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두번을 넘어졌다. 도착 직전, 프레스 메일에는 “2월 베를린의 불친절한 날씨를 주의하세요”라는 알림이 있었고 퍽 친절한 말투로 들렸으나 현실은 냉정했다. 영화제를 다년간 찾은 다수의 베테랑 기자들이 ‘역대 베를리날레 중 가장 춥고 가장 눈이 많이 온 해’라고 한 말은 폐막쯤 이르러서야 기정사실로 판별됐다. 얼어붙고 위험천만한 것은 날씨만이 아니었다. 영화제 폐막일에 총선을 앞둔 베를린은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의 돌풍을 지켜보며 깊은 우려에 잠겨 있었다. 차선책인 보수 기독민주당(기민련, CDU·CSU 연합)에서 차기 총리로 유력한 메르츠조차 트럼프 닮은꼴로 불리며 반이민자법으로 극우층에 손짓하는 형국이니 사태를 알 만했다. 영화제 셋째 날 즈음에는 <스크린 데일리>가 외면받고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독일 일간지들이 더 많은 영화기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눈보라를 뚫고 프레스 오피스 로비에서 만난 통신원의 말이 사뭇 달리 들렸다.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죠? <설국열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우울과 염세도 베를리날레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안전한 영화의 독립국에서만큼은 참을 만한 무엇이었다. 때로 휑한 거리에 의아해하면서 상영관에 들어서면 언제나 믿기지 않을 만큼 인파가 북적댔고, 기자 상영과 일반 관객 상영 할 것 없이 웃음과 박수에 후한 유럽 관객은 신랄한 정치적 메시지에 적극적 지지를 표명했다. 하루 평균 세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유일하게 상영 중 커다란 박수가 터져나온 순간도 있었는데, <미키 17>에서 독재자 커플 마셜 부부를 향해 시원한 욕설을 퍼붓는 나오미 애키에게 쏟아진 통쾌한 응원의 박수였다.
정확한 창작은 시차를 공교롭게 한다
영화제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첫 주말. 두편의 영화에서 공교로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초반 화제작은 단연 비경쟁부문인 스페셜 갈라로 초청된 <미키 17>로 북미 기자들을 중심으로 독재자 캐릭터 마셜의 실제 레퍼런스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렸다. 단연코 기사 헤드라인을 자극하는 이슈였음은 분명하다. 기자회견을 앞둔 날 아침에 <씨네21>과 일대일로 만난 봉준호 감독은 미키 18의 총이 마셜의 볼을 스치는 장면을 본 미국 기자들이 실제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을 반영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질문하는 바람에 난감한 눈치였다(영화의 시나리오는 2021년에 쓰여졌다). 한편 개막 첫날 프레스 상영을 통해 공개돼 일찌감치 경쟁부문 강자로 떠오른 <드림스>의 미셸 프랑코 감독도 비슷한 처지였다. 멕시코인 발레리노가 자선 재단을 물려받은 미국인 여성 사업가와의 사랑을 위해 국경을 횡단하는 설정에서 문을 여는 <드림스>를 두고 라운드 테이블에 앉은 두명의 기자는 강경해진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관해 집요히 질문했다. 물론 프랑코의 답도 봉 감독과 비슷했다.
