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란 전역을 휩쓴 히잡 반대 시위가 독재 권력의 한복판에서 만들어진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담겼다. 이란 사형제도를 다룬 <사탄은 없다>(2020)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의 신작은 이란 사회에 대한 기록을 넘어서 삶과 자유를 향한 투쟁의 가장 용감한 형태이다. 영화는 테헤란의 한 중산층 가정에 싹트기 시작한 균열을 바라본다. 막 수사판사로 승진한 가장 이만(미사그 자레)은 마흐사 아미니-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의해 폭행당한 뒤 뇌출혈로 사망한 실존 인물- 의 죽음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시민들에게 사형 판결을 내릴 것을 강요받는다. 정식 판사 임명을 기다리며 하루에도 수백건에 이르는 사건들을 처리하게 된 이만은 가족의 안위와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즈메(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역시 남편의 출세가 가족을 위한 길이라 믿으며 기꺼이 가족을 체제의 통제 속에 놓아두려 한다.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가부장의 도덕적 딜레마를 전면에 배치하는 대신 나즈메와 두딸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 사나(세타레 말레키)의 시선으로 체제와 공모하는 개인의 심리가 어떻게 일상 속 폭력으로 연결되는지 묘사한다. 레즈반의 친구 사다프가 경찰에 의해 얼굴에 부상을 입은 뒤 가족의 집에 머무는 사건을 기점으로 가족의 분열이 가시화되고, 이만에게 지급된 총기가 갈등의 매개로 등장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국가 폭력 역시 선명한 민낯을 드러낸다.
영화는 인스타그램 릴, 유튜브 쇼츠 등에 떠도는 실제 시위 현장의 영상을 삽입해 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이란 현실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여성, 삶, 자유”를 외치던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과 대규모 시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레즈반과 사나가 세계를 인식하고 저항을 배워가는 현대적 성장서사의 진입점이다. 체제의 도구가 된 가장은 점차 가족 내부의 감시자이자 억압자로 돌변하지만 레즈반과 사나는 스마트폰을 통해 거리의 참상을 목격하며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주체로 자리 잡는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거스를 수 없는 세대적 물결 속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 흐르는 정의, 돌봄, 연대의 가능성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가족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조금씩 긁어내고 상징적 카오스로 진입하는 후반부는 극적인 폭력, 자동차 추격 신을 구사하며 이란영화에서 보기 드문 장르적 일탈을 선보인다. 분노와 실천의 언어로 충분히 노골적인 동시에, 이란영화의 은유적이고 시적인 전통이 스민 구조다. 배우 캐스팅부터 스태프 구성까지 체제에 저항할 용기가 선제 조건이었던- 배우 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실제 히잡 반대 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촬영 허가 없이 세트를 꾸몄고 거리에서는 정부 협조 촬영처럼 위장했으며, 체포를 피하기 위해 감독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원격으로 소통해야 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단지 하나의 픽션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이자 선언이다. 흠 없이 정교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서사적 필연성과 급박함이 미학적 요철을 메우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칸영화제는 이 작품을 위해 심사위원특별상을 신설했다. 정치범으로 구금되었다 풀려나 트로피를 안은 라술로프 감독은 “삶을 찬미하는 이 새로운 세대의 싸움이 언젠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다.
close-up
나즈메가 딸의 친구 사다프의 얼굴에 박힌 탄환 파편을 꺼내는 장면에서부터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가족의 위기는 파문처럼 서서히 번져나간다. 모하마드 라술로프의 카메라는 가족의 안정을 흔드는 존재로 사다프를 탐탁지 않게 여겨온 나즈메가 침묵 속에서 핀셋을 잡은 손끝을 묵묵히 움직이는 장면을 통해 분열된 시대 한가운데서도 움직이는 최소한의 인간됨을 모색한다. 나즈메는 사다프를 다시 거리로 돌려보내는 매정한 선택을 하지만, 그의 손에는 이제 혁명의 피가 묻었고 어떤 것도 전과 같을 수 없으리란 예감이 영화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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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작 <심플 액시던트>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택시>는 이란 정부의 검열을 피해 제작된 또 하나의 걸작이다. 체제 비판을 위트와 은유로 녹여낸 이 영화는 체제의 감시 아래서 표현의 한계를 실험하며,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과 나란히 볼 때 상이한 스타일과 미학적 실천으로 저항한 두 감독의 용기와 전략을 교차적으로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