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신 초등학교 교사·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장
“미디어를 이용하다 보면요, 위험한 일을 많이 겪어요. 그런데 그런 걸 배울 데가 없어요. 학교에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좀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2018년, 학교에서 어떤 미디어 교육을 받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중학생이 대답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의 미디어 경험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 프로젝트의 공동연구원으로서 네명의 중학생을 정기적으로 인터뷰하고 있었다. 교사로서 어린이 청소년의 미디어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그 학생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학생들이 보호주의적인 미디어 수업보다는 더 많은 미디어 창작, 활동, 체험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요청한 것은 미디어 이용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위험, 돌발 상황에서의 대처,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섬네일 제작 방법 등 보다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이었다. 이 시기까지 학교가 미디어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부터 교사 차원에서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교실로 들어왔고, 국가교육과정에도 미디어의 의미를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읽기, 저작권교육과 댓글 에티켓 등 미디어 교육 관련 내용이 다양한 교과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후반 무렵 이미 이러한 수업들은 어린이(그리고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거나 방향이 달랐던 것 같다. 미디어가 변화하는 시기였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과 더불어 미디어는 보고 듣는 것에서 삶의 기반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해 전국의 많은 교사들의 수업에서 비슷한 경험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게임 리터러시 수업을 시작한 A교사에게 게임은 예전처럼 규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A는 게이머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미디어리터러시 수업에 게임을 접목했다. 페미니즘, 팬덤 활동, 유튜브 등 자신들 각각의 미디어 경험을 토대로 교육적 필요성을 느끼고 새롭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 교사들이 늘어났다. 따라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그동안의 수업이나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고, 중요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의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모아 방향성을 제시해나가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KATOM)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부회장을 역임했고, 2022년 이후로는 회장직을 맡아 미디어 교육을 함께 기획하고, 다양한 기관 및 전문가와 네트워킹하고, 선생님들과 미디어 교육을 연구했다.
KATOM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함께 세미나, 수업 공유, 온오프라인 연수, 교육 기관 및 시도교육청 등의 정책 자문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22 개정교육과정 개정에 참여한 것이었다. 공교육에서 국가교육과정은 교육의 방향과 목표, 내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법적 근거이다. KATOM은 ‘2022 개정교육과정에 실효성 있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방안을 반영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했다. KATOM의 활동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코로나19 시기의 미디어리터러시 백신>(2020), <재난 상황에서 디지털 시민을 위한 미디어 이용 가이드라인>(2023)을 함께 만들고 배포한 것이다. ‘미디어리터러시 백신’은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터져 나오고, 갑작스럽게 학교의 휴교가 결정됐을 때 만들어졌다. 쉼 없이 흘러나오는 불길한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점령한 혐오 발언과 허위 정보들 속에서 미디어리터러시, 그리고 디지털 시민의식이야말로 중요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곧바로 KATOM의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10개 항목을 추렸다. 여기에는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판별하는 것, 허위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 등 기본적인 미디어리터러시의 원칙뿐 아니라 미디어 속 혐오에 대한 경고와 미디어 휴식에 대한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글과 영어로 된 두개의 포스터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놀라웠던 것은 이 포스터가 페이스북을 통해 순식간에 공유되고 국내외에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각종 언론뿐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 등 다양한 기관, UNESCO APCEIU(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해외 교육부 홈페이지에도 이 포스터가 업데이트되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교사로부터 자국어로 번역 및 배포를 할 수 있냐는 요청이 오기도 했다. 2020년 11월에는 유네스코의 미디어·정보 리터러시(MIL) 대회에서 발표를 했다.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현안임을 알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재난 상황에서 디지털 시민을 위한 미디어 이용 가이드라인>은 2023년 11월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애통함뿐 아니라 밤사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 사고 현장의 사진들이 아무런 필터링 없이 퍼지고, 심지어 방송 뉴스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미디어 기술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보다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KATOM의 교사들은 다시 모였고, 우리는 미디어리터러시뿐 아니라 정신의학, 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료는 2024년 제주항공 사고 때 다시 한번 여러 커뮤니티와 기관을 통해 공유되고 확산됐다. 미디어리터러시의 최종 목표는 민주주의이며, 좋은 미디어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사회참여는 미디어리터러시의 최종 역량일 것이다. 현재 KATOM은 새롭게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고, 올해에도 학교 미디어 교육 및 어린이 청소년의 미디어, 특히 지난해 완료된 어린이 청소년의 로블록스에서의 경험에 대한 연구 및 디지털 시민교육의 확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곧 많은 시민들과 공유하기를 기대한다. 학교에서의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은 짧은 지면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 사연과 교사들의 노력 위에 만들어져왔다. 문제는 학교에서 아무리 교육을 한다고 해도 기성세대가 디지털 시민의식을 거부한다면 이 교육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 공동체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 시민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학교와 시민, 기업과 정부가 좋은 미디어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노력하기를 기대한다. 지나치게 계몽적인 발언 같지만 21세기의 불안정한 미래 앞에서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인권을 찾고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을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