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이옥섭, 이상근, 조성희, 윤가은, 엄태화, 장재현 감독(왼쪽부터).
- 미쟝센단편영화제 재개를 기념하는 트레일러 촬영을 얼마 전 마쳤다. 어떤 기획 과정을 거쳤나.
장재현 엄태화 감독님이 처음에 짧은 아이디어를 냈다. 4년 만에 재회하는 이들의 멜로드라마 같은, 샤방샤방한 이야기다. 영화제를 대하는 우리 마음과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더라.
엄태화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에서 착안했다. 여러 컨셉을 경유했다. 멈췄다 돌아가는 카세트테이프, 다시 콸콸콸 흐르기 시작한 폭포, 막혀 있다가 터지는 댐!
이상근 댐에 구경 간 이들이 물도 없고 목도 마른데 막혀 있던 댐이 뻥 뚫리면서 겪는 버전의 이야기를 썼다가 현실적인 문제로…. (웃음)
장재현 잠깐 멈췄던 영화제를 다시 이어간다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었다. 이전 회차의 지속성을 살려서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로 그대로 이어간다. 막 사무국을 꾸리는 중이다. 7명의 감독들로 사단법인을 우선 만들었고, <씨네21>이 주관사로 참여한다. 5월부터 예심을 열어 출품작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영화제 준비가 시작될 것 같다.
‘미쟝센 키즈’의 추억
- 7인 감독의 조합이 흥미롭다. 참여를 결심한 각자의 배경과 계기를 들려준다면.
이옥섭 <파묘>를 재밌게 본 다음날 갑자기 장재현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내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를 만들 때 배우를 찾는 주요 창구이기도 했다. <꽃은 시드는 게 아니라>(2012년,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최우수작품상 수상)에서 백수장 배우를 보고 <4학년 보경이>에 캐스팅했던 것처럼. 이 영화제를 되살리자는 데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장재현 처음 이야기가 된 건 벌써 3~4년 전이다. 미쟝센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나, 엄태화, 이상근, 조성희, 한준희 감독이 처음 모였는데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쳐서 진전이 어려웠다. 그러다 윤가은, 이옥섭 감독님에게도 직접 연락을 드리게 됐다. 특히 옥섭 감독님과는 <12번째 보조사제>와 <4학년 보경이>가 같은 해 미쟝센에서 상영했던 터라 더 남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 미쟝센의 채무자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이상근 미쟝센은 하나의 문화이고 축제였다.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끝판왕’이 존재했던 거지. 흔들리는 창작자들에게 자신을 증명해볼 수 있는 장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또 기성 영화감독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를 얻게 된다. 현장에서 뛰고 계신 분들과 대화의 창이 열리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우리 세대엔 한여름에 열리는 마법 같은 영화의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이 시기를 거쳤던 영화인들이라면 대부분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제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갑자기 한순간에 무언가 바뀐 것이 몸으로 체감될 정도였다.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이제 좀더 젊은 영화인들이 누렸으면 싶다. 같이, 재밌는 걸 하자는 마음이다.
장재현 이현승, 김성수 감독님이 뒤에서 조언과 약간의 압박을 줬다. (웃음) 이제 우리 세대가 바통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과거의 선배 감독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미쟝센과 같이 커온 이력을 바탕으로 이어나가려고 한다.
한준희 미쟝센단편영화제 본선만 가면 영화를 그만두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이전에 작가로서 작업한 이력도 있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연출자라고 인정하려면, 단편을 찍어서 최소한 미쟝센에서는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영화를 정말 진지하게 지속해도 되겠다고 가늠해본 것이다. 그러다 운 좋게 정말로 본선에 가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선만 가면 그만이었는데, 영화제라는 게 막상 가니까 또 욕심이 나서…. 혹시 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웃음)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폐막식에서 상을 받지 못해 서운한 감정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수상을 못해도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다”라는 위로가 어찌나 뻔하게 들리던지. 그런데 나중에 내가 심사할 때 똑같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건넬 수밖에 없더라. 미쟝센은 그런 순간을 만들어주는 영화제다. 선배 감독들이 영화를 봐주고, 이건 좋았고 이건 부족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줄 수 있는 자리.
조성희 한준희 감독님 말에 동감한다. 나도 비슷했다. 영화를 서른 넘어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인생의 모험이었고, 놓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나’라는 자괴감에 흔들렸다. 그러다 미쟝센단편영화제 덕분에 스스로를 영화 연출가라고 정체화하고 내 직업이라고 믿게 된 거다. 역시나 내게도 미쟝센의 순간들이 하나하나 생생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감자탕 집에서 류승완 감독님이 처음 보는 나에게 아까 그 장면에서 숏이 잘 안 붙는다고 하시면서 엄청 세세하게 피드백을 주셨던 첫 순간…. (웃음)
이상근 맞아. 갑자기 잔소리들을 막 해!
조성희 나홍진 감독님이 내 앞에 앉아 있었는데 ‘너는 앞으로 뭐 할 거냐’ 그러셔서 왜 영화를 하려는지 주절주절 말했더니 감독님이 정말 큰 소리로 ‘야, 너 그 생각 잊지 마라’ 하시면서 용기를 줬다. 이런 감독님들이 나한테 이렇게 얘기를 해주네, 그 뒤로 계속 그 생각 하면서 버티는 거다. 그런 장면들이 그립다. 다른 감독들도 비슷한 경험을했으면 싶다. 요새는 이런 뜨거운 자리가 없다. 또 미쟝센이 감독들만의 자리인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맨들도 다 모였다. 거기서 일들이 많이 성사됐다. 그것에 수혜를 입은 한 사람으로서 이 모임에 꼭 합류하고 싶었다.
