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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랑이 너에게 하는 일, <바이러스> 강이관 감독
남선우 사진 백종헌 2025-05-08

그 사람이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그 사람이었다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말. <바이러스>의 인물들은 당당하게 할 수 있으리라. 호르몬을 교란해 눈앞의 대상에게 푹 빠져버리게 하는 일명 ‘톡소 바이러스’에 전염되었으니 말이다. 이 바이러스는 얼마나 강력한지 맘에 안 들던 소개팅 상대, 광고성 메시지만 보내던 동창, 난생처음 만난 낯선 남자를 그냥 귀여워 보이게 만든다. 연애에 관심 없던 택선(배두나)이 이 증상의 피해자다. 그로 인한 답 없는 애정 공세를 멈춰줄 사람은 오직 이균 박사(김윤석)뿐. 전작 <사과>에서 부부를, <범죄소년>에서 모자를 어긋나게 한 채 응시한 강이관 감독이 <바이러스>에서는 사랑할 것 같지 않던 두 남녀를 마주 세웠다. 그들이 사랑하는 동안 힘을 얻길 바라면서. 감염과 치유의 로드무비이자 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로맨틱코미디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 원작은 어떻게 접했나.

<범죄소년>을 끝내니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지인이 이지민 작가의 소설을 추천했다. 도서관에 가니 지인이 소개한 책은 없었고, 딱 한권 남아 있던 이지민 작가의 책이 바로 <청춘극한기>였다. 그렇게 책을 빌려와 읽었는데 금방 잘 읽혔다. 컨셉이 흥미로워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 첫 문장이 떠오르는 컨셉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시나리오에 붙었던 원제도 <사랑은 바이러스>였다고.

그만큼 사랑을 바이러스에 은유한 원작이 매력적이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이건 감염자인 택선이 생존을 위해 치료제를 구하러 다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보통은 주인공이 이런 여정을 힘들어해야 하지 않나. 택선과 이균 박사 앞에도 장애물들이 있긴 하지만 톡소 바이러스의 성질 덕분에 둘 사이에는 긍정과 사랑이 싹튼다. 그 과정에서 택선은 이균의 일과 가족, 그가 처한 상황을 알아간다. 이런 관계가 이 추격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고 봤다. 그걸 살리는 데 각색의 주안점을 뒀다.

- 톡소 바이러스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가능해지니 여러 에피소드를 구상해봤을 것 같다.

바이러스를 교도소나 국회 같은 곳에 풀어 대통합을 이루는 상상도 해봤다. (웃음) 서로 갈등하던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통해 화해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건 영화가 될 수 없는, 해프닝밖에 안되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래서 개인에게 집중한 이야기로 톤을 정리했다. 실은 <범죄소년> 관객들에게 받은 질문을 통해 한 사람의 문제가 사회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개인적인 것인지 깊이 고민해본 때가 있다. <범죄소년>은 사회적 차원에 입각해 결론을 지은 작품이었으니 다음으로는 긍정적인 개인을 말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 그런 의미에서 캐스팅이 관건이었을 테다.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오가는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두나 배우의 얼굴이 잘 어울린다.

배두나 배우를 볼 때마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항상 젊음을 간직한 사람 같다.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신비로워 보이는 그 느낌이 우리 영화와 잘 맞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여타 바이러스 관련 영화처럼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는 걸 CG로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이 택선의 얼굴만 보고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했는데, 배두나 배우가 그걸 용감하게 표현해냈다.

- 이균 박사 역의 김윤석 배우를 제일 먼저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이 사람이 말하면 모두가 믿을 수 있다고 느껴질 만한 배우가 이균을 맡아주길 바랐는데, 김윤석 배우가 이 이야기를 더 현실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겠더라. 그동안 개성 강하고 무시무시한 역할을 많이 해왔지만, 그에게는 굉장히 부드러운 면도 있다. 김윤석 배우는 거기에 지적인 카리스마, 약간의 허당기 같은 면들까지 체화해 이균 그 자체가 되었다.

- 영화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택선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인다. 또 다른 감염자들로 경로당을 오가는 노인들을 조명했다. 쉽게 설레지 않는 연령대의 인물들을 통해 ‘어른의 사랑’을 시험해보려 한 건가.

글쎄, 요즘에는 나이가 많건 적건 사랑에 가치를 덜 부여하지 않나. (웃음) 결국 인간은 어떤 대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고, 그 긍정이 넘치면 사랑의 단계로 넘어간다. 인물이 긍정과 사랑을 경험하면서 점점 일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바이러스로 인한 인물의 행동이 아슬아슬하게 비치는 지점도 있다. 수필(손석구)이 택선에게, 택선이 균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장면이 그러했다. 관객이 이를 폭력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신경 써서 연출했을 듯하다.

그런 상황이 어둡게 비칠 수 있음을 인지했다. 다만 사랑에는 집착, 원망과 같이 여러 가지 면이 있다. 수필과 택선은 상대방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데, 상대방은 그 감정을 병으로 여기니 답답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장면을 통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배두나, 김윤석 배우는 택선이 균에게 달려드는 신을 ‘레슬링 액션’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현장에서 많은 논의를 나누며 재밌게 촬영했다.

- 촬영을 마친 뒤 벌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이 후반작업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나.

수필이 소개팅 장면에서 코로나를 언급하는 대사는 후시녹음했다. 그것 외에 특별히 바꾼 것은 없다. 이 영화와 코로나19를 생각하면 조심스럽고도 묘한 감정이다. 모두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를 겪은 지금,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감상이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다.

- 결국 <바이러스>는 일과 사랑에 대해 시니컬하게 말하던 택선이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성장드라마이다.

사람이 무언가에 애정을 주지 않으면 힘도, 희망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나무를 사랑할 수도 있고, 강아지를 사랑할 수도 있으니 무엇이라도 사랑하며 사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매사에 부정적이었던 택선이 감염과 치유를 겪으며 사랑에 대한 균형감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답장하지 않던 동창의 문자에 다음에 한번 보자고 답해주고, 상대와 로맨스를 나눈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에 대한 호의가 있으니 인간적으로 알아가려고 하지 않나. 택선이 그렇게 평형 상태를 찾아가는 것이 내가 바란 엔딩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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