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성악가 조수미씨의 데뷔 무대를 보고 계십니다.”(김세윤 작가) 베르디의 <리골레토> 1986년 실황을 상영한 것이 아니다. 내년이면 국제무대 데뷔 40주년을 맞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지난 4월19일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에서 난생처음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을 가졌다. 조수미가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영화관에서, 멜로디와 가사가 아닌 문장으로 관객과 호흡한 영화는 파블로 라라인의 <마리아>다. 조수미가 GV에 기꺼이 응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인 마리아 칼라스(앤젤리나 졸리)를 향한 “존경과 사랑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어서”이다. 잘 알려진 대로 조수미의 어머니는 오페라 애호가였고 청소년기에 라디오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듣고 훗날 딸을 낳으면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성악가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뱃속에서부터 24시간 내내 마리아 칼라스만 듣느라 지겨웠다”며 너스레를 떤 조수미는 이내 마리아 칼라스와 자신의 삶이 어떤 유비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영화 속 ‘음악은 불행과 고통 속에서 탄생한다’는 칼라스의 대사에 깊이 공감한다. 예술가는 고독할수록,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스스로를 성찰해 더욱 단단해진다. 고통은 아티스트라면 무조건 겪어내야 하는 시간이다. 나 대신 러시아어로 쓰인 350페이지의 악보를 외워 노래할 사람이 있나? 더군다나 그냥 해내는 건 안된다.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 최고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선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낼 수밖에 없다.”
영화엔 마리아 칼라스가 가창한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가 등장한다. 이중 다수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칼라스와 조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조수미는 다시 한번 칼라스의 위업을 칭송했다. “벨리니의 <Casta Diva>는 오직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전체 관중을 휘어잡는 아리아인 동시에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마리아 칼라스가 워낙 이 곡의 정수를 완벽하게 소화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범접하기 어렵다. 마지막 장면에서 푸치니의 <Vissi D’Arte>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를 보며 1965년,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마지막 오페라를 했던 칼라스의 마음을 떠올려봤다. ‘나는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았노라’라는 가사가 딱 사랑과 예술로 점철된 삶을 산 칼라스와 맞아떨어진다.” 자신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가 나온다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해외에서 겪은 수많은 고초가 모두 들어가야 한다. 열흘을 내리 보아야 감상할 정도의 러닝타임이 필요할 것”이라던 조수미는 앤젤리나 졸리의 연기를 어떻게 보았을까. “졸리의 연기를 칭찬하고 싶다. 아리아를 립싱크하는 게 쉽지 않거든. 성악 특유의 호흡법이 연기에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은 옥에 티지만 칼라스의 목소리를 그대로 모사한 연기는 놀랍다. 시중에 나온 마리아 칼라스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 내가 안 본 작품이 없는데, 어떤 포인트에선 내가 보았던 칼라스의 음성이 졸리의 연기를 통해 그대로 재현되더라.” “지금 이 순간에도 칼라스는 모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말하는 조수미는 칼라스가 입었을 법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칼라스를 향한 사랑을 담아 직접 대형 장미를 준비해 무대에 설치했다. 자연스럽게 이날 GV의 마지막 박수는 조수미와 세상에 수많은 영향을 남긴 마리아 칼라스에게 돌아갔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아이디어였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지난 4월19일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에서 난생처음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