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놀고 건강하게 돌아가자
- 신재평씨는 2022년 드라마 <치얼업>을 통해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페퍼톤스의 기존 음악이 TV프로그램의 BGM으로 쓰이던 것과 달리 정해진 서사에 맞춰 음악을 새로 만들던 경험이 어떻게 남아 있나.
신재평 이후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치얼업>을 계기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치얼업>으로부터 음악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딱 마흔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앞으로 음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한창 고민했던 시기다. <치얼업>이 새파란 청춘들의 이야기 아닌가. 그들의 파릇파릇한 마음을 생각하는 음악을 만들었다. <치얼업>의 캐릭터나 시청자들이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피드백을 들었는데, 실은 나 또한 작품에 동화돼 이런저런 고민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 코로나19 팬데믹 몇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매년 여름 전국 클럽 투어 공연을 진행 중이다. 데뷔 전 클럽에서 한창 공연을 하던 시기와 2012년의 클럽 문화가 달랐을 테고, 팬데믹 이후 라이브 클럽의 생태계가 또 변했을 텐데 그 모든 시기를 통과하며 클럽 투어 공연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장원 전국의 클럽 투어를 다니다보면 한여름 콘서트인데 에어컨이 큰 의미가 없는 공연장도 있다. 그런데 힘듦을 넘어서는 중독성이 있다. 마치 사우나를 마친 느낌이랄까. 끝내 해냈다는 성취감이 좋아 포기할 수가 없다. 관객들도 무대 위의 우리와 공동의 성취감을 느끼며 클럽 투어를 찾는다. 함께 재미있게 놀고, 건강하게 돌아가자!
신재평 단독 콘서트의 티켓값이 점점 오른다. 아무래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더 멋진 공연을 선보여야 하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내가 한창 홍대거리로 밴드들의 클럽 공연을 다니던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엔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터라 학생들이 페퍼톤스의 클럽 투어도 부담 없이 찾았으면 한다. 지역에 사는 학생들이라면 서울까지 오지 않고도 자기 거주 지역 근교에서 우리 공연을 즐기길 바란다. 우리도 큰 부담 없이 무대에 오른다. 각자 소장 중인 옷을 입고 민낯으로 땀 뻘뻘 흘리며 무대에 오르며 객석과 하나가 된다. 지금처럼 여름엔 줏대 있게 클럽 투어를 하고 겨울에는 티켓 가격에 부합하는 웰메이드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 <Ready, Get Set, Go!>로 시작해 <해안도로> <Victory> <지금 나의 노래가 들린다면> <새벽열차> <21세기의 어떤 날> <아시안게임>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 <FAST> <도망자> <라이더스>까지. 페퍼톤스의 음악엔 일관되게 ‘낮에 달리는’ 화자가 등장한다. 밴드 음악은 야심한 시각이 배경이고 밴드 구성원은 밤이 되어서야 동적인 활동을 시작한다는 고정관념 혹은 관습과 이격을 두는 음악을 늘 만들어온 셈이다.
이장원 그 목록에 <카우보이의 노래>까지 추가해달라. 사실 우리 둘 다 러너는 아니다. (웃음)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 우리끼리 비슷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밴드들이 지향하는 밤의 소리에 관한 선입견과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낮의 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음악 풋내기 주제에 이런 논쟁이 그땐 왜 그리 중요했던지. 어떻게 하면 사운드로 낮의 느낌을 구현할 수 있을지 30대까지도 고민했다.
신재평 프로젝트 ‘낮의 소리를 찾아서’였다. (웃음) 초장에 음악적인 컨셉을 잡아야 이후에 기출 변형도 도모할 수 있겠더라.
이장원 30대에 접어드니 우리 안에서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됐다. 재평이랑 단둘이 하는 밴드면서 서로 “이게 페퍼톤스가 맞아?” “이건 페퍼톤스라고 할 수 없어!”라며 갑론을박했다. 아직도 명확한 결론은 못 내렸다.
- 영화의 엔딩 즈음 기타리스트 양재인씨가 페퍼톤스에게 앞으로도 건강한 음악을 해달라고 남긴 메시지와 통하는 고민이다.
신재평 건강한 음악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내일을 낙관하는 게 페퍼톤스의 천성이다. 우리라고 어떻게 매일 좋은 일만 있겠나. 설령 괴로운 일이 닥쳐도 장원이나 나나 좌절하기보다는 그다음 최선을 찾아 나선다. 그런 마음이 <Everything Is OK>와 같은 노래에 들어 있다.
이장원 밝은 음악을 하자는 초심으로부터 페퍼톤스의 음악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음악이 리스너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건네는 방법이 여러 가지일 텐데, 우리는 희망을 통해 당신과 우리가 함께 힘을 내자는 태도를 쭉 견지했으니 여태 건강한 음악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 앨범 커버가 늘 감각적이다. 특히 좋아하는 앨범 커버가 있다면.
신재평 하나같이 애착이 간다. 가장 재밌게 찍은 건 5집 《HIGH- FIVE》 커버다. 그때 장원이가 런던으로 학회를 떠난다길래 영국행에 함께했다. 거리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얼른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5집의 커버가 됐다.
이장원 촬영 로케이션이 애비 로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 클리셰에 함몰된 사진이다. 런던에 간 사람이라면 응당 횡단보도 앞에서 사진 한방 찍어야 하니까. (웃음) 해외에서 찍었으니 블록버스터 커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신재평 4집 커버도 기억에 남는다. 제주 협재해수욕장에서 해가 중천에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찍어야 한다며 열심히 만들었거든. 평일이어서 가능했다.
- 올해는 데뷔 21주년이다. 완연한 성인이 된 페퍼톤스의 올해 계획은.
이장원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포함해 <페퍼톤스 인 시네마 : 에브리씽 이즈 오케이>를 활용한 몇 가지 재미있는 이벤트를 펼칠 계획이다. 그리고 <핑계고>에서 밝힌 것처럼 조혜련 선배와의 컬래버레이션 음원 공개가 머지않았다.
신재평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여러 일들이 2025년까지 이어지며 연초가 유례없이 바빴다. 2, 3월이면 대개 한해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아직 못 정한 계획들이 있다. 여름 클럽 투어를 마치고 또 생각해보려 한다.
서로의 페르소나
우문기 감독이 가장 좋아한다는 페퍼톤스의 <캠퍼스 커플> 뮤직비디오.
“페퍼톤스가 뮤직비디오 감독을 찾습니다.” 페퍼톤스의 ‘찐팬’이었던 한 감독 지망생 청년이 학과 싸이월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본 후 자신이 만든 단편영화 <냉탕과 열탕사이>를 제출했다. 이후 그는 ‘성덕’이 돼 페퍼톤스 3집에 수록된 <Ping-Pong> <공원여행>을 시작으로 4집 <행운을 빌어요>, 5집 수록곡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그의 이름은 우문기. <씨네21> 독자들에겐 <족구왕>의 감독으로 더욱 친숙할 이름이다. <족구왕>을 한창 작업하던 당시 우문기 감독은 페퍼톤스에게 작품의 주제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페퍼톤스는 O.S.T <청춘>을 부른 것은 물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해 배우 타이틀도 얻었다. 두 멤버의 연기 후일담은 어떨까. “가편집본에선 1초 정도 출연했는데 최종 상영본에선 0.5초 나오더라.”(이장원) “조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사실 진짜 졸렸다. 거의 메소드 연기를 한 셈이다.”(신재평) 우문기 감독과 페퍼톤스가 다시 한번 협업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재평과 이장원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우문기 감독이 불러만 주면 우린 언제든 어디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