, 정부 차원에서도 순제작비 30억~80억원 수준의 중급 규모 영화의 투자·제작을 유도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막상 중급 규모 수준의 영화가 활용할 스튜디오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인 셈이다. “수도권 근처의 좋은 버추얼 스튜디오는 일 사용료가 1천만~5천만원에 이른다.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는 촬영소만 늘어나고 있으니, 업계가 따로 노는 상황처럼 느껴진다”(제작자 G씨)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공, 지역의 종합형 스튜디오

스튜디오 인프라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첫 단추는 지역 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종합형 스튜디오의 개발이다. 영화 제작자들에게 지역 스튜디오, 로케이션 촬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 시설을 비롯한 오픈세트 부지, 부대시설 제공, 인센티브 사업 등이 필요하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본질적으로 ‘스튜디오’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종합 스튜디오, 촬영 클러스터가 선호된다는 의미다. C씨의 의견은 간결하다. “과거 남양주종합촬영소처럼 촬영용 실내 스튜디오를 비롯해 오픈세트 부지, 편의시설, 후반작업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기만 하다면 지역이라고 해서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지역 스튜디오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부대비용의 절감을 통한 제작비 하락을 도모할 수 있고, 지금처럼 일부 수도권 인근의 스튜디오에서 어쩔 수 없이 촬영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역에 종합형 스튜디오를 짓는 일만이 정답은 아니다. 수도권의 상황을 고려한 산업의 안배가 필요하다. 30여년 동안 영화업계에 종사 중인 양종곤 부산영상위원회 사무처장은 “이미 수도권에 민간 스튜디오가 밀집해 형성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수도권 스튜디오를 새로이 설립하거나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라며 “대신 지역의 공공 스튜디오가 지역 로케이션과 결합한 스튜디오의 활용 방안과 인센티브 사업을 확장하고 중급 규모의 영화도 활용할 수 있는 버추얼 스튜디오 등 다양한 시설을 확보하여 민간과 공공이 서로 보완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동성과 접근성을 높인 수도권의 민간 스튜디오와 지역에서 장기적인 로케이션 촬영을 낮은 가격에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공 스튜디오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에 여러 공공 스튜디오는 종합형 스튜디오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우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대전 스튜디오큐브는 올해 11월에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버추얼 스튜디오를 개관하며 급변하는 콘텐츠 제작 환경에 적응할 예정이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도 개관 이후 17년이 지나 시설 노후화가 진행됨에 따라 추가적인 VFX 스튜디오 등의 확장안을 고려 중이다. 제주콘텐츠진흥원도 제주 동부 지역에 오픈 스튜디오 부지를 비롯한 ‘대규모 영상산업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양시는 지난 2월 70만㎡ 규모의 방송영상밸리를 구축해 영상 콘텐츠 원스톱 체계를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스튜디오는 역시 2026년 하반기 완공을 목표 중인 부산기장촬영소다. 부산기장촬영소는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폐관 이후 국내 대표 종합 스튜디오 건립을 위해 영진위가 추진 중인 사업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현재 부산기장촬영소의 공정률은 21%다(7월16일 기준). 1천평, 650평, 450평 규모의 실내 스튜디오 3개 동과 오픈 스튜디오 부지, 야외촬영 지원시설 등 종합 스튜디오로의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부산기장촬영소가 건립된다면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 로케이션 지원사업 등 기존의 촬영 인프라와 연계해 지역 촬영의 매력을 확보”(양종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규모에 따른 민관의 협업 필요해

최근 부산기장촬영소 설립 현장. 사진제공 영화진흥위원회

다만 스튜디오 산업 관계자들은 대규모 공공 스튜디오의 설립과 운영에 몇 가지 우려를 표했다. 우선 장기적인 운영 지속성에 대한 걱정이다. 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는 “공공기관은 아무래도 콘텐츠 자체보다 부대적인 관광 수입 등에 치중할 수 있고, 영화 기획부터 완성까지 대략 3년이 걸리지만 막상 스튜디오 관련 담당자가 1~2년 사이에 교체되면서 제작에 지연이 생기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공공기관 소속 스튜디오 관계자 I씨는 “스튜디오와 관련된 잘못된 인식”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에서 스튜디오 부지를 확보하고도 외부인과 거리 통제 등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관광산업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제약이 생기는 일이 빈번하다. 스튜디오 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부의 이해부터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줄어든 지자체와 지역 영상위원회의 인센티브 사업 예산 절감도 콘텐츠 산업과 스튜디오 체계의 필요에 대한 사회, 정부의 인식 저하와 연결되어 있다.

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도 “과거에 비해서 한국 영화산업의 민간 기술력이 상승했으며 AI, 버추얼 스튜디오 등 신기술에 대한 빠민간 스튜디오 업체 관계자 H씨도 “과거에 비해서 한국 영화산업의 민간 기술력이 상승했으며 AI, 버추얼 스튜디오 등 신기술에 대한 빠른 적응력도 필요하기에 공공기관이 설립 및 운영을 전부 도맡는 쪽보다 민간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함께 발전시키고 보수·관리하는 방향이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스튜디오 설립 후의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과거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일하기도 했던 한화성 소장은 “OTT 콘텐츠의 성장 동력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고,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상업·독립영화가 40여편 안팎이며 큰 제작비의 상업영화는 아주 적은 상황”이기에 “콘텐츠 제작의 활력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대규모 시설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차라리 민간이 주도하는 유연한 구조의 경량형 스튜디오를 더 많이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요컨대 공공 차원의 재원으로 종합형 스튜디오를 설립하더라도 민간 전문가들의 협업이 요구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콘텐츠는 기획력이다. 한 스튜디오에서 콘텐츠의 기획부터 완성까지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할지 따지는 것이 스튜디오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라는 김민섭 감독의 말처럼 기획부터 완성, 그 이후의 단계까지 영화제작 과정 전반에 실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식물이 자라기 위해 좋은 토양이 필요하듯이 재밌는 영화가 나오기 위해선 좋은 스튜디오가 필요”(B씨)하다는 말처럼 부산기장촬영소를 비롯한 미래의 국내 스튜디오가 진정한 ‘스튜디오’로 거듭나길 바라는 것만큼은 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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