이들의 사례는 창작자의 통찰이 본질에 가닿을수록 제작 시점과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시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방증이 되어준다. 독재자, 파시즘, 폭력과 차별의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며 인간 본질을 세공하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특정한 실제 사건을 반영하려는 목표와 별개로 세상에 톱니바퀴를 맞춘다. 봉준호와 미셸 프랑코 모두 반드시 ‘그’를 재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나, 동시에 자신들의 영화가 오늘날 우리를 염려하게 하는 특정 인물과 정치적 맥락에 부착되어 해석되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두 감독을 연달아 만난 날 밤에 시네맥스 앞에 있는 복합 쇼핑몰에서 늦은 저녁으로 핫도그 하나를 쑤셔넣었다. 옆에서 병맥주를 손에 들고 <미키 17> 관람기를 나누는 멕시코 영화인들이 봉준호 감독의 트럼프 풍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글쎄, 한국에 더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열띠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베를리날레를 위해 지하철 종일권은 필수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다머 플라츠는 베를린장벽이 최초로 철거된 지역으로 곳곳에 장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과거 베를리날레는 이곳에 위치한 ‘베를린 팔라스트’ 대극장을 상징적 중심지 삼아 중앙화를 추구해왔다. 소니 센터 내 약 8개 상영관으로 이뤄진 시네스타(독일의 대형 멀티플렉스)가 포럼과 파노라마 부문 등 많은 상영을 담당해왔는데, 2019년부터 경영난으로 영업을 종료하면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베를린 TV타워가 보이는 알렉산더 플라츠의 시네스타 큐빅스가 대안으로 떠올랐고, 코로나19 팬데믹 중 베를린 전역에서 야외 상영을 실시하는 실험을 거친 후 전반적인 상영지구의 다핵화가 현재의 기조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기자가 찾은 올해 베를리날레는 팔라스트 바로 옆에 위치한 시네맥스 극장조차 리모델링을 통해 좌석수를 절반가량 줄인 탓에 프레스 상영 위주로만 운영됐다. 티르가르텐 지역의 예술아카데미(Akademie der Künste, ADK), 샤를로텐부르크의 유서 깊은 극장 주 팔라스트, 개보수 후 문을 연 소규모의 예술영화관 델피 필름팔라스트, 가수 아이유가 티켓이 3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콘서트를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한 2천석 규모의 아레나(우버 이츠가 스폰싱해 우버 이츠 뮤직홀로 이름이 바뀌었다) 등이 곳곳에서 관객을 분산 수용했다. 탈중앙화라는 측면에서 영화제와 만나는 베를린 시민들의 접근성이 증가했지만, 밀집된 축제의 분위기가 주는 감흥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멀티플렉스가 폐업하거나 좌석수를 줄이는 흐름 또한 오랫동안 베를리날레를 찾은 산업 관계자들에겐 위기의 신호다. 한편 베를린 초심자는 상영관간 거리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해 지하철에서 심장을 졸이기 일쑤였다. 한번은 베를린에서 가장 비싸다는 호텔 아들른 켐핀스키 옆에 자리한 ADK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갔으나 간발의 차이로 늦는 바람에 입장을 거부당하기도 했다(클로드 란츠만 감독이 <쇼아>를 제작한 과정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올 아이 해드 워즈 나싱니스>를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같은 처지의 대만 기자가 계단에 쭈그려 앉으면서 “난 여기서 잠시 다음 계획을 생각해봐야겠어”라고 너무 처량하게 말한 나머지, 나도 나란히 앉아서 다음 영화를 찾았다. 역시나 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만 하는 거리였다. 차비가 아까워질 무렵에 옆자리 전우가 눈을 반짝이며 알려준다. “BVG 앱에서 종일권을 끊거나 일주일치를 미리 사두면 훨씬 싸.” 프레스 오피스에선 알려주지 않은 팁이었다.
