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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생애 마지막 날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숨> 윤재호 감독, 남희령 작가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5-03-20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고 10년 뒤의 나에게 영상 편지도 남기지만 어쩐지 죽는 순간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죽음은 생명을 지닌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데도 그 보편성만큼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모른 척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주제. 미룰 수 있는 한 최대한 유예시키고 싶은 언젠가. 탈북민 여성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마담B>를 비롯해 <뷰티풀 데이즈> <파이터> 등 대중이 가볍게 들여다보지 않는 이야기를 조명해온 윤재호 감독이 이번에 절명의 시간을 헤집었다. KBS1 <아침마당> 메인작가로 온기 있는 이야기를 그러모아온 남희령 작가와 <송해 1927> 이후 두 번째 작업을 함께하면서 인류사적인 탐구로 동심원을 넓혔다. 죽음은 어떤 형태로 우리 주변부에 존재하고 있을까. 살아 있는 모든 이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두고 생과 사의 성좌를 유영했다.

윤재호 감독, 남희령 작가(왼쪽부터).

- <>을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전 인터뷰에서 2017년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연출 계기를 소개했다. 하지만 <>은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을 감상적으로 전하는 방식이 아닌, 죽음에 담긴 사회학적 시선으로 이야기를 뻗어간다. 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윤재호 시작은 사적인 관심이었다. 2017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장례를 치르고 타인의 죽음을 몸소 경험하면서 내 안에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장례지도사같이 죽음을 다루는 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증이 커져갈 즈음 동네에서 파지 줍는 어르신을 우연히 보았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불쑥 올라왔다. 누군가에게 쓸모가 없어진 물질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주고 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모든 것이 돌고 돈다는 것을. 처음에는 장례지도사와 파지 줍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해보려 했는데 남희령 작가를 만나면서 유품정리사도 알게 되었다. 세 인물을 따라다니며 작품의 궁극적인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단순히 죽음에 대한 내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들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런 여백을 만들고 싶었다.

남희령 <>의 주제를 들었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은 “아휴, 무겁다”였다. (웃음) 왜 또 이렇게 힘든 걸 하려고! 근데 그게 윤재호 감독과 어울렸다.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니까. 사실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말할 수 있는 죽음과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말할 수 있는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유재철 장례지도사가 보는 죽음은 비교적 안정적인 죽음에 가깝다. 곁에 가족들이 모여서 슬퍼하고 애도하고 망자를 그리워하니까. 그에 반해 김새별씨가 보는 죽음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슬픈 죽음이다. 처음 감독님이 장례지도사와 노인을 좇는다고 했을 때, 본래 의도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유품정리사의 이야기까지 모두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김새별씨가 떠올랐다. <아침마당>을 하면서 알게 된 인연인데 그를 만나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연결해드렸다.

우리의 삶에 스며든 이름 없는 불평등

- “누군가는 좋은 환경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곳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우리 삶의 시작점은 불평등에서 시작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초반부 내레이션은 윤재호 감독의 목소리로 담겼다. <>이 정의내린 생과 사의 의미처럼 다가온다.

윤재호 내가 <>을 만들게 된 이유를 영화 속에 던지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과도 같다. 내레이션에도 정말 많은 고민이 담겼다. 넣을까 말까. 넣는다면 어떤 형식으로 넣을까. 50개가량의 버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화를 작업하며 했던 모든 사유를 내레이션 형식으로 만들어서 그 비중도 무척 컸다. 하지만 너무 많았다. 필요한 만큼만 활용하자는 결론으로 조금씩 걷어냈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다. 왜 불평등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시작될까.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탄생을 내가 선택할 수 없었듯 죽음의 방식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사는 것만큼 죽는 것 또한 불평등하다.

남희령 내레이션을 많이 걷어냈다. “왜 이렇게 많이 들어가요?” 하고 질문하기도 하고. (웃음) 고백하자면 나는 초기 버전도 좋았다. 나는 늘 윤재호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그래서 감독님이 자신의 목소리로 관점을 드러낼 때 그 궁금증이 해소되기도 했다. 다만 관객들도 나와 똑같이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개인적인 부분을 많이 거두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살리자고 의견을 냈다. 여전히 헷갈리긴 한다. 27년간 방송작가를 하다보니 시청률의 소수점까지 맞히는데 영화는 정말이지 아직도 어렵다.

