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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영화를 통해 구체화될 변화 가능성을 찾아서, 정재승 & 이미경 서울국제환경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정재현 사진 백종헌 2025-06-05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는 올해로 3년째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공동집행위원장직을 수행 중이다. 이미경 대표는 2002년부터 환경재단과 함께하며 영화제의 모든 역사에 함께 머리를 맞댄 장본인이다. 정재승 교수 또한 2021년 5월 환경재단의 이사로 임명된 이래 2022년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에코프렌즈에 위촉됐고, 이듬해부터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돼 관객과 환경영화 사이를 잇는 교두보를 지어왔다. 두 집행위원장을 만나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구체적인 면면과 영화제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들었다.

이미경, 정재승(왼쪽부터).

- 올해로 서울국제환영화제가 개최 22년을 맞이했다. 지난 22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미경 지구의 환경이 나빠졌고, 전세계적으로 환경 민감도가 높아졌다. 영화제를 개최한 초중반만 해도 환경영화라 칭할 만한 작품이 없었다. 작품 수도 많지 않았고 어렵게 작품을 초청해도 ‘이 영화가 과연 환경영화일까?’ 싶은 작품도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환경영화의 수준이 높아졌다. 또 작품의 장르와 가짓수가 아주 다양해졌다. 영화적 완성도를 챙기는 동시에 다양한 환경 스펙트럼을 담는 영화가 늘어난 것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을 높이 가지게 됐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영화제를 주관하는 환경단체로서 마주하는 유의미한 변화다. 나와 지구의 변화 가능성이 영화를 통해 구체화됐다.

정재승 성찰하는 동시에 교훈을 주되, 계몽을 주입하려 하지 않는 환경영화가 다양해졌다는 인상이다. 또 온라인 상영회를 병행하니 수많은 관객이 환경을 향한 담론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다양한 활로를 고민 중이라는 점에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모범적인 길을 가고 있지 않나 싶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아직 성장 중인 영화제에, 동시에 초청작의 수준이 높아진 영화제에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해 기쁘다.

- 두분 모두 3년째 집행위원장직을 수행 중이다. 직장인도 입사 3년차부터 많은 요소가 달리 보인다고 하지 않나. 3년차 집행위원장으로서 새롭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미경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대개 영화계 사람이 맡는다. 하지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영화를 기반으로 하여 드높이고자 하는 환경적 메시지가 분명한 축제다. 따라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재승 교수님을 모시고, 재단에서 실무만 하던 내가 나섰다. 취임 이후 세운 목표가 있다. 아직 중등교육과정에 ‘환경’이 정식 교과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이 우리 영화제의 작품을 시청해 환경 민감도를 키울 수 있도록 서울시교육청을 시작으로 전국의 교육당국과 협의했고, 전국의 교육감들이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난해만 해도 16개 시도교육청 소속 38만명의 학생들이 환경영화제 초청작을 관람했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가 닿길 희망한다.

정재승 처음엔 에코프렌즈로 영화제에 참여했다. 환경재단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돕는 일이 즐겁고 보람찼다. 그러다 집행위원장이 되었다. 좋은 영화를 함께 관람한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양질의 질문을 받는 과정이 즐겁다. 특히 영화제 관람료 등 후원금 일체를 방글라데시 맹그로브숲 조성에 기부한 지난해 영화제가 내겐 많은 공부가 됐다.

- 올해의 운영 기조 중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이미경 영화를 본 후 실천까지 이어갈 수 있는 각성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처음 재단의 대표가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앞으로 무얼 할 거냐고 물었다. 그때 기후 솔루션에 집중하겠다고 대답한 적 있다. 문제를 지적하고 원인을 공격하는 일은 쉽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개선하느냐인데, 그 행동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영화제의 슬로건이 ‘Ready, Climate, Action!’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후는 문화, 예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각국 정치 지도자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다. 기후가 모든 것을 바꾸는 중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액션, 즉 실천이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국내 최초 탄소중립영화제를 중요한 가치로 내건다. 환경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영화 안팎으로 제공하는 셈이다. 인간이 살아 있는 한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제는 이를 어떻게 감축하고자 노력하나.