아픈 사람들. 특히 엄마들
영화제 5일차. 다이어리에는 빼곡히 아픈 사람들의 기록이 열거돼 있다. 카메라가 병원과 심리 클리닉의 복도를 드나드는 일도 허다했다. 에릭 로메르의 그림자를 밟는 듯한 프랑스영화 <아리>(경쟁부문)는 직업과 관계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기 힘들어하는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인 젊은 남성 아리를 따라간다. 아버지는 그를 “언제나 그만두고 망치고 낭비하는” 인간이라고 치부하지만 영화는 포용력 있는 시선으로 사회적 규범에 복속될 수 없는 운명도 있음을 포착해낸다. 신음하는 또다른 청년으로는 데뷔작을 위해 신설된 퍼스펙티브 부문의 오스트리아영화 <하우 투 비 노멀 앤드 오드니스 오브 디 아더 월드>도 있었다. 한결 발랄한 품성의 자비에 돌란을 연상시키는 플로리안 포흘라트코 감독은 평생 자해와 도피성 행동, 충동장애에 시달려온 젊은 여성이 외계 조직과의 만남을 망상하는 방황담을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하필이면 초반에 몰아본 영화들이 우울, 무기력, 트라우마와 강박, 편집증으로 점철된 경향 속에서 동시대의 징후를 읽어내야 하는 것인지 곱씹으면서 밤 10시에 또다시 극장에 들어섰다. 마음을 다독이는 영화 한편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영화 <이프 아이 해드 레그스 아이드 킥 유>(로즈 번에게 주연배우상(은곰상)을 안긴 영화)가 시작한 지 약 10분 만에 이마를 짚으며 “이번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다. A24 아니랄까봐 비슷한 선상의 영화들과 나란히 두어도 괴롭기로는 1등이었다. 이혼 후 아픈 딸을 홀로 키우는 심리상담사(이자 알코올중독자)의 집 천장에 어느 날 거대한 구멍이 뚫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천장의 구멍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로즈 번의 망상이 컬트적으로 펼쳐진다. 할리우드 주류 스튜디오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을 방식의 점프스케어를 선사하는 영화 덕분에 늦은 밤 졸기 시작한 기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로즈 번을 시작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살기 힘들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속출했다. 경쟁부문에서 주목해서 볼만한 또 다른 작품으로는 <마더스 베이비>가 떠오른다. 만약 로즈 번 다음으로 주연상 후보 상위권에 올랐을 이름을 점쳐본다면 단연 남성배우로는 <블루 문>의 에단 호크를, 여성 후보로는 <마더스 베이비>의 주인공 마리 로이엔베르거를 꼽을 만하다. 난임 끝에 의문의 클리닉을 방문 후 임신·출산에 성공한 주인공이 자신의 신생아가 어딘가 비정상적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오스트리아 버전의 <로즈메리의 아기>가 펼쳐진다. 짐짓 점잖은 드라마의 표면을 띤 이 영화가 심화하는 컨셉은 심리 호러 그 이상의 괴이한 상상력이다. 바야흐로 정신질환의 시대에 동시대 영화들은 장르적 허용을 동반해 내상의 실체를 시각화하는 중이었다. 비슷한 계열의 영화들로 평자들이 자주 회자한 비경쟁부문 영화 중에는 <허니 번치>도 있다. 1970년대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캐나다 영화 <허니 번치>는 환각을 오가면서 결혼 생활의 위기를 스릴러로 승화시킨다. 레베카 렌키비츠의 소설을 영화화한 <핫밀크>와 마리옹 코티야르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아이스 타워> 역시 모녀 관계에 기반한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독특한 뉘앙스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신임 집행위원장 트리샤 터틀의 취임과 함께 올해 경쟁부문의 절반을 여성감독의 영화가 차지해, 역대 베를리날레 중 다양성 지표로는 가장 우수한 단면을 내보였다고 평가받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테마적 경향으로도 보인다.
거울로서의 자연, 마술 하는 스크린
영화제 중심지의 한 호프집에서 <봄밤>으로 포럼 부문에 초대된 강미자 감독과 시네마달팀을 만났다. 강미자 감독은 저예산영화에 어렵게 촬영 허가를 내준 제주도 저지리 인근의 요양병원 수녀 원장님으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내친김에 물어보니 영화의 결정적 장면을 견인한 주변 로케이션이 모두 수녀님의 소개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간 곳들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지나고 새파란 새벽을 내어주는 제주의 들판에서 찍은 영화이기에, 지난밤 상영에선 스크린이 너무 밝게 송출돼 아쉬웠다는 전언도 뒤따랐다. 서로를 향해 부르짖을 몸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연인이 그 몸마저 잃어가는 가슴 아픈 사랑의 기록인 <봄밤>에서 ‘봄의 밤’은 배우의 얼굴과 몸짓을 제외하고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상함이 십분 이해가 됐다. 한편 홍상수 감독의 신작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의 젊은 시인은 여자 친구를 따라 그의 아버지가 지은 교외 주택에서 하루를 보낸다. 가족의 성에서 이방인으로 탐문받게 된 남자는 본의 아니게 종종 곤경에 처한다. 오래된 차, 명망 있는 아버지, 시인이라는 직업, 자족하는 삶에 대한 소신이 주고받는 술잔 속에서 점점 격양될 무렵 남자는 정신을 잃는다. 깨어난 그를 받아주는 곳은 별과 달이 아름답다는 산중턱뿐이고, 우여곡절 끝에 홀로 다시 떠나는 아침, 그의 차는 덜컥 멈춰 서서 남자를 길 위에 내버려둔다.
