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범죄자 권양래(신민재)를 현혹하는 개척교회의 목사 성민찬(류준열)의 말은 참이다. 교회의 기본 교리가 신 앞에 스스로를 죄인으로 둔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이 교회에서 소임을 다하는 민찬이 누구보다 죄의 구렁텅이 속으로 행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찬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들이 그저 하나님이 내린 계시고, 자신은 소명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민찬은 정말 신과 직접 소통하는 대리자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신의 섭리를 들먹이는 악한에 불과할까. 민찬을 조명하는 연출의 확실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배우 류준열은 영화의 매듭을 한번 더 꼬며 민찬의 층위를 새로 만든다. 그리고 류준열은 이 매듭을 관객들이 직접 풀길 희망한다.
- 연상호 감독이 당신을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질문이 많았다”고 회상하더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플롯의 인과가 잘 들어맞는지, 내가 뱉는 대사나 캐릭터의 행동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 길과 부합하는지 의문이 들 때면 언제든 감독님에게 대화를 청했다. 혼자서 오래 고민하면 타성에 젖기 쉬우니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촬영 직전까지 풀리지 않은 장면이 있었다. 선회 방향을 고민할 새가 없으니 이대로 찍겠구나 싶었는데 긴급하게 감독님과 이야길 나눠 모두가 만족할 만한 새로운 방향이 세워졌다.
- 어떤 장면인가.취조실 장면이다. 취조 과정에서 민찬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며 형사를 말로 현혹하는 신이라 본래 대사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대사 없이 정조로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흐름상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 버전이 최종 상영본에 담겼다.
- 언급한 대로 대사가 많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정작 민찬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대사는 적다. 단서를 발산할 수 있는 가짓수가 제한된 배역이라는 점에서 <올빼미>의 천경수가 겹쳐 보인다.
어떤 캐릭터든 나로부터 출발하는 편이다. 그래서 배역으로부터 나 자신을 완전히 배제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가령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상황에 놓이면 큰 소리를 내기보단 우선 그렇게 된 까닭이 있을 거라며 수용하는 쪽이다. 민찬이 극적인 상황에 놓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에 저항하기보다는 일단 계시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고 <올빼미>의 천경수 또한 작품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큰 이상과 의도를 품은 캐릭터는 아니라고 봤다. 인간 류준열을 경유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해석 아닐까.
- 극한의 클로즈업이 많다. 연출과 촬영이 번민하는 민찬을 배우가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연기자로서는 어땠나.
<계시록>은 배우로서도 특별한 길을 걸었던 작품이다. 배역에 접근했던 기술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방식이 지난 10년과 달랐기 때문이다. 마침 연기로 새로운 무언가를 내보일 순 없을까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민찬을 연기할 땐 감정을 표출한 이후 그것이 남기는 잔상을 먼저 고려했다. 늘 작은 실마리를 가지고 배역의 외연을 확장해갔는데, 이번엔 확장의 예상치를 가지고 거꾸로 감정의 경로를 되짚어간 것이다. 감정의 파문을 토대로 귀납적으로 배역의 이모저모를 만드는 새로운 시도 끝에 나온 작품이라 과정과 결과에서 전과 다른 색깔이 감지됐을 것 같다.
- 새로운 방식을 택한 계기가 민찬의 캐릭터나 <계시록>의 서사와 관련이 있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다. ‘<계시록>은 다르게 해봐야겠다’는 일념에서 출발하진 않았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연상호 감독님과 나누고 감독님의 디렉션을 받다 보니 기술을 바꾸게 됐다. 이 접근이 앞으로의 배우 생활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작품 공개 이후 관계자들의 후기가 특히 궁금하다.
- 확실히 민찬은 관객 입장에서 마냥 호감을 느끼긴 힘든 캐릭터다. 그럼에도 민찬의 궤적이 관객과 어떻게 감응했으면 하나.
이 역할이 선역일까 악역일까에 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데 민찬은 자신이 행하는 일이 선이라 믿으며 여러 선택을 내린다. 그러니 민찬을 연기한 나 또한 민찬의 행동을 선이라 믿을 수밖에. 결국 <계시록>은 무엇이, 또 누가 선이고 악인지 질문하는 이야기다. 나 또한 민찬이 선인일지 악인일지 관객에게 질문하고픈 마음이 크다. 누구나 스스로의 믿음에 근거해 가치를 판단한다. 악인조차 자신의 행동을 양심의 가책 없이 선이라 믿으니 말이다.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나는 나의 믿음을 선택할 것인가. 죄의식의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질문이다. 민찬이 가진 믿음의 옳고 그름을, 그리고 믿음을 통해 내린 선택의 가치를 <계시록>을 관람한 모두가 자유롭게 나누었으면 한다.
- 데뷔작인 <소셜포비아>가 개봉 10주년을 맞이했다. 이 작품의 주제가 여전히 현실에 메아리친다는 점이 섬뜩하기도 한데.
내겐 더없이 소중한 영화다. 영화를 하는 이유가 <소셜포비아>의 의의에 녹아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누구에게나 ‘이야깃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작품 아닌가. <소셜포비아>가 던지는 이야기는 제작 당시에도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여전히 이 사회를 경각하게 한다는 점이 낡지 않는 작품의 가치를 방증한다. 여전히 회자되는 출연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기쁘다. 한데 10년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여전히 사회의 단면을 적시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선 슬프다.
- 그렇다면 <계시록>은 어떻게 나이 들어갈까.<소셜포비아>와 <계시록>, 그리고 그 사이에 찍은 <침묵> 모두 유사한 주제 아래 놓여 있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인간의 습성이 어떤 파괴력을 갖는가를 이야기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를 전하는 작품을 만날수록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이 궁금해진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그 본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내가 사진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기 위함이다. 사람을 탐구해야 하는 배우에겐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내가 작품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 또한 시간이 지나도 같은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그래서 세상이 나아지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