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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분열한 세계를 통섭하는 길, <콘클라베> 피터 스트로갠 작가
정재현 2025-03-20

“각색된(Adapted) 시나리오에 수여하는 각색상은 전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에 돌아갑니다. 받아 마땅하죠. 여행 중에 그 나라에 맞는 어댑터를 찾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던가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 시상자로 나선 배우 에이미 폴러는 근사한 유머를 곁들이며 <콘클라베>를 수상작으로 호명했다. 앞선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각본의 우수함을 인정받은 <콘클라베>는 공개 이래 전세계를 여행하며 북미와 유럽에서 쏠쏠한 수입을 거뒀다. 교황 선출 비밀 회의를 위해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의 이전투구가 세계 각국이 현재 당면한 저마다의 전압으로 변환돼 흥행 가도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제판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등 각종 밈을 만들며 SNS에서 화제성까지 독식해냈다. 흥행 기록과 함께 주목할 만한 현상까지 일으킨 <콘클라베>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프랭크> 등의 각본을 쓴 피터 스트로갠에 의해 지어졌다. <씨네21>과 피터 스트로갠이 국내 단독으로 나눈 <콘클라베> 이야기를 전한다.

- 시나리오를 퇴고한 이후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과 함께 촬영 현장에 출퇴근했다고. 당신의 글이 눈앞에서 배우들에 의해 육화되는 광경을 지켜본 경험은 어떤 자극을 주던가.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에드바르트가 나를 촬영 현장에 초대해주었고 모든 크루들이 나의 방문을 언제나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다. 대개 시나리오작가는 자신의 작업물을 마감한 이후, 이를테면 프로덕션과 포스트프로덕션에서는 소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장에 상근하는 동안에는 익숙했던 고독감이 해소됐다. <콘클라베>를 통해 영화를 위해 쓰는 글엔 일정 부분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특정 배우들이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울프 홀> 등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을 주로 각색해왔다. 이번 작품 역시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 소설이 존재한다.

각색은 결국 원전을 줄이고 농축해내는 공정이라 대개 영화화 과정에서 일종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복잡한 플롯 때문에, <울프 홀>은 방대한 서사구조 때문에 대대적인 재편이 불가피했다. 반면 <콘클라베>는 이미 플롯과 배경 설정이 잘 갖춰져 있어 다른 작품에 비해 난점이 적었다. 정말 나만 잘하면 됐다. (웃음) 작가 자신과 깊이 연결되는 핵심을 원작으로부터 찾아내는 것이 각색의 출발이다. 그렇게 찾아낸 수많은 연결점이 각색 중에 내려야 할 수많은 결정을 인도하는 나침반으로 작동한다. 이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원작의 ‘정신’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

- 어떻게 지금의 시나리오가 탄생했나. 초고를 쓴 이후 세 번째 수정본부터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이 각색에 함께했다고 들었는데.

<콘클라베>는 초고부터 이미 잘 굴러가는 이야기였다. 에드바르트가 합류한 이후엔 스릴러와 드라마 요소간의 균형을 맞추고 소소한 유머 포인트를 점검하는 등의 세부 조정을 거쳤다. 결말 부분, 특히 베니테스 추기경(카를로스 디에스)의 마지막 장면과 그 이후 전개에 대해 가장 많은 논의를 거쳤다. 공간적 배경이 서사에 잘 녹아들게 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콘클라베에 갇히는 순간이어야 했고, 이야기의 마지막은 닫혔던 창문이 열리는 순간이어야 했다.

- 원작 소설은 로렌스 추기경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고 그의 혼란한 내면 서술이 작품 전반을 이룬다. 하지만 로렌스의 번민을 온통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배우들의 연기를 무조건 신뢰할 수밖에 없었겠다.

인간의 내면을 가시적이며 이해 가능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드라마가 해내야 할 근본적인 역할이다. 내가 쓰는 모든 대사나 지문, 심지어 침묵의 순간도 드라마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이를 구현해내는 주체는 단연 배우다. 훌륭한 배우일수록 그 맹점을 정밀하게 표현해낸다.

- 로렌스(레이프 파인스)가 느끼는 신체의 노화가 원작에 비해 덜어져 있다. 의도한 선택인가.

배우의 신체적 특성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요소다. 따라서 거스르기보다 활용하는 편이 현명하다. 레이프는 실제로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고 허약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캐릭터를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기보다는 배우의 현재 상태에 맞춰 쓰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 의심과 확신의 상관성에 관한 로렌스 추기경의 초반 강론은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그의 연설문이 이야기 집필의 방향을 결정하는 축으로 기능했나.

원작에서도 두 키워드가 이야기를 떠받드는 기둥이었다. 이 테마가 영화에서도 핵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영화에 추가한 장면 또한 의심과 확신의 주제를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두고 배치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 아래에서 성장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 언어에 의해 발생하는 권력의 위계가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만드는 동시에 추기경들 사이의 진영을 나누는 핵심 도구로 작용한다.

허물어지고 분열한 세계를 하나로 통섭하는 길. 이를 탐구하는 것이 <콘클라베>의 본질이다. 갈라진 각 진영을 상징하는 장치로 다종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작중 라틴어는 교섭을 필요로 하는 두 세계의 통합을 시도하는 여러 방편 중 하나이다.

- 작중 바티칸 바깥에선 여러 시위가 벌어진다. 추기경들 역시 내부에서 갈등을 겪지만 적어도 콘클라베 기간 중엔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누리는 권력이 가소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시스티나성당에 가해진 테러와 이로 인해 빚어지는 유혈 사태가 중요하다. 안전을 보장받는 바티칸 내부와 대혼돈의 아수라장인 바티칸 외부를 가로막던 막이 찢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콘클라베 과정 중 바티칸 내부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는 결국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갈등을 축소한 하나의 축도(縮圖)라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 포용과 근본주의, 의심과 확신의 대립은 어디든 만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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