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의 클로징] 서울의 봄
글
김수민
2025-04-03
소련 사회주의가 실패한 시점은 언제인가. 소련 공산당에 향수가 있는 자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지목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레닌 때는 좋았는데 스탈린이 파괴했다”고 한다. 김규항씨 같은 원칙적 사회주의자는 레닌 시절 이미 권력이 소비에트에서 공산당으로 넘어가면서 소련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짚었다. 여기에 얼마간 동조하면서도 내가 가리키는 시점은 다르다. “러시아혁명은 처음부터 망해 있었다.” 봉기한 인민들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혁명이었을 것이다. 다만 혁명 직전 러시아에 민주주의의 씨앗과 산업 기반이 부족했던 것은 혁명 이후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러시아가 자행하는 전쟁 범죄도 소련 시절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다. 사건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는 사건 이후를 기속한다. 이 글을 쓰고 넘기기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점에 깔리고 인터넷에 걸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가 포고령을 통해 군경에 국회 활동 금지를 명령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파면의 명분은 물론 내란죄까지 입증되었다. 내가 내다보는 곳은 다른 데 있다. 그 패거리들을 처벌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한국 사회에 변혁이 오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내(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대통령의 내란을 진압할 만한 실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탄핵 반대는 탄핵 찬성을 절대 웃돌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극우의 준동은 민주화 이후 최대치를 찍었고 한국 사회의 대처 능력은 고갈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보다 정치가 나빠졌다는 것을 부인할 도리가 없다. 오늘날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구도는 2019년 가을에 들어선 ‘광화문 대 서초동’이다. ‘광화문’은 형사재판에서도 중형을 선고받는 범죄자를 두고도 “탄핵은 잘못된 것이었다”라고 하던 자들의 집회고, ‘서초동’은 불공정 논란을 넘어 불법 증거가 나타난 고위공직자를 비호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했다. 과거 기득권세력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틀어막고는 했지만 일단 터져버린 것에 대해서는 일부를 인정하고 사과했고, 종종 인적쇄신이 동반되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정치는 백일하에 불거진 것도 부정하는 걸 기본 전략으로 삼는다. 기묘한 것은 이 대결이 계속될수록 부패한 참가자들의 힘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 전후의 다자 구도는 무너졌다. ‘아무리 못해도 30~40%를 먹는 판’이 되어버렸다. 근래 한국 정치의 표밭에는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만 남은 듯하다. 가령 상속세의 최고세율을 낮추거나 공제한도를 상향하는 논의에 이를 만회하는 소득세 인상은 빠져 있다. 재정이 위축되면 피해는 하위층에 가지만 정치인들은 득표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다. 서민과 빈민은 적당히 갈라지고 흩어진다는 것, 누구도 이 질서를 갈아엎고 새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것. 곧 들이닥칠 일들만 해도 아찔하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해도 혁명 아니겠냐?” 내란 우두머리는 집권층 잔당의 최대 주주로 행세하며 당내 경선을 좌우하고 대선을 흔들 것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는 사법리스크에 비틀거리며 혼란을 가중할 것이다. 꽃샘추위가 물러가자마자 폭염의 기운이 엄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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