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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춘의 실타래를 풀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배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이유채 사진 오계옥 2025-07-24

대만 청춘영화가 끌리는 여름, 적절한 작품이 찾아왔다. 지난 7월11일 개봉한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1997년, 10대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아이(진연비), 민(항첩여), 루커(구이태)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익숙한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열렬한 우정을 담고 있지만 마냥 반짝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대만의 혹독한 입시 문화와 빈부격차, 부모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압박까지 대만 사회의 젊은 세대가 마주한 현실까지 정면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기존의 달콤한 청춘 로맨스에서는 보기 힘든 무게감을 지닌다.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7월11일, 개봉을 기념해 전날 한국을 찾은 배우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를 만났다. 더위는 견딜 만하냐는 인사말을 건네자 “우리는 여기에 습도까지 높은 나라”에서 왔다며 쌩쌩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빼빼로와 아이스아메리카노, 손풍기를 벗 삼아 오후 4시의 야외촬영도 거뜬히 마친 이들은 짧은 수다로 에너지를 금세 충전한 뒤 인터뷰에도 활기차게 임했다. 앞으로의 대만영화를 궁금하게 만드는 맑고 단단한 젊은 얼굴들을 소개한다.

항첩여, 진연비, 구이태(왼쪽부터).

- 시나리오가 와닿는 부분이 각기 달랐을 것 같다.

구이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다른 작품 촬영 중 잠시 쉬는 동안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다 읽고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 책을 덮으면서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고, 루커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결심했다.

진연비 나는 집에서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보았는데, 캐릭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뜻 평범한 소녀처럼 보이는 인물일수록 공을 들여 숨겨진 특별함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 점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항첩여 시나리오에 소개된 옛 음악들을 머릿속에 재생한 채로 그 시절 풍경과 청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이 시나리오가 내게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두 여성이 성장통을 겪으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누구든 공감할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 작품 속 캐릭터와 자신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라고 체감했나.

진연비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많이 봤다. 나도 나에게 자주 묻는다. 지금 내 노력이 충분한지, 좋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항첩여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민과 그러지 못하는 나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도 친한 친구 앞에서는 민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행동하는 편이라 닮은 면도 있다.

구이태 정확히 반반이다.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솔직한 점은 비슷하지만 나는 영재인 루커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웃음)

- 각자 캐릭터에 몰입해가는 과정에서 촹칭션 감독과 어떤 의견을 주고받았나.

항첩여 처음 민의 단정한 쇼트커트를 확인했을 때는 너무 성숙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헤어스타일이 배경이 된 시대와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민 나이 또래는 성숙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초안 그대로 진행하게 됐다.

진연비 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는데, 사실 타인에게도 그렇다. (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늘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건 어떤 감정일까요?” 하고 감독님에게 의견을 드렸다. 이런 나를 감독님은 한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셨고 “세상에서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바로 너”라며 나를 믿어주셨다. 덕분에 내 모습이 아이에게 많이 투영됐다.

구이태 로맨스영화이기도 해서 루커와 아이가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둘이 처음 만나는 탁구장 신에서 어떤 그림이 좋을지 고민했다. 시나리오에는 루커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나와 있지 않았는데 왼손잡이라고 설정하면 오른손잡이인 아이와 탁구를 할 때 조화가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아이디어를 감독님이 지지해주셔서 루커가 왼손잡이가 됐다.

