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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다른 영화 <파과>의 무엇 - 민규동 감독 × 구병모 작가 대담 ➀
조현나 사진 오계옥 2025-05-08

- 사진 촬영을 할 때 보니 두분이 무척 가까워 보이던데.

구병모 실은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이다. (웃음)

민규동 오기 전에 초고를 언제 썼나 살펴보니 2019년 7월이더라. 그로부터 영화가 나오기까지 6여년이 걸렸고 소설은 훨씬 전에 읽었다. 책을 기반으로 영화화할 수 있는 수많은 버전을 떠올리면서 작가님을 뵙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게 우연과 필연이 합쳐진 기적처럼 느껴진다.

구병모 감사하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진 감독님을 뵙지 않는 게 작품에 더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영화가 공개된 뒤 대면한 이 자리가 반갑다.

소설과 다른 영화 <파과>의 무엇

- 영화 <파과>를 본 원작자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구병모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끝없이 나와서 ‘이 집은 우정 출연과 특별 출연의 맛집이구나’라는 것이었다. 감독님이 얼마나 인망이 두터운지 알 수 있었다. 또한 이혜영 배우가 스크린에 조각으로 존재해주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로그라인’인데, <파과>는 로그라인만 놓고 볼 때 매력적이라며 여기저기서 눈독 들이는 소설이었다. 여러 제작사와 감독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파과>가 단순해 보일 순 있지만 실은 그 안에 여러 겹의 레이어가 겹쳐 있고 삽입된 상징과 함축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만큼 영상으로 빚어내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라 짐작했다.

- 소설을 영화로 옮기며 각색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민규동 어쩌다보니 136고까지 쓰게 됐다. 극의 시간대를 근미래로 설정하거나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고 인물의 출신 배경을 바꿔보기도 했다. 소설 <파과>의 특징은 두세 문장의 지문만으로도 영화 한편을 만들 수 있을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지금의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서사와 설정을 떠올리는 시간을 길게 가졌었다.

구병모 처음부터 감독님과 만나지 않겠다고 의견을 표했다. 뮤지컬 제작이 결정됐을 때도 뮤지컬 연출가를 만나지 않았다. 소설은 내가 썼지만 뮤지컬 무대에서 구현된 건 뮤지컬 연출가가 한 것이고, 영화에 등장한 건 감독이 한 것이라는 마인드이기 때문에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연출가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줘야지 자칫 원작자로서 말을 잘못 얹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혀 의견을 내지 않았고 그 덕에 영화를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만큼의 결과물이 나온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감독님이 <소설> 파과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작가님이 영화 <파과>에서의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준다면.

민규동 영화에 들어가지 않은 두 장면을 꼽고 싶다. 소설에선 과거 에피소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것이 내겐 무척 매력적이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조각과 류의 베드신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진혼의 풍경이라고 느꼈다. 나머지 하나는 조각이 아버지가 누구라고 묘사되지 않은 아이를 입양 보내고 아기 사진까지 태워버리면서 지켜야 할 존재의 흔적을 지우고 더 깊은 고독의 길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늘 봐왔던 장르물 속 고독한 킬러가 땅에 발붙인 존재로서 입체적으로 묘사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부분을 마지막까지 영화에서 표현해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다.

구병모 나 역시 소설에 없는 혹은 소설과 다르게 그려진 장면들이 좋았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강 선생의 딸 해니가 발표회에서 발표를 하는 일련의 장면과 영화에서의 에필로그 신이다. 연출자의 고민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 선택에 동의가 됐고 박진감도 넘쳐 흥미롭게 봤다.

- 조각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노년 여성 킬러라는 점이다. 킬러는 몸을 잘 쓸 줄 알아야 하는 직종인데 노년의 인물에게 그런 예리한 움직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 간극을 조율하기 위해 각각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구병모 <파과>를 쓸 당시 중요하게 생각한 건 현재 내가 35살의 젊은 나이이니 내 기준에서 상황을 판단하거나 추측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노년의 내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대부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했다. 노년 여성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른다는 건 일종의 판타지다. 그래서 노인을 너무 약하게 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심리나 행동 면에서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고자 했다. 영화 <파과>의 플롯이 공개됐을 때 조각의 나이를 두고 ‘60대가 무슨 노인이냐’고들 하더라. 그런데 내가 소설을 쓸 당시에는 60대가 노인에 해당했다.

