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작가 영현(최희진)의 인터뷰 요청에 들뜬 채 그를 찾아갔건만 정작 규호(노재원)가 전해 들은 건 친구 민주가 자신을 가장 증오한다는 말이었다. 당황한 규호는 민주가 자신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유추해보기 시작한다. 노도현 감독이 “인터뷰 스릴러”라 칭할 만큼 <타인의 삶>은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도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이처럼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대담을 구상하게 된 이유는 첫째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이라 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찍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고 “시나리오 작법을 전부 파괴하고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도전”해보고 싶어서였다. 또한 일찍이 상업 시나리오작가로 데뷔하면서 그는 매일같이 “캐릭터의 세계를 뒤흔드는 일”을 해왔는데 이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보고자 했다고. 전작 <스타렉스>에서도 그랬듯 노도현 감독은 로케이션을 최소화하고 두 캐릭터가 주고받는 말 속에서 재미와 변주를 추구한다. “그런 방식의 연출을 선호하다보니 대사에 공을 들일 거라고들 예상하는데 실제론 캐릭터를 정교하게 짜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뒤로 인형 놀이하듯 인물들을 마주하게 하면 알아서 대화를 나누고 나는 받아 적는 기분으로 끌려갈 뿐이다.” <타인의 삶>은 “체스를 두는 광경”을 떠올렸던 초기 구상을 바탕으로 영현 역에 최희진 배우를, 규호 역에 노재원 배우를 떠올리며 극을 써내려갔다. “정보량의 차이가 주는 충돌이 흥미로워” 최희진 배우와만 규호와 친구들의 전사를 공유했다고. 일반적으로 단편영화는 3~4번 정도 리딩을 하지만 <타인의 삶>은 13번의 리딩을 거쳐 숨의 길이, 음의 높낮이를 맞췄다. 영화는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보라고 사람과 함께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노도현 감독은 극 중 가장 좋아하는 대사 역시 “살면서 들어본 얘기 중에 사람 이야기 아닌 거 들어본 적 있어요?”라는 영현의 말을 골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웹소설을 쓴 노도현 감독은 세종 청소년 시나리오 창작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면서 영화로 관심을 넓혔다. “처음엔 교사가 돼 퇴근 이후에도 계속 글을 쓰고자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문득 자신이 없어져 다시 수능을 쳤고 중앙대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문학 장르에 발을 들였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것이 시나리오 쓰기라고 노도현 감독은 말한다. “하지만 괴로운 일일수록 늘 새롭게 와닿기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재는 신작 장편을 바쁘게 준비하고 있다. “하나의 로케이션에 비현실적인 세팅을 하고 그 안에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타인의 삶>의 본래 메시지는 ‘당신은 타인의 말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인데, 이를 ‘사람은 사람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따뜻한 버전의 메시지로 바꿔 신작에서 다뤄볼 예정”이다. 노도현 감독은 바쁘고 힘든 여정에도 “인류애 가득한 마음”을 품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