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안효섭)는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애독자다. 작품의 인기가 사그라들었을 때도 김독자만이 유일하게 작품을 챙겨 읽었고 그는 언제나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런 김독자조차 소설의 결말, 정확히는 유중혁이 표상하는 작품의 주제 의식에 찬동하지 못한다. 김독자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작가에게 “이 소설은 최악”이라며 실망을 후기로 남겨 전송한다. 어느 저녁 직장 동료 유상아(채수빈)와 함께 퇴근하던 김독자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작가로부터 “당신이 원하는 대로 소설의 결말을 써보라”는 회신을 받는다. 이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의 내용과 똑같은 사건이 그의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소설이 곧 현실이 된 세상에선 ‘시나리오’라 불리는 신들의 미션을 완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작품의 내용과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는 그간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시작인 압구정역부터 유중혁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충무로역 시나리오까지 전진한다. 그의 여정엔 소설 속 등장인물인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이길영(권은성)이 함께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2025년 여름 한국영화 시장의 테이프를 끊는다. 싱숑 작가가 쓴 동명의 네이버시리즈 웹소설이 오랜 연재로 방대한 세계관과 개별 캐릭터의 확고한 매력을 구축한 만큼, 제작 확정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작품의 영화화를 향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기도 했다. 영화는 117분의 경제적인 러닝타임 안에 <전지적 독자 시점>을 처음 경험하는 관객에게 세계의 규칙을 효율적으로 설명해낸다. 영화는 배후성, 성좌와 같은 서사 바깥에서 층위를 더하는 설정이나 개별 캐릭터의 복잡한 사연을 생략하진 않았지만 그렇다 하여 이를 내러티브의 구체적 변인으로 작동시키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주석이 필요한 부분마다 김독자의 시점을 강화해 서사의 속도감을 드높인다. 작중 세계에 능통한 김독자에게 대부분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과 시점숏을 부여했고,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압구정역에서 충무로역에 달하는 김독자의 궤적에 동참하도록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배우 안효섭은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에서 캐릭터가 믿는 정의와 그가 느낄 법한 내면의 혼란 모두를 능숙하게 표현해낸다. 장광설로 들릴 가능성이 높은 세계관 안내를 캐릭터의 ‘대사’로 들리도록 만드는 안효섭의 전달력은 특기할 만하다. 그래서 여름 영화에 기대할 법한 시각적 스펙터클과 박진감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극장 관람은 고려할 만한 선택지일 것이다. 이야기를 매개로 수용자와 공급자 사이의 수많은 의미장을 메타적으로 확장 가능한 ‘책빙의물’ 특유의 상호텍스트성 역시 작품 곳곳에 살아 있다. 다만 영화의 전략은 효율적일지언정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재빨리 넘어가는 인물의 전사나 매듭을 명확히 짓지 않은 몇 시나리오의 해결 방식은 김독자가 풀이해주지 않는 이상 미심쩍은 의문을 남긴다. 김독자만큼 충실히 그려지지 않는 다른 캐릭터들 또한 서사 내 기능 이상의 매력을 인물로부터 발견하고 싶은 관객에겐 아쉬울 법하다.
close-up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팬덤 사이에선 ‘전독시 투어’가 성행한다. 이는 작중 배경인 서울의 지하철 3호선 노선을 찾아다니는 관광 코스다. 3호선 압구정역과 옥수역을 잇는 동호대교부터 충무로역까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서울의 풍경을 VFX와 실물 세트로 구현해낸다. 누군가의 통근길이자 등하굣길일 장소에서 스펙터클이 벌어질 때, 마치 뉴욕의 시민들이 <스파이더맨>을 볼 때 느낄 법한 생경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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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죄와 벌> 감독 김용화, 2017
<전지적 독자 시점>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는 이전에도 웹툰 원작의 <신과 함께>를 두 차례 영화화하며 ‘쌍천만’ 관객을 기록했다. 이번 영화는 속편의 제작 가능성을 충분히 시사한다는 점에서 <신과 함께> 연작의 1편인 <신과 함께-죄와 벌>을 떠올리게 한다. 신들의 각종 농간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재고하게 만든다는 점도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