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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멋지고 새로운 학교의 리더즈, <해피엔드>

네오 소라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해피엔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해피엔드>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SF물이다. 동시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학원 청춘 성장물이기도 하다.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두 장르가 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무게는 후자에 더 기울었다. 음악 동아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3학년생 유타(구리하라 하야토)와 코우(히다카 유키토)는 어느 날 불법 운영 클럽에 몰래 잠입한다. 두 사람은 클럽이 단속으로 해산되는 와중에도 자리를 지키다 경찰에 잡히고, 이를 눈여겨본 DJ가 두 사람에게 USB 드라이브를 건넨다. 아타, 밍, 톰까지 포함해 총 5명으로 구성된 음악 동아리는 학교 동아리방에 몰래 숨어들어 DJ가 준 EDM을 마저 즐긴다.

문제는 두 사람이 학교를 빠져나가던 중 교장 나가이의 자동차를 직각으로 세우는 장난을 쳤다는 것이다. 화가 난 교장은 학교에 AI 감시 체계를 도입하고, 복장 불량, 교내 애정 행각, 손가락 욕설, 흡연 행위 등은 모두 실시간으로 감시되며 벌점이 매겨진다. 한편 재일조선인인 코우는 재일 차별 문제로 방황하기 시작하고, 교내 비일본인계 학생들 역시 정체성에 따른 다양한 장벽과 마주치며 저마다 앞날을 고민한다.

영화의 두축을 이루는 유타와 코우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소꿉친구이지만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갈등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행로가 어떻게 갈라서는지를 다루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넌지시 일러둔다. 유타와 코우는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쪽은 지레 포기한 채 현재에 몰두할 뿐이고, 다른 쪽은 조금이나마 현재를 바꾸려고 시도할 뿐이다.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자가 후자를 도와 사회를 바꾸는 데 일조하는 모습을 그린다. 학교의 AI 감시 체계 철폐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영화가 가장 비판적으로 다루는 인간 군상이 다름 아닌 감시를 뼛속까지 내면화한 일부 학생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겠다. 어쩌면 미래를 비관하다 포기한 사람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낙관하는 자들이야말로 이 지옥을 만든 주역인지도 모른다. <해피엔드>는 오직 비관을 통해서만 변화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영화는 주요 무대를 고등학교로 제한하고 주요 인물 대부분을 졸업 직전의 고등학생으로 한정 짓는다. 이야기 역시 유타와 코우를 중심으로 전개돼 관객은 학교를 둘러싼 파시즘적 일본 사회라는 배경을 TV뉴스나 인서트처럼 들어간 몇몇 장면을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칫 한정된 예산에 따른 궁여지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의도적 세팅은, 다행히 훌륭한 연출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최적의 선택으로 이해된다.

close-up

영화 초반에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영화는 돌연 무음 상태로 전환된다. 사람이 숨은 책상, 쓰러지는 빗자루, 사물함 위에서 떨어지는 걸레통, 떨리는 블라인드로 이어지는 네개의 숏은 카메라와 소품의 흔들림만으로 지진 상황을 묘사한다. 핵심은 이 장면에 진입하기 직전 배치된 숏이다. ‘멋진 신세계’를 학교라는 무대에 응축시킨 이 영화의 전략을 설명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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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감독 하야카와 지에, 기노시타 유스케, 쓰노 메구미, 후지무라 아키요, 이시카와 게이, 2018

시리즈는 제작 시점에서 10년 후의 각국의 미래를 그린 옴니버스물로, 2015년 홍콩에서 처음 만들어진 후 2018년 일본, 대만, 태국, 2023년 미얀마 등에서 추가로 제작된 국제 연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총괄 제작한 일본 편에서는 5명의 감독이 근미래 일본을 다루며, 두 번째 작품인 <장난꾸러기 동맹>에선 AI를 통한 학생 감시 체제란 소재가 다뤄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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