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임신하는 세상. 한번쯤 상상해볼 법한 풍경은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이다. 이제 결혼 10년차에 들어선 강유진, 최정환 부부는 열번의 시험관아기 시술에 도전하지만 매번 낙담에 빠진다. 그러던 중 천재 의학박사 김삼신에 의해 개발된 남성 임신을 이들은 두 번째 해결책으로 선택한다. 다소 엉뚱한 상상은 노경무 감독의 친한 친구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딩크가 되길 바랐던 친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양가에 당신 자식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그래야만 (아이를 못 갖는 것을) 탓할 수 없으니까. 여성인 내 친구가 임신을 원치 않아 이런 결정이 났지만 만일 남자가 임신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가 아이를 원한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 궁금했다. 친구도 이 이야기를 무척 흥미로워하고 재미있어했다.” 실존하지 않는 세계관을 30분으로 압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과정은 다소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요했다. 처음엔 김삼신 박사가 왜 이렇게 저출생 문제에 집착하는지 그의 전사를 다룰 계획이었지만 모두 걷어냈다. “처음엔 러닝타임이 대략 40분에 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제가 단편작을 30분 이내로 규정하고 선호하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줄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게 단편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군더더기를 모두 걸러내고 진짜 알맹이만 보는 것. 단편이 장편에 진입하기 위한 도움닫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단편이기 때문에 요점만 말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의 제작 기간은 1년6개월. 스토리 전개나 연출, 작화 수준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짧은 기간이다. 7분 분량의 무성 단편 <파란 거인>으로 2021년 데뷔한 이후, 2년 만에 현실 반영도 높은 스토리, 동시대적 메시지, 다층적인 연출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단편 형식에 적합한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1억8500만원. 3, 4명의 소규모로 이뤄지던 팀 작업은 이제 상업 작품을 주로 다루는 업체와 컬래버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고, 엄상현(정환 역), 정유정(유진 역), 이용녀(삼신 역) 등 유명 성우 및 배우를 출연시킬 수 있게 해줬다. 특히 정환이 임신 경력 남성들로부터 조언을 얻는 장면은 실제 배우들 모습을 로토스코핑한 것이다. 적절한 지원은 창작자를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성장시킨다.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은 올해 여성의 날에 KBS1 <독립영화관>을 통해 넓은 층의 대중을 만나기도 했다. “최근 2년 동안 관객을 직접 만나면서 느낀 게 있다. 영화는 결국 작품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까지가 완성이다. 따라서 영화제의 예산을 깎는다는 것은 영화의 완성을 못하게 막는 것과 같다. 비교적 제작 기간이 짧은 단편영화가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관객들을 제때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