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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송경원 2025-06-27

뒤늦게 <드래곤 길들이기>를 봤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워낙 실망한 적이 많아서 이번엔 당하지 않으려 했지만 얼어붙은 극장가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에 직접 확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무난한 결과물이었다. 15년 만에 돌아온 이유를 설명해줄 독특한 재해석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야망도 보이지 않는 성실한 리메이크.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정확히 기대만큼 재미있었고 그 점에서 특별했다.

실사영화 <드래곤 길들이기>의 미덕과 한계는 원작을 고스란히 따라간다는 데 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하는 거면 굳이 다시 만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대신 변명하자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물게 동어반복의 선택이 유효한 케이스다. 그리고 이 모든 저력은 고양이, 아니 투슬리스의 귀여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드래건 투슬리스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단, 귀엽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죽이지 못한 이유를 “겁에 질린 모습이 자신과 같아서”라고 했지만 투슬리스의 큰 눈망울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설득될 준비를 마친 자신을 마주한다.

2010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묘사와 만화적인 캐릭터디자인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달리 말하면 설사 그래픽이 다소 투박해 보일지라도 어설프게 실사영화를 흉내내지 않는 점이 이 작품의 추구미였다. 덕분에 실사영화가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심지어 장면의 구도마저 고스란히 따라 해도 소모적인 반복이란 느낌이 거의 없다. 대신 높아진 해상도로 좋은 이야기를 다시 감상하는 기쁨을 안긴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잇는 특별한 존재가 다름 아닌 드래곤 투슬리스다. 사실 투슬리스의 그래픽만큼은 실사와 애니메이션 사이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밀도 높은 에너지가 집약되어 있다. 에너지는 곧 애정이다. 이번 영화 역시 실사 배우들의 톤에 맞춘 사실적인 CG 같은 건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을 것이다. 여전히 귀엽고 그걸로 충분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마주하니 문득 같은 시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겹쳐 보인다. K팝, 퇴마, 로맨스 등 절대 안 섞일 것 같은 조합을 무난하게 섞어주는 건 스토리나 완성도가 아니라 호랑이 더피의 귀여움이라고, 내 멋대로 주장하는 바이다. 소재, 전개 등 취향을 탈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호랑이(와 까치 콤비)만큼은 싫어할 사람이 없으리라 확신한다.

장황한 분석을 늘어놓고 이유를 되짚어보는게 직업이지만 때때로 논리와 해석을 초월하는 흔들림을 마주할 때, 행복하다. 교통사고와도 같은 그 감정의 제일 앞자리에 귀여움이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모든 생물의 어린 시절이 그토록 귀여운 건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방식이 아닐까. 좋은 걸 찾는 덴 그만한 에너지가 드는 법이라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흠뻑 빠질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흥행을 경신 중인 서울국제도서전 소식은 우선 반갑다. 그저 좋아서 이미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음의 축제. 올해는 이유 없이 마음을 온통 앗아가는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 서점도, 극장도, 내가 사랑하는 곳들이 좀더 북적거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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