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방송물 중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콘텐츠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경제적 개념으로 접근하여 공중파에서는 광고가 붙는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에 밀려 유아콘텐츠는 거의 없어진 것과 같다. (중략) 문화정체성을 제고하는 일은 방송국의 자율성에 귀속되어 있지만 한정된 방송매체에 노출되는 대중은 제한된 선택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어린이 콘텐츠 부재에 대한 제안: 애니메이션 중심으로’, 안종혁, 김효용)
애니메이션 혹은 학습 콘텐츠에 치중
공중파 방송 3사를 비롯한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채널 등에서 어린이를 타깃화한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등원·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위한 아침 프로그램부터 하원·하교를 마친 이들을 위한 오후 시간대의 만화영화, 저녁과 주말에 방영되는 어린이 드라마, 어린이 예능까지 형식과 구성, 기획과 성격에 다양성이 담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학습용 시사교양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압축됐다. 보편적으로 아동용으로 편성되는 만화영화마저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이나 OTT 플랫폼에 책임을 위임하면서 사실상 프로그램 소재이자 주제로서 어린이가 배제된 상태다. 지난해 발간한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에 관한 고시’(방송통신위원회고시 제2024-6호, 일부개정)에 의하면 지상파방송 사업자와 종합편성 방송채널 사업자에 한해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평일 오전 7~9시, 오후 5~8시, 주말 및 공휴일 오전 7시30분~11시, 오후 2~8시 사이에 편성하는 것을 권한다. 이 시간대에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면 편성시간의 150%로 인정하는 특혜를 준다. 각 방송국이 의무 편성 비율을 원활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다만 해당 의무는 ‘아동청소년’이라는 주체성보다는 ‘국내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업 지원 측면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애니메이션 및 대중음악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고시하는 비율 이상으로 편성해야 한다’라는 방송법 시행령 제57조 제2항의 목적성을 가장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어린이 시청자는 선택권이 좁아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교양과 애니메이션 모두 아이들에게 유용하지만 현실적인 당사자성을 나누기엔 한계가 있다. 어른들의 것과 비교하면 형식적, 구조적 다양성도 현저히 떨어진다. 아이들은 콘텐츠 다양성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저 좁은 길 위에서 부유할 뿐이다.
여기서 물음이 생긴다. 수익성이 중요한 방송가에서 상대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어린이 프로그램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 아닐까. 왜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방송프로그램이 특정 집단이나 세대의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마주하는 세상을 골몰할 기회, 개인의 문화적 감수성을 사회적 주제로 확장시킬 장을 만든다는 의미다. 어린이들은,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아이들은 어른과 사회가 자신들의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보호해주는지 도처에 널린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어린이가 중요한 주제 의식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MBC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한 <전파견문록>은 일반인 어린이가 퀴즈 출제자로 등장해 특정 단어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를 설명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가수, 배우, 방송인 등 성인 게스트들이 어린 출제자의 엉뚱하고 모호한 묘사를 들은 뒤 정답을 맞히는 과정은 어린이 시선에 비치는 통념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하고, 성인에게 당연해지고 견고해진 선입견을 깨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이들 스스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 주관을 표현하는 자리는 2006년 <환상의 짝꿍-사랑의 교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대중적 사랑을 받은 <호기심 천국>은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주축을 쌓아올렸다. 방귀를 많이 모으면 진짜로 불을 지필 수 있는지, 만화처럼 풍선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지, 10번 접을 수 있는 종이가 있는지. <호기심 천국>의 호기심 주인공이 꼭 어린이여야만 했던 건 아니지만 재기발랄함이 주무기였던 기획의 특성대로 프로그램은 주로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예측 불가한 질문들을 좇았다. 아무도 경청하지 않던 궁금증이 프로그램 소재로 채택되는 순간, 나아가 비용과 예산, 인력을 투입해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공식적으로 방영되는 순간 아이들의 제안은 은연중 어엿한 아이디어로 인지된다. 대중의 일상에 교묘하게 스며들어 긍·부정적 이미지를 결정하는 게 미디어의 위력이라면 <호기심 천국> 은 어린이의 말과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대변했던 KBS 드라마 <성장드라마 반올림 #1>은 첫화에서 무려 옥림(고아라)의 초경을 다룬다. 어른의 로맨스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 요즘의 ‘하이틴’ 시리즈와 달리 <성장드라마 반올림 #1>은 애정 전선이나 교우 관계뿐만 아니라 신체에 드러나는 생물학적 변화, 정서적 성장, 성교육까지 아울렀다. 현실 속에서 10대 청소년이 직면하는 문제를 응당 알려줘야 할 어른들의 책임을 드라마의 형태로 실현한 것이다.
볼거리 여백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방송가가 유아동 애니메이션과 학습용 프로그램에 편중된 현재, 아동청소년들은 제 연령에 맞는 볼거리를 찾지 못하고 예비 성인으로만 존재한다. 언젠가 15세이용가를 볼 수 있는 초등학생, 언젠가 청소년이용불가를 볼 수 있는 중고등학생으로. 어린이 시청자의 몫이 현저히 작은 문제는 조용히 침묵되고, 어른들은 어디선가 흘러나온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를 보는 아이들을 꾸짖고 나무란다. 전문가와 함께 아이들의 속내를 들어보는 육아 예능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와 교육 예능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도 아동청소년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동시에 ‘요즘 애들’을 문제화하며 의도치 않게 특정 이미지를 고착시킨다. 다양한 어린이 사례를 접할 기회가 없는 이들은 오직 미디어에 비친 부정적인 어린이 상(狀)만이 진실이라 믿고 만다. 그렇다면 이 볼거리 여백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방송가에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평가받은 어린이 콘텐츠는 결국 모두에게 열린 곳, 유튜브로 향한다. 따뜻한 사회임을 증명하기 위해 어른들에 의해 사회 실험 연약한 객체가 되거나, 매운 음식을 힘겹게 먹는 먹방의 주인이 되거나, 어른들의 춤을 그대로 따라 추는 랜덤 플레이 댄스의 주인공이 된다. 아동청소년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 콘텐츠는 어린이를 어린이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보다는 어른들 콘텐츠에 구분 없이 뒤섞인 채 (마치 어린이들이 어른인 것처럼) 멀리서 관망하며 손쉽게 평가하도록 만들 뿐이다. 이제는 재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울어진 편성표는 어린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좁은 입지 속에서도 아무 불평하지 않는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볼 욕심을 배려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글에서 미디어리터러시와 <소년의 시간>을 통해 ‘어린이 당사자성’을 다룬 스토리의 조건에 대한 논의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