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지면에 담지 못한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약한영웅 Class 1>(이하 <Class 1>)의 친구들은 각기 다른 결말을 맞았다. 수호(최현욱)는 의식불명 상태가 됐고, 범석(홍경)은 한국을 떠났으며 시은(박지훈)은 홀로 남았다. 넷플릭스에서 4월25일 공개된 <약한영웅 Class 2>(이하 <Class 2>)는 시은이 강제 전학 간 은장고등학교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곳에서 시은은 완벽한 고립을 원하지만 전 학교에서처럼 또다시 사람들은 이 외로운 소년 곁에 몰린다. 최효만(유수빈), 나백진(배나라) 금성제(이준영) 등 적대적인 뉴페이스들이 그를 더 힘들게 할지라도 그에겐 지키고 싶은 새 친구 후민(려운), 준태(최민영), 현탁(이민재)이 있다. <Class 2>에 이르러 소년들의 우정은 어떻게 뻗어나갈까. 새 시즌에 관한 호기심과 기대를 가득 안고 유수민 감독과 한준희 크리에이터를 만났다.
- <Class 2>의 상징 문구는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호밀밭의 파수꾼>)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데미안>)라는 전 시즌 문구와 흥미롭게 대조된다. 여기에 시은의 첫 내레이션,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까지 더해지면, 이번 시즌에서 시은의 영웅적인 활약을 기대하게 된다.
유수민 <Class 2>는 시은이 수호에게 받았던 걸 타인을 위해 쓰려고 하는 이야기다. 시은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친구들을 통해 겨우 알게 된 ‘함께하는 행복’을 너무나 빨리 잃었으니까. 수호가 체육관에서 다쳤을 때부터 시은이의 시간은 멈춘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데, 그 흐름 속에서 시은이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할지를 고민하며 대본을 작업했다.
- <Class 2> 1화에서 시은이 준태를 때리는 효만을 제지하면서 “선 넘지 말라고” 할 때 찌릿했다. 이 말은 수호의 대사가 아닌가. 전 시즌 1화에서 수호가 시은에게 “선 넘지 마시고”라고 비슷하게 말한 적 있다. 시작부터 시은이가 수호의 말을 쓰고, 수호의 역할을 한다는 게 울컥한 지점이 있다.
유수민 1화의 마지막은 수호의 말을 하는 시은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구상할 때부터 했다. 시은이가 수호가 되고 준태는 범석이가 되고 이렇게 인물들의 캐릭터성과 관계성을 초반에 뒤엉키게 해놓고 후반부에 잘 풀어가보고 싶었다.
한준희 이 나이대에는 말투도 행동도 서로 금방 닮는 것 같다. 대본을 봤을 때 이 이야기는 수호가 그랬듯 시은이도 원치 않게 파수꾼이 되는 구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비겁하지 않을 법을 묻는 준태에게 시은이가 “작용이 없으면 반작용도 없는 거야”라고, ‘뉴턴 제3법칙’에 대해 말한다. 이 말은 계속 밀어내기만 하는 지신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호도 처음엔 밀어내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걸 다 걸고 나서는 순간에 이르고 그런 때를 시은도 맞이한다.
- 새 인물들 모두에게 인상적인 첫 등장을 선사했다. 1부에서 등교한 준태는 빵과 우유를 학생들의 취향에 맞게 ’강제 배달‘하는데 이 과정이 힙합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짜였다.
유수민 이 시퀀스를 길고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후반부의 변화 때문이다. 시은에게 비겁하지 않을 용기를 배운 준태는 같은 배달 방식으로, 효만의 지시로 모았던 학생들의 핸드폰을 되돌려준다. 그 낙차를 재밌게 보여주고 싶어서 앵글도 비슷하게 찍었다.
한준희 유 감독이 박민선 편집감독, 프라이머리 음악감독과 고심한 걸로 알고 있다. 이 몽타주가 특히 중요했던 건 시은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준태로 옮겨가야 이야기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수민 이어지는 얘기지만 톤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음악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Class 1>에서 안 썼던 음악들을 썼다. 그리고 준태는 우리끼리 “진짜 약한 영웅은 서준태야”라고 얘기하곤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처럼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한 자에게 용감히 대항하는 친구다.
한준희 사실 멘털이 최고로 강한 건 준태가 아닐까? 갈수록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감정이 폭발하는 방식이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어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는 후반부에서 준태가 트리거가 돼 달려간다고 봤다.
- 후민, 일명 바쿠의 첫 등장도 강렬하다. <슬램덩크> 강백호의 빨간 머리를 한 후민은 “일동 정지!”를 외치며 시선을 끌더니 <너에게로 가는 길>을 직접 틀어 등장의 순간을 스스로 연출한다. 마지막 덩크슛 장면은 캐릭터에게도 배우에게도 인상적인 한컷이다.