- 구이태 배우가 언급했듯, 아이와 루커는 아이가 아르바이트하는 탁구장에 루커가 찾아오면서 처음 만난다. 초보인 루커가 수준급인 아이의 공을 받지 못해 둘의 게임은 한번 만에 끝나버리고 마는데 진연비 배우는 당시 현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진연비 우리가 실제로 세번 정도 만난 뒤에 찍은 거라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는데 그게 오히려 첫 만남의 상황과 잘 맞았다. 탁구장에 들어온 루커가 아이에게 학생증을 보여주는 순간을 찍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주 잘생기고 반듯한 태도를 가진 루커에게 아이는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뺏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루커의 연습 상대가 되어 탁구대 앞에 섰을 땐 많이 긴장했을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탁구를 한다는 설정이라 실력이 출중해야 하는데 나는 이번 작품으로 라켓을 처음 잡아본 거라 걱정이 컸다. 운동신경이 좋은 구이태 배우가 더 잘 쳐 보이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는데 초보 연기를 아주 잘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 아이와 민의 첫 만남은 교실에서 이뤄진다. 이때 민은 아이에게 대뜸 둘 중 뭐가 더 좋은지를 고르는 질문을 던지는데, 아이의 대답을 듣는 민의 만족스러운 표정에서 둘이 단짝이 될 거란 예감이 흐른다.

항첩여 그렇게 ‘같은 과’인지를 알아보는 취향 테스트로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 재미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민과 아이는 닮았다고 느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내면에 품고 있는 감정은 비슷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아이와의 장면을 연기했다.

진연비 내게 이 장면은 아이가 민을 동경하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보였다. 아이는 갑자기 ‘왜 나한테 이런 걸 묻지’라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입을 떼게 만드는 민의 카리스마에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 똑 부러짐은 아이에게 없는 부분이라 더 끌렸을 것 같다.

- 세 배우가 한자리에 모이는 신도 있다. 삼각관계가 진행 중인 문구점 신에서는 아이와 루커, 민의 시선과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며 긴장감이 흐른다. 각 인물은 이 순간 무엇을 느꼈을까.

구이태 루커는 탁구채가 그려진 필통을 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탁구를 좋아하는 아이를 떠올리는 데 이 컷이 루커에게 중요한 감정 포인트였다. 루커는 연애 경험이 많은 편이 아니라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이 향하는 대로 순수하게 반응하고 행동한다.

항첩여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다고 생각해서 민이 루커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때 민은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한다. 루커가 아이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그냥 좀 가까워졌을 뿐이라고 애써 정리하고 솔직히 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진연비 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전혀 모르는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러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좋아하는 남자가 가까이 있을 때 느끼는 설렘과 부끄러움이었고 그 감정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랐다.

- 루커 어머니의 전시회 시퀀스에 이르러 세 인물의 관계는 한층 심각해진다. 관객이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도 달라질 수 있는 장면이다.

항첩여 민은 내가 상처받았으니 너에게도 상처를 주겠다는 식으로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하지만 곧바로 그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죄책감을 느낀다. 감정선이 매우 복잡하게 얽혔는데 대사보다는 최대한 눈빛에 모든 걸 담으려고 했다.

진연비 굉장한 압박감을 느낀 시퀀스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길고 긴 클로즈업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고,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연기가 쉽지 않았다. 세 인물 모두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상황이고, 이들 관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라 항첩여, 구이태 배우도 준비하면서 고민이 깊었을 거다.

구이태 몰랐던 사실을 연달아 알게 되면서 루커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당황스러움을 겪는다. 혹시 내가 이 상황을 촉발한 건 아닌지, 나도 모르는 실수를 한 건 아닌지 무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 맞은 길고양이와 같은 눈빛으로 아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 마지막에 아이가 전시회장을 뛰쳐나갈 때 루커는 부모님의 체면을 생각해 아이를 쫓아가지 못하는데 실제 나라면 달려나갔을 거다.

- 아이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는데, 각자에게 그런 ‘빅 팬’의 대상이 있다면.

항첩여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언제나 감독님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젠가 그 시선 안에 내가 담겨보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

구이태 최우식 배우의 빅 팬이다. 귀여운 역할도 잘 소화하지만 <살인자ㅇ난감>에서 살인마 캐릭터까지 소화하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기생충>도 빼놓을 수 없고. 연기 스펙트럼이 정말 넓은 배우라 롤모델이다.

진연비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겐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와 일할 기회가 거의 사라졌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지 매일 고민했다. 그 시기에 요네즈 겐시의 <LEMON>을 들으며 큰 위안을 받았고,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감사 편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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