- 영화에 등장하는 유재철 장례지도사의 직함은 무려 전통장례명장 1호다. 지난 30년간 6명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치렀다. 그가 영화에 어떤 죽음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나.

남희령 유재철 장례지도사는 최규하,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례를 직접 진행하고 법정 스님과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의 장례를 거치기도 했다.

윤재호 그래서 만나기 전부터 부담감이 컸다. 왠지 어려운 분일 것만 같고 엄청 냉철하고 철학적일 것만 같아서 긴장했다. 그런데 첫 만남에 막걸리를 권하시며 푸근하게 맞이해주셨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격식을 차리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거기에 빠져들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를 때만 해도 그때 보았던 장례지도사 선생님은 인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인가? 정말 이상하게 다가왔다. 그땐 나 또한 이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기도 했고. 그런데 유재철 선생님을 뵙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구나. 죽음을 보내는 것도 결국 사람의 일이구나. 우리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구나.

남희령 우리에겐 알게 모르게 편견이 다 있다. 전 대통령의 염장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까? 엄청 럭셔리한 삶을 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유재철 지도사의 삶은 소박하고 소탈하다. 동네 장어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도 있다. (웃음) 또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뭘까. 직업적으로 냉철하고 철학적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또한 편견이다. 죽음을 다루는 것은 그에게 직업이자 생계이고 삶의 일부다. 엄청나게 철학적인 의미를 막 쏟아낼 것 같지만 그저 일상적인 둘레 안에서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뿐이다.

우리 외롭지 말아요, 행복하게 지내요

- 앞서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마주하는 죽음이 각기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처리하는 무연고자의 죽음은 어떤 면에서 동시대 사회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무연고자 위령제를 진행하던 참여자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죽음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남희령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목도하는 풍경은 극단적인 외로움이 담겨 있는 모습이다. 최근엔 고독사 중 노인의 비율은 높지 않다고 한다. 주민센터의 정기적인 케어와 사회복지사의 방문 덕이다. 다만 4050세대의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가족이 해체된, 그러나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려운 세대에서 무연고자 사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혹은 20대에서도 많이 일어난다. 고시원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경우가 그렇다.

윤재호 고독사의 경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듯 방이 엉망인 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정말 고민이 컸다. 이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괜찮을지 쉽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생존 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떠나기 전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자신의 흔적을 기억해 달라는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남희령 김새별씨는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의 모델이다. 나는 그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는 사이 사람이 훨씬 더 깊고 성숙해졌더라. 너무 많이 달라졌다. 아마도 무수한 고독사의 현장이 그를 성숙시킨 듯하다.

-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망자의 물품을 보며 그의 삶을 추측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영화에서 IR52 장영실상 상패가 나왔을 때 망자의 치열한 삶이 느껴져서 서글퍼졌다. 고독사 현장에서 어떤 단상을 느꼈나.

윤재호 정말 쉽지 않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엄청난 냄새가 압도적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을 초월한다. 옷에서도 냄새가 쉽게 빠지지 않는다. 한국에 그런 미신이 있지 않나. 죽은 사람의 집에 갔다오면 소금을 뿌려야 한다는. 촬영을 마친 날 아내가 내게 그렇게 하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이내 ‘이게 대중의 인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김새별씨가 식당에 가면 그를 내쫓거나 이사를 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처리하는 게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눈총을 주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새별씨도 더더욱 무연고자의 사연을 추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라도 이 사람을 기억해줘야지, 하면서. 이 장면을 찍으면서 나도 많이 서글펐다. 장영실상을 탔던 이도 결국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막연해지더라. 그때 김새별씨가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는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죽음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삶의 가치를 더 느끼게 된다.

남희령 그래서 성과 위주의 삶을 지양해야 한다. <아침마당>을 진행하며 많은 말기 암 환자를 인터뷰해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한부 선고를 받는 순간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시간이 유한해질 때 초 단위로 알뜰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낭비되는 시간 하나 없이. 내가 35살에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하혈을 심하게 해서 조금이라도 응급실에 늦게 도착했으면 유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죽을 고비 앞에서 주마등이 어떻게 스치는 줄 아나. 화려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살면서 조금 웃었던 날들, 내가 아이를 혼냈던 날, 날씨가 좋았던 순간들, 이런 게 떠오른다. 그러니 성과 중심적인 태도는 삶의 질을 높이지 못한다.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순간 내 삶 자체가 지옥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작은 행복을 여러 군데에 만들어두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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