올해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을 나란히 받은 두 남미 영화 <블루 트레일>과 <더 메시지> 역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제 기간 내내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은 가브리엘 마스카로 감독의 <블루 트레일>은 근미래의 디스토피아가 노년층을 배제하자 아마존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생존기다. 아마존의 품을 닮아 제법 유쾌하게 진행되는 이 풍자극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과하며 연령 차별, 그리고 억압적 전체주의의 미래를 경고한다. <더 메시지>엔 보호자들로부터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이용당하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대개 침묵에 잠겨 있는 이 아르헨티나 드라마는 소녀와 동물들을 아울러 물질 세계가 경시하는 영혼의 고통이 있음을 발견해내는 성장담이다. 라브 디아즈와 협업했고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제자로도 알려진 리릭 델라 크루즈 감독의 데뷔작 <웨어 더 나이트 스탠스 스틸>(퍼스펙티브 부문)도 정원의 풍경 속에 정지한 매우 적은 수의 숏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이탈리아의 저택을 물려받아 타국에서 재회하게 된 필리핀 노동자 가족에게 정원은 명상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상처와 식민 지배의 유령, 종교적 뿌리를 비추는 캔버스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만난 몇몇 인상적인 영화들에서 자연은 체제 밖에서의 인간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돕는 생태적 심상인 동시에 개인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내면적 겸손의 장소이자 역사의 거울이었다.
그 많은 죽음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황금곰상 수상작 <드림스(섹스 러브)>의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 감독(가운데)과 프로듀서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전례 없는 파격은 없었다. 지난해 황금곰상을 마티 디옵의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 <다호메이>가 가져간 것에 비하면 우아하고 지적인 10대 성장담인 다그 요한 하우거루드의 <드림스(섹스 러브)>에 최고상을 안긴 선택도- 반발을 살 정도는 아니지만- 다소 부드러운 결말이다. 예산과 규모 면에서 영화제의 약세를 우려하는 시선 앞에 전반적인 라인업의 견고함과 일관성은 분명히 증명한 한해였다. 경쟁부문에서 제75회 베를리날레의 단 한편으로 기억할 상징적 작품을 고르라면 라두 주데의 <콘티넨탈 ’ 25>(각본상)을 호명하고 싶다. 급격한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인 루마니아의 도시 클루지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뒷받침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도시 청소에 한창이다. 산과 들을 헤매며 쓰레기를 줍는 노숙인이 시설 입소를 앞두고 맞이하는 너무나 가슴 아픈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죽음의 방조자이자 일부는 가해자이고 또 목격자인 공무 집행관 여성의 트라우마 치유기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주인공 오르솔야가 가족, 상담사, 직장 동료, 신부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구원받기 위해 애쓰는 광경을 목도하는 동안 스크린 뒤편엔 연민과 냉소의 그림자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엎치락뒤치락했다. 대극장에서 초연된 라두 주데의 ‘아이폰영화’는 단순하고 직설적이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 복잡할 수 없는 사회적 함의를 품고 있었다. 갈라 상영을 앞두고 주요 감독, 배우들이 자신의 초상화 위에 사인하는 행사에서 라두 주데는 트럼프와 푸틴을 향한 욕설을 적었고, 초연 직후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도 육중한 체구에 반하는 가뿐함을 자랑하며 무대 위에 올라 마지막 소임까지 다했다. 2021년에 <배드 럭 뱅잉>으로 한 차례 황금곰상을 수상했지만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이렇게 작은 영화를 불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마친 뒤 그는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대개 간소한 코멘트와 인사로 갈무리하는 여느 감독들과 달리 그는 명랑하게 모든 스태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무대 위로 불러내 아주 공평하고 나란하게 세워두웠다.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그림이었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 올해 베를린에서 가장 저화질의 영화를 자랑했으나 누구보다도 무대를 가득 채운 감독과의 밤이 영화제 후반을 든든하게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