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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25-04-22
애슐리 엘스턴 지음 엄일녀 옮김 문학동네 펴냄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관심을 잡아끈다. 스릴러 장르에서 ‘누굴 의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흔히 타자를 향하지만,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에서 독자는 가장 수상한 사람이 주인공인 이비 포터임을 알게 된다. 이비 포터? 그게 누군진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사연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이야기에 멱살잡혀 읽어가게 된다.

시작은 가정 스릴러 장르처럼 보인다. 타인의 눈에 완벽한 커플이 지닌 속사정을 다루는 듯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비 포터는 남자 친구인 라이언과 완벽해 보이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비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은 이비를 ‘연기’하고 있으며 모종의 이유로 라이언에게 접근한 상태임이 밝혀진다. 이비는 비밀스러운 조직의 명령을 받아 일하고 있는데, 새로운 일이 시작될 때마다 이름, 배경을 비롯해 각종 정보를 전달받고 신분을 위장한다. 대상에 접근해서 신뢰를 얻을 때까지 진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데, 지금 이비의 연인인 라이언과 가까워진 것 역시 새로운 임무를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비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이름부터 고향, 가족 사항 등이 모두 이비의 진짜 신원과 같다. 게다가 라이언이 하는 일은 알면 알수록 수상쩍기 그지없다.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는 겹겹이 싸인 거짓말을 밝혀내는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몇 사람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다룬다. 가장 중요한 비밀은 이비에게 임무를 주는 스미스씨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며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유난히 자기 연민이 없는 이비는 처음 경찰에 잡혔던 때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기기 전에 대비하는 데 능하다. <첫번째 거짓말이 중요하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전개는 관계가 껄끄러웠던 레이첼과 연합하는 과정이다. 라이언의 오랜 친구인 레이첼은 처음부터 이비를 수상하게 생각하는데, 이비는 경찰에 살인 혐의로 잡히자마자 라이언이 호출한 레이첼의 변호를 받게 된다. 서로를 싫어하지만 직업의식(의뢰인의 비밀을 엄수한다)이 투철한 레이첼은 이비 편에 서고, 이비는 레이첼이 자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비의 과거 임무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큰 그림이 맞춰지는 후반부에서는 손을 떼기가 어렵다. 그래서 라이언과는 어떻게 되느냐고? 그 남자는 대체 왜 이렇게 수상쩍은 거냐고! 이상한 방식으로 든든하고 달콤한 데가 있는 스릴러 소설이다.

정리가 필요한 감정이 잔뜩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 남자를 위해 일해왔는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배신당했다는 분노. 애초에 그가 내게 신원을 만들어줬던 이유가 오로지 나를 부수기 위해서였다는 말에 덮쳐오는 실망감. 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