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2025-04-22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비채 펴냄

우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102쪽) 20대의 페미니스트 여성 조에가 온라인에 쓴 글 중 위의 질문은 우리를 가장 괴롭고 슬프게 만든다. 평범하게 같은 교육을 받고 자라 같은 사건에 대한 일련의 정보를 비슷하게 접해도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그러곤 서로를 향해 ‘상식을 가졌다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라며 통탄해한다. 위의 이야기는 반대의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가지는 생각이지만 이는 다른 사안에서도 적용된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세명의 화자가 주고받는 메일, SNS 글 등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몇권의 책을 낸 40대 남성 작가 오스카는 우연히 과거 동경했던 배우 레베카를 보게 된다. 레베카는 젊을 때 뭇 남성들의 ‘책받침 여신’이었지만 50대가 넘어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 오스카는 레베카의 미모가 몰락했다며 SNS에 글을 쓰고, 이를 보게 된 레베카는 오스카에게 엄청난 악담이 담긴 장문의 메일을 보낸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로 시작되는 메일은 ‘당신의 아이가 트럭에 깔렸는데 손도 쓰지 못한 채 무력하게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기를 바란다’는 저주로 끝난다. 오스카는 사실 자신의 누나가 레베카의 친구였음을 밝히며 사과 메일을 보낸다. 둘은 처음에는 공격성 가득한 메일을 주고받다가 점차 ‘지금은 당신이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고백하는 관계가 된다. 그 와중에 오스카는 출판사 홍보 담당자였던 조에로부터 미투 고발을 당하고 이에 대해 레베카에게 신세 한탄을 하게 된다. 소설은 조에가 블로그에 쓰는 젊은 페미니스트의 고통이 가득한 글과 레베카와 오스카가 주고받는 서간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페미니즘과 미투, 마약과 알코올 중독, 외모 강박과 영화계의 악습, 코로나 시대의 고독, 현시대의 인터넷 문화 등 다양한 주제들이 오간다. 젊은 동료 여성에게 지속적인 애정 표현을 함으로써 그가 직장을 그만두게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 대가가 그처럼 혹독할 줄 몰랐다’며 피해자 행세를 하는 오스카에게 레베카는 ‘시종일관 약해빠진 척 좀 그만해요. 당신은 지독한 멍청이인가요’라고 쏘아붙인다. 배경이 다른 세 사람은 모두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으며, 삶의 무료함이나 고독, 세상에 대한 환멸을 이겨내려 몸부림친다. ‘서로 이토록 다른 우리가 어떻게 대화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가 이 소설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없이 날카로우면서도 통렬하고 고독한 소설이다.

영화는 나를 욕망하지 않고, 나 같은 나이와 체격과 특징을 가진 여자 배우와 무얼 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입니다. 나 역시 영화에 권태를 느끼고 있습니다. (중략)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겁니다. 마법은 씨가 말라버렸다는 걸요. 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