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영국 스카이 애틀랜틱 채널과 미국 AMC 채널이 합작해 대성공을 시킨 드라마 <갱스 오브 런던>의 세 번째 시즌이 지난 4월28일 국내 웨이브 채널에서 독점 공개됐다. 이번 시즌은 <변신> <늑대사냥>의 김홍선 감독이 리드 디렉터를 맡아 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1, 2, 7, 8화 4편을 연출했다. <갱스 오브 런던>은 런던을 끔찍한 갱단 소굴로 만들어버린 월리스 가문이 재개발사업에 뛰어들어 신분 세탁을 꿈꾸는 와중에 이를 저지하려는 미지의 세력과 다국적 갱단이 맞붙으며 런던이 불바다가 되는 범죄드라마다. 개러스 에반스, 코린 하디 감독 등이 제작에 참여해 일찌감치 영화적인 색채가 가미된 TV드라마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영미 합작 드라마에 한국 장르영화의 색을 덧입힌 김홍선 감독을 만나 새 시즌의 전략과 19개월에 걸친 긴 제작기를 들어봤다.
- 최근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갱스 오브 런던> 시리즈 제작에 합류했다. 어떻게 연출 제안을 받게 됐나.
한국에선 안 좋은 반응도 더러 있었지만 전작 <늑대사냥>이 해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반응이 좋았던 걸 계기로 에이전시인 WME와 계약을 하게 됐다. 덕분에 여러 제작사와 미팅을 가졌고 <갱스 오브 런 던>의 제작사 AMC의 책임프로듀서와도 알게 돼 이 시리즈에 합류하게됐다.
- 리드 디렉터는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크레딧에는 책임프로듀서와 연출자로 각각 이름이 올라가 있다. 책임프로듀서마다 각자 권한이 조금씩 다른데 누구는 캐스팅에 관여하고 누구는 최종 편집 권한을 갖는 식이다. 나는 처음 계약할 때부터 편집 권한을 포함한 연출 계약이었고, 나를 포함해 편집 권한을 갖고 있는 총 5명의 책임프로듀서가 있었다.
- 앞선 두 시즌은 시리즈 전체의 크리에이터인 <레이드> 시리즈의 개러스 에반스 감독을 필두로 <더 넌>의 코린 하디 감독, <아메리칸 울트라>의 니마 누리자데 감독 등이 에피소드 연출을 맡아 이끌어왔다. 이번 시즌은 김홍선 감독과 함께 3, 4화 연출을 <닥터후> <데어데블>의 패런 블랙번 감독 등이 합류해 새 시즌 연출진에 변화를 줬다.
첫 시즌에서는 개러스 에반스 감독 특유의 리얼하고 잔혹한 액션이 돋보였다. 기존의 영국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영화적인 터치가 있다 보니 방영 당시에 초대박이 터졌다. 코린 하디 감독은 두 번째 시즌에 본인만의 호러영화 터치를 넣었다. 그래서 제작사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면서 주로 영화감독들을 물색했던 것 같다. 나는 합류 초기부터 생동감 넘치는 색감 표현, 캐릭터의 드라마 디자인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 프리프로덕션 단계 때부터 19개월 정도 영국에서 생활했다고.
2023년 6월부터 프리프로덕션을 시작해서 10월에 촬영 들어가 이듬해 4월에 촬영이 끝났다. 보통 리드 디렉터는 시즌을 여는 두개 에피소드 정도만 연출을 맡는다. 전체 8부작 중에 한명의 감독이 두개 에피소드 정도를 책임지고 4명 정도가 나눠서 에피소드별로 자기만의 색깔을 더하는 식인데 1, 2화를 찍던 중에 7, 8화 연출 제의를 추가로 받았다.
- 국내 공중파 드라마의 조감독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한국영화의 촬영 현장을 지켜왔다. 영국의 촬영 현장은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르던가.
영국 제작진은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장에선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촬영 끝나면 1분도 넘기지 않고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촬영 내내 프로듀서들이 시간을 재고 있다. 우리처럼 ‘촬영 끝났네, 내일 뭘 찍지?’ 하고 상의하는 일이 없다. 대신 프로듀서들과 친해진 이후에는 예정된 종료 시간 뒤에도 45초 정도 더 찍을 수 있게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웃음) 45초가 지나갈 때쯤 찍힌 마지막 테이크에서 기가 막히게 좋은 컷을 건진 적도 있다. 후반부 에피소드에서 보게 될, 나르게스 라시디가 연기하는 랄레의 엄청난 액션 장면이다.
- <갱스 오브 런던>은 대부 격인 아버지를 잃은 아들 숀의 런던 암흑가 왕위 쟁탈전, 그에 대항하는 언더커버 출신 엘리엇의 서사가 시리즈 전체의 큰 축을 차지한다. 게다가 시즌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숀과 엘리엇의 앞길을 막는다. 첫 번째 시즌의 미스터리한 투자자 조직, 두 번째 시즌의 갱단 두목 코바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배우 앤드루 코지가 연기하는 뉴페이스 암살자가 등장해 충격적인 전개를 부추긴다.
이전에는 보여준 적 없는 주인공 엘리엇의 과거를 추적하는 플롯이 서브로 깔린다. 독극물이 섞인 마약을 유통시켜 런던에 대참사를 일으킨 원흉이 누구인지, 즉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추적하는 메인 플롯이 등장한다. 앤드루 코지는 지크라는 이름의 암살자를 맡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역할이 달라질 것이다.
- 숀 역의 조 콜, 엘리엇 역의 소페 디리수 등 영국 스타들과 함께했다.
<스킨스> <피키 블라인더스>에 출연한 조 콜은 길거리를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나와 함께 책임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소페는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덩치가 좋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더라. 그는 액션 대역이 필요 없다. 현장에 스턴트 대역 배우가 있는데도 대부분 직접 연기하더라. 또 전세계에서 스타들이 모인 촬영 현장에서 전부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게 놀라웠다.
-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신승환, 임주환 배우가 1화의 오프닝을 장식한다. 신승환 배우는 직접 갱단 두목 캐릭터의 사연도 설정해서 갈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스토리 기획 단계에서 지금처럼 한국 갱단의 장면이 들어가게 됐다. 사실 두 번째 시즌에 잠깐 한국인들이 등장하는데 어색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장면이 못내 아쉬워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한국어 대사를 등장시켜보고 싶었다.
- 봉준호, 박찬욱 감독에 이어 WME에 소속되었으니 차기작도 해외에서 작업하게 될까.
아직은 자세하게 말할 수 없지만 다음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준비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에 해외에서 작업해보니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해외 제작진의 이해와 애정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할리우드의 그 유명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걸 느꼈다. 다른 한국 감독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촬영하게 될 때 누가 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가겠다는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