이미경 탄소중립은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 동시에 이를 상쇄하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영화제의 탄소 배출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영화제작의 전 과정, 관객들이 극장으로 향할 때 먹고 마시는 식음료와 종이 사용량, 또 영화제를 위해 만드는 유인물과 플래카드 등을 들 수 있다. 영화제작에 드는 탄소 배출까지 우리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외의 요소는 얼마든지 측정 계수를 통한 추산이 가능하다. 관객이 사는 동네에서 극장까지 이동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이를 나무로 환산하면 이에 맞춰 관객이나 영화제가 맹그로브숲에 나무를 기부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정재승 그간 환경재단은 영화제를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 탄소 배출을 수치화해 줄일 수 있는 계산법이 더해지면 관객도 환경재단도 보다 친환경 참여적인 영화제를 즐길 수 있다. 변화는 앎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나. 영화제를 통해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량을 절감하는 순간 대중교통 애용 등 이를 줄이기 위한 여러 실천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뜻에 동감하는 관객들이 함께 영화제를 만들어간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되는 환경영화의 경향성은 어떠한가.

이미경 호감이 전략을 앞서길 바란다. 매년 프로그램팀에 환경단체의 전형성을 탈피할 수 있는, 고발에 그치지 않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실례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 필요하다. 친환경 전략을 도입해 이윤까지 남긴 기업의 이야기나 기후 위기의 구체적인 폐해가 드러나는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이 다음 행동을 도모할 수 있다.

정재승 올해 영화제는 카테고리 대신 키워드로 영화를 설명한다. 이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어느새 책도 도서관식 청구기호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주제간 융합이 자유롭지 않나. 더이상 ‘총류’로만 묶이지 않고.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선 쓰타야 서점처럼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웃음) 책이 서가에 배치된 방식을 통해 책 사이의 네트워크를 셈하고 키워드를 통해 책의 내용을 짐작하듯, 촘촘하고 다양한 키워드를 보는 순간 환경영화 사이의 관계와 의미장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기후 위기가 우울증을 포함한 뇌 관련 질환을 촉발한다는 학계 보고가 심심찮게 기사화된다. 뇌과학과 기후 위기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는 현재 얼마만큼 진척이 있나.

정재승 지난 10년간 기후 위기가 학계 내부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10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는 뇌과학에서 몇몇 학자들의 개인 연구에 국한됐다. 그런데 기후변화와 기후 재난이 우울증과 불안장애 유발은 물론 극단적으로는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거듭 발표되며 기후 위기가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과가 새로 창설됐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후와 뇌질환 사이의 상관성이 높다. 더이상 ‘날씨에 사람 기분이 영향을 받는다’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환경 위협의 직접적 요인인 미세플라스틱이 장내(腸內)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연구가 성행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소화기 신경계는 뇌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미세플라스틱의 남용이 소화계에 영향을 준다면 이것이 뇌 건강에 미칠 영향에 관한 연구가 최근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환경호르몬을 포함한 화학물질이 순환계, 호흡계, 신경계를 교란하는 방식과 이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지에 관한 연구가 늘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이 연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환경이 당연히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겠지’와 같은 단선적 접근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을 근거로 기후 위기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과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입증될 것이다.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추천하고 싶은 친환경적 생활 습관이 있나.

이미경 나는 일단 옷이 없다. (웃음) 10년 전부터 옷을 거의 구매하지 않는다. 대신 친구들로부터 입지 않은 옷을 물려 입거나, 오래 입을 수 있는 소재의 단색 옷을 구매해 불필요한 의류 소비를 최소화한다.

정재승 격월 냉장고 비우기를 실천 중이다. 누구든 냉장고에 오래 묵히다 버려지는 재료가 많지 않나. 그런데도 끝없이 장을 보며 냉장고를 채워넣으려는 습관이 있다. 한번은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내의 재료만으로 모든 끼니를 해결해보자. 또 영화제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자동으로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예전엔 장소 이동을 할 때 가장 빨리 도달하는 방법을 찾았다면, 지금은 최소 탄소 배출 경로를 자연스럽게 계산하게 되니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사용량이 확연히 늘었다.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사는지를 자각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해졌다.

- 두분의 실천과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노력이 “나 하나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며 친환경적 삶의 태도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사할 것 같다.

이미경 원래 비관이 가장 쉽고, 답을 찾는 실천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의 마음에 변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접근성이 좋지 않나. 영화를 통해 한번 문턱을 넘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트이길 바란다.

정재승 실질적으로 기후 위기 타파를 위해선 법의 제정이 중요하다. 개인의 노력 이상으로 시스템의 변화가 훨씬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개인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요구가 시대의 정신을 만들고, 시대의 정신이 체제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담론을 만들고 시대정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