유수민 <슬램덩크> 주제가인 <너에게로 가는 길>을 트는 건 한준희 감독이 먼저 제안했다. 처음에는 좀 유치할 것 같아 거절했는데, 들으면서 바쿠 신들을 만들다 보니 오히려 괜찮겠다 싶었다. 계속 무겁게만 흘러가던 이야기에 쉬어가는 구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는 바쿠의 독특함을 확실히 보여주는 자리가 됐다.
한준희 “안 내키면 하지 마~”라고 슬쩍 말하면서 제안했다. 려운 배우와 논의할 때 바쿠는 꼭 맨발에 조리를 신어야 한다고, 나이키 에어포스는 후민스럽지 않다고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 <슬램덩크>가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는 인상이다. 바쿠 사진을 효만이 담뱃불로 지진다든지. 바쿠가 시은이의 뒤통수를 눌러 제대로 사과하게 하는 장면들은 <슬램덩크>를 연상하게 한다. 바쿠와 현탁, 일명 고탁(이하 고탁)의 농구부원실에는 7번 송태섭과 14번 정대만의 유니폼, 갖가지 피규어 등 <슬램덩크>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유수민 이 만화를 워낙 좋아한다. 최근에도 다시 봤다. 바쿠가 10번 강백호니까 넘버2인 고탁은 7번 송태섭. 이렇게 인물 세팅을 하기도 했다.
한준희 창작자가 과거에 봤던 작품들은 의식했든 안 했든 자기 작품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슬램덩크>의 오마주들이 <Class 2>만의 경쾌한 면을 살려줬다고 생각한다.
유수민 <슬램덩크> 얘기를 좀더 하자면(웃음), 내가 이 만화에서 좋아하는 지점은 팀원들이 강한 적들과 싸워나가면서 이기든 지든 서로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시은, 바쿠, 고탁, 준태. 이 천방지축 4인방도 위기를 함께 겪으면서 소중한 존재가 되어간다.
- 연합 수장 나백진은 최효만 무리와의 일대다 대결 시퀀스로 눈도장을 찍는다. “너클 하나, 쇠파이프 둘, 시끄러운 새끼는 마지막에“라며 먼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데, 우등생답게 문제를 풀 전략부터 세운다. 깔끔한 액션에서 인물의 성격이 보이기도 했다.
유수민 나백진의 브레인 액션은 시은의 액션과 함께 놓고 볼 수 있는데, 대본 작업을 할 때부터 둘은 동전의 양면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 닮은 듯 다른 관계성은 결말까지도 이어진다. 박지훈, 배나라 배우에게도 둘은 닮았으나 최후가 다르다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시은은 혼자 시작해서 많은 친구가 생기고, 나백진은 친구가 많았지만 결국 혼자가 된다고. 그런 차이는 누군가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준희 나백진은 원작(웹툰 <약한영웅>)에서도 <Class 2>에서도 외로움을 본인 방식으로 돌파하는 인물이다. 인물들의 액션 스타일을 구축할 때 장르적인 외피에 신경을 많이 썼고 각자에게 뚜렷한 개성을 주고자 했다. 특히 고탁. 태권도 베이스인 액션을 하는데 진짜 화려하다. 이민재 배우가 놀라울 만큼 훌륭하게 해냈는데 아마 한국에서 그런 식의 발차기를 직접 소화하는 배우는 민재 배우밖에 없을 거다.
유수민 바쿠는 ‘원펀맨’, 나백진은 살인 무술, 금성재는 더티 복싱. 이렇게 하나씩 다르게 줬는데 <Class 1>부터 느꼈지만 장르가 다른 액션들이 맞붙을 때의 시각적 재미가 크다.
한준희 이중 유수민 감독의 최애는 이종격투기가 아닐까.
유수민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취미로 매주 하고 있다. (웃음)
- 4화 옥상 시퀀스에 가서야 시은의 액션이 제대로 펼쳐진다. 전매특허 볼펜 액션을 포함, 성제에게 화분을 던져 흙먼지로 시야를 가린 뒤 안경을 빼앗고, 부러뜨린 안경다리로 발가락을 찌르는 스텝과 타이밍이 탁월하다. <Class 1>에서 시은이 강우영(차우민)의 발을 아령으로 가격하던 장면도 떠올랐다.
유수민 이 시퀀스 회차가 적지 않았는데, 첫날 눈이 오고 마지막 날 비가 와서 정말 힘들었다. 안경 액션은 허명행 무술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잘 부러질 만한 안경테를 고르고, 신발도 잘 뚫리는 재질로 고르고 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한준희 박지훈, 이준영 배우가 아주 가깝지 않았으면 이렇게 끝장까지 가는 액션이 잘 나오지 못했을 거다. 현장에서 두 배우가 정말 밀착된 감정을 주고받았고 마치 안무하듯이 합을 맞춰나갔다. 둘 다 댄서였기에 가능했다.