윤가은 이중에서 아마 나만 상영을 못했을 거다!
한준희 정말? <손님>인가, <콩나물>을 미쟝센에서 분명 본 것 같은데….
윤가은 슬프지만 아니다. 내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가고 싶은 영화제 0순위였다. 그래서 장재현 감독님의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쟝센 출신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 컸고, 특히 감독들이 심사하는 영화제라는 점. 그러니까 내 영화를 쟁쟁한 선배 감독들이 봐주신다는 것 때문에 진짜 가고 싶어서 꿈도 꿀 지경이었다. 첫 장편(<우리들>) 준비할 때는 미쟝센‘장편’영화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장편영화를 출품하는 꿈을 꿨다. (웃음)
조성희 장편영화제도 하면 좋겠다.이상근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다. 비록 여기 이렇게 두 대상(<남매의 집> 조성희, <숲> 엄태화) 사이에 앉아 있지만. 그러니까 대상만 못 받았지 여러 섹션에 진출해서 모두 수상했다. 나는 앞선 사례들과 조금 다른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첫 단편영화를 내니까 뽑혔고 미쟝센단편영화제도 그 이후에 자세히 알게 됐다. 장재현 감독과 동문인데 우리 과 재학생이 사실상 처음으로 영화제에 진출한 경우였다. 폐막식 즈음에 관계자가 나보고 “예쁘게 옷을 입고 오라”고 귀띔해서 혹시나 하고 갔는데 상을 받았다. 그런 경험이 한 사람의 삶을 촉발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후로 두 번째, 세 번째 미쟝센에 초청을 받을 때마다 사실상 인공호흡기 역할을 했다. 부모님도 지치고 이제 그만하라고 할 때쯤 딱 한번씩 미쟝센에 가서…. 힘들었던 건 또래 감독들이 미쟝센에서 한번 수상하고 나면 바로 데뷔하고 쫙쫙 앞으로 나아갈 때 나만 그걸 못했다. 그래서 내 별명이 ‘미쟝센의 서자’였다. “왜 넌 데뷔를 못하냐”란 말도 들었고. 물론 곁의 친구들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힘을 얻었다. 돌이켜보자면 인생의 핵심 자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난 건데, <간만에 나온 종각이>로 미쟝센에서 세 번째 상을 받았을 때 박찬욱 감독님이 무대에서 상패를 건네며 귓속말로 나지막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이렇게 단편을 많이 찍어…?” (일동 폭소)
엄태화 나는 2004년부터 미쟝센에 계속해서 출품했다. 그리고 계속 떨어졌다. 만든 단편영화 5개가 한번도 미쟝센에 된 적이 없다. 그래서 <숲> 이전에 미쟝센단편영화제에 가본 적이 없다. (웃음) ‘여기는 왜 안될까, 저기만 가면 뭐가 좀 될 것 같은데.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출부 생활을 했고 연출부 해서 번 돈으로 또 한편 찍고 그런 식으로 버텼다. 그러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찍은 단편을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그냥 상영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출품했는데, 그동안 낸 작품들의 기가 모인 건지 마치 한번에 몰아서 상 받는 것처럼 큰 상을 받아서 얼떨떨했다. 상도 두개나 받을 줄 몰라서 더 놀랐고. 나중에 들었는데 윤종빈 감독님이 <숲>을 지지해주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미쟝센단편영화제 뒤풀이에 제작자들도 많이 오는데, 거기서 만난 제작자 중 한분과 계약을 하게 되면서 일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장재현 쟁쟁했지. 우리 세대 감독들은 <숲>파냐, <남매의 집>파냐 나뉠 정도 아닌가!
엄태화 시상식 날 태구(동생, 엄태구 배우)가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감정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한준희 진짜. 진짜 안 할 것 같아, 둘이서.
엄태화 그런데 대상 발표하는 순간 태구가 기뻐서 내 허벅지를 촥! 내리쳤던 기억이 난다.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꾸준히 심사를 해왔다. 앞서 감독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제에 대한 고마움, 채무감 같은 게 있어서일 것이다. 뭐랄까, 영화제가 멈췄을 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장재현 내가 <12번째 보조사제>를 미쟝센에 낼 때만 해도 각 섹션의 작품 수를 봤을 때 절대악몽(호러, 스릴러 부문)이 상 받을 확률이 높겠구나 해서…. 농담이고, 결과적으로 수상까지 하고 동년배인 허정 감독님에게 진심 어린 응원이 담긴 상을 받았을 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엄태화 감독님도 그때 같이 심사한 걸로 아는데.
엄태화 물론 기억하고 있다. 그때 호텔방에서 혼자 시나리오 마감 중에 영화를 봤다. 틀자마자 너무 무서운 거다. 당연히 수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엄청 밀었다. 장재현 감독님이 상 받고 울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까지 울컥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잘 우는 분이더라.
장재현 하하, 그땐 진짜 많이 울었다. 그리고 당시엔 수상자들에게 메가박스 카드를 줬다. 1년 동안 하루에 한편씩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었다. 최고였지.
한준희 학생들에겐 그런 게 정말 큰 도움 아닌가. 우리도 해볼 수 없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