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아는 이름일수록, 일찍이 전설을 쓴 현역일수록 세상은 이들의 비범한 출발과 그들이 헤쳐온 역경에 관심을 기울인다. 일리 있는 접근이지만 이같은 서술은 당장은 액자 속에 박제되길 거부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조로하게 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그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행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거라면 갈아엎은 길보단 지금 서 있는 황무지와 앞으로 비옥하게 개간할 자갈밭을 조명하길 바란다. 그들에게 필요한 부사는 이미가 아닌 아직이고, 그들을 정의할 시제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소프라노 조수미의 이름과 얼굴, 목소리를 안다. 조수미가 어떻게 성악을 시작했고 어쩌다 서울대학교에서 제적돼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는지를 한번쯤은 TV 토크쇼에서 접했을 것이다. 그가 언제 동양인 최초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주역을 달성했고 세계 7대 콩쿠르를 석권했는지, 어떤 예술가들의 러브콜을 받았는지도 숱한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조수미의 아리아가 흐르는 해외영화와 조수미가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삽입된 드라마까지 하나쯤 접했을 것이고, 이 곡 중 다수는 누군가의 노래방 애창곡일 것이다. 그런데 1986년 데뷔해 내년이면 데뷔 40주년을 맞이하는 조수미에겐 아직 풀지 못한 39년산의 에피소드와 앞으로 써갈 39년치의 계획이 그의 음악 곳곳에 매설돼 있다. 아무도 선뜻 발굴하지 못한 조수미의 금광은 그의 영화 사랑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보이치에흐 킬라르, 토드 헤인스, 파올로 소렌티노 등 세계 각국의 영화인이 그의 목소리에 프러포즈했다. 관점을 달리해보자. 그 고백에 조수미가 응한 이유 또한 그 역시 영화를 알아보는 눈이 만만치 않은 감식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수미가 목소리를 내어준 <나인스 게이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유스> 등은 조수미에게 매혹된 영화들인 동시에 조수미가 매혹된 영화들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이름 앞에 흔히 붙는 프리마돈나(Prima Donna)는 ‘제1의 여인’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다. 이제껏 최고였고 여전히 히로인이며 언제까지나 디바의 왕관을 기꺼이 받아들 조수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칭호다. <씨네21>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프리마돈나에게 듀엣을 청했다. 그가 어디서도 들려준 적 없는 영화음악 작업기와 조수미가 감각하는 그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와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