유수민 원래 시은이라면 브레인 액션이 앞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건 <Class 2>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편에서 시은이 전술을 발현해 폭력에 대항했다면 이번에는 머리보다 마음이 우선해 더 바로, 더 처절하게 싸운다.
- 문뜩 궁금하다. 혹시 시은이 선호하는 특정 문구 브랜드가 있는 건가. 여기 제품을 써야 공부가 잘된다거나 하는. (웃음)
유수민 두편에서 시은이가 쓰는 펜이 다르긴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두꺼운 볼펜을 쓰는 타입이고, 시은이의 필통에는 이것저것 다 들어 있다. (웃음)
- 이 액션 시퀀스를 매듭짓는 건 시은의 ‘3단 박치기’다. 성제의 다친 발을 이마로 내려찍은 뒤 일어나면서 한번 더 치고, 마지막에 성제의 멱살을 잡고 가격하는 동작의 합이 압도적이었다.
유수민 이것 역시 허명행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박치기가 상대가 근접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액션이라고 하시더라. 처음엔 시은이가 이런 식으로 싸워본 적이 없는 애니 어울릴까 싶었는데, 감독님의 시연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시은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한준희 시은이가 금성제의 발에 이마를 갖다 댈 때의 박지훈 배우의 표정은 지금 떠올려도 어마어마하다. 박치기 신을 보면서 이게 <Class 2>에서의 연시은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퀀스를 찍는 동안 두 배우가 매일 녹초가 돼 퇴근했는데도 늘 만족스러워했다. 리액션을 잘 주고받았다는 걸 몸을 섞으면서 체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 시은이의 웃는 얼굴은 3화에서야 볼 수 있다. 봉사활동을 나온 4인방이 나란히 앉아 시끄럽게 점심을 먹는데 그런 한가로운 일상 안에 시은이가 있다는 것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Class 1>에서 시은이가 수호, 범석과 고깃집에서 웃던 장면도 떠오르고. 카메라가 한동안 지켜보는 네 친구의 뒷모습이 주는 여운도 컸다.
유수민 꼭 그 나란한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바 테이블을 설치했고 넷이 한곳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찍었다.
한준희 이 장면이 그동안 유수민 감독이 찍었던 컷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톱3 안에 든다. 앞서 4인방이 서울역사박물관으로 봉사를 나가는 바람에 시은이가 곤룡포를 입는다. 연시은이 곤룡포라니. (웃음) 그런 의외의 순간들이 <Class 2>에 있다는 게 좋다. 작품 전체의 톤 앤드 매너든, 서사의 깊이든 2학년이 된 시은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진다.
유수민 작품엔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친구들이 옛날 복장을 입으면서 투덜투덜하고 서로 놀리고 사진 찍고 하지 않았을까. 별것 아닌 그런 순간에 서로 훅 가까워진다고 느낀다.
- <약한영웅> 시리즈는 소년들의 우정을 그리는 방식에서 여타 소년물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거친 모습 안에서 예민하고 복잡한 면을 볼 줄 알고, 이들 관계는 단순한 끈끈함과 의리를 넘어 서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전제됐다. 싸움이 가장 격렬해질 때 등장해 친구를 구해내는 액션 시퀀스 구조는 물론, 바쿠가 시은에게 “집에 잘 들어갔냐”고, 준태가 시은에게 “학원 잘 갔냐”고 에둘러 묻는 장면에서도 그 진심이 드러난다. 소년들의 우정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유수민 나를 탐구하는 시간과 이야기가 같이 가는 것 같다. <약한영웅> 시리즈를 하는 동안 10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가 무엇일까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분명 다른데 그게 뭔지를 정확히 모르겠어서 남고를 같이 나온 친구들을 불러내 일부러 옛날 얘기를 더하기도 했다. 그 시절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것 같다. 뭔가를 제대로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해서 서툴지만 원초적이고 순수했던 시기. 그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작업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한준희 유수민 감독과 달리 나는 남고 시절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눈만 마주쳐도 뭔 일이 날 것 같은 동물의 왕국에서의 3년. (웃음) 그래서 그런지 은장고의 풍경이 내게는 익숙하다. 서로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란 곧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그걸 에둘러 표현하는 말들이나 감정이 무엇인지를 거듭 생각하게 된다. <약한영웅> 액션이 여타 학원 액션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싸우고 싶어 하는 인물이 한명도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싸울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하는 게 중요할 텐데 각자의 이유를 유 감독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나는 거기에 힘을 좀 보탠 정도다.
- 그렇다면 두 분은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유수민 고등학생 때는 아니고 20대 초반쯤?
한준희 그럼 회귀물이 나오는 거 아니야. (웃음) 나는 간다면 학생은 아니고 선생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