민규동 그사이 인식이 변화해서 요즘엔 60대를 노인이라고 하지 않긴 한다. 나도 조각의 정확한 나이보다는 그가 노인이라는 개념에 집중했다. <파과>를 수십년 후에 볼 관객도 있을 테고 해외에서 관람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보편적 맥락에서 조각이 노인이라는 설정이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연출하려고 했다. 조각은 일종의 자경단인데 늘 죽음을 불사하며 일하다보니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킬러들의 세계 안에서 유효기간이 다한 퇴물 취급을 받는다. 신성방역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 손 실장(김강우)의 태도가 특히 그렇고 투우는 조각을 노인, 할머니라고 칭한다. 그런 여러 가지 요소 덕에 관객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봤다.

- 투우와 조각의 관계가 소설과 영화에서 조금 다르게 그려진다. 서로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더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데, 이에 관해 원작자와 감독으로서 설정한 바를 들려준다면.

구병모 그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계속 피해왔다.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는 지점이어서다. 책에 정답이 나와 있으면 한번 읽고 덮은 뒤 잊어버리기가 쉽기 때문에 끝까지 주인공의 정체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번 질문은 노코멘트하겠다. 캐릭터의 일부를 불분명하게 두는 건 서술 전략이자 소설의 매력 포인트인데 영화에서는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새롭게 구현해야 하는 입장에서 무척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규동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소설은 거의 설명이 없다. 소설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잠시 덮어뒀다 나중에 다시 읽어도 되고 내 속도대로 천천히 읽다 모르겠으면 앞장부터 또 읽을 수 있는데 영화는 곧바로 지나가버린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기면 뒤의 서사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소설과 영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계라는 걸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영화 <파과>는 처음엔 서부영화처럼 쉽게 전개된다. 전설적인 최고의 총잡이가 나이가 들고 손이 떨려 총을 잘 다루지 못하게 됐는데 새로 들어온 한 떠돌이 신입이 대결을 청한다. 최고의 총잡이가 제대로 상대해주질 않자 신입은 여기저기 총을 쏴대며 자신과 대적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만든다. 그렇다면 신입은 왜 전설의 총잡이와 대결을 벌이고 싶어 한 것일까. 그의 인생을 흔들 만큼 큰 트라우마로 자리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신참 총잡이인 투우의 시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기에 투우의 세계를 조각의 것만큼 견고하게 형성해야만 했다.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투우의 출발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거쳤다.

공간과 장면의 묘사

- 소설에선 신성방역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 구병모 작가가 상상했던 신성방역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구병모 내가 구상한 신성방역은 노후한 건물에 위치하긴 했지만 지하로 들어가진 않았다. 작은 규모의 공간으로 안쪽에 사무실이 하나 배치된 구조를 생각했다. 영화 속 신성방역에 등장한 다이얼로 돌리는 금고나 소파, 집기류 같은 사소한 옛날식 소품의 디테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신성방역과 관련해 또 하나 주의 깊게 본 건 소설 속의 류와 조각은 방역이 남을 해치는 악행인 걸 인식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의 조각은 이를 신성한 작업이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어떤 관객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동 신성방역은 만리동 고갯길에 있는, 인쇄 공장 사이의 오래된 건물 지하공간을 찾았다. 그래서 45년 넘게 바뀐 것이 없고 옛것을 고수하는 조각의 세계관에 딱 걸맞은 공간으로 설정했다. 어느 도시의 어떤 공간인지 특정되지 않는 장소로 묘사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작가님 말씀대로 신성방역이 경직된 프로파간다로서의 정의 구현 단체가 아니어야 된다는 지점엔 이견 없이 동의한다. 그래서 조각이 자신과 투우가 지옥행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캐릭터로 시작했다. 다만 의뢰가 들어오면 어떤 사람이든 다 죽인다고 설정하면 너무 혼란스럽지 않나. 그래서 이 사람을 살해해도 될 만한가에 관한 기준이 필요했고 이를 판단하는 역할을 조각이 손 실장에게 일임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손 실장은 신성방역에서 조각을 몰아내고 싶어 하는 인물이고, 방역을 진행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도 조각과 상이해 서로 갈등을 빚게 된다. 이런 식으로 <파과>는 외적으로는 젊은 손 실장과 나이 든 조각간의 대결을 그리는 한편, 투우와 조각의 관계 역시 풀어나가는 두개의 축으로 설정을 가져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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