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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불안한 토대 위 영화제, 언제까지 지속될까, 서울독립영화제의 영화진흥위원회 사업 보이콧과 영화제 지원사업 현황
이우빈 2025-02-28

2월19일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국내 및 국제 영화제지원사업’(이하 영화제 지원사업)에 미참여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올해 변경된 영진위 영화제 지원사업의 형태와 규모를 복원하라는 의견도 함께 피력했다. 서독제가 그간 개별로 받아오던 영진위의 지원사업이 올해 폐지되면서 서독제가 다른 중소 규모 영화제들과 경쟁해야 할 구도가 조성됐으며, 이것이 결국 영진위와 서독제의 민관 거버넌스 붕괴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영화계는 공모 보이콧을 통해 영진위 정책에 반발하는 서독제의 강경한 선택에 주목하는 중이다. 김동현 서독제 집행위원장은 보이콧의 이유를 “역사적으로 50회를 넘기며 국내 영화계 민관 거버넌스의 토대가 되어온 서독제의 정상화를 바라고 윤석열 정부의 영화 정책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더하여 2월21일에는 지역영화네트워크와 21개 영화제 관련 단체가 올해 영진위 지원사업의 세부적인 요강 등이 “소규모 영화제에 불리한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서독제를 비롯한 국내 개최 영화제가 맞이하고 있는 어려움의 배경이 무엇이고 현재 정부·영진위의 영화제 지원사업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서독제의 보이콧은 어떤 의미인가

서독제측이 지적한 문제의 핵심은 서독제의 단순한 재정 유지 차원을 넘어 서독제로 대표되는 영화계 민관 거버넌스의 붕괴에 있다. 서독제는 1975년에 처음 시작해 정부 기관인 영진위가 민관 기관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와 공동 주최해온 영화제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서독제는 국내 영화계에 대한 민관 거버넌스의 시작점이자 현재 남은 마지막 보루”라며 “영화제 주체인 영진위와 한독협의 의견과 무관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의해 서독제 지원사업이 사라지고 민관 거버넌스의 연결고리가 끊기는 것은 지금껏 쌓아온 한국 독립영화사의 역사를 지우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서독제가 영화제 지원사업에 공모하기 시작하면 독립영화계를 축소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명분을 주게 되므로 불가피하게 공모 미참여를 결정했다는 게 서독제의 뜻이다.서독제와 정부 정책의 갈등은 지난해 9월 무렵 영진위가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항목을 영화제 지원사업에 편입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독제는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사업을 통해 2023년 3억7천만원, 2024년 3억원 등 꾸준히 지원금을 받으며 민관 협치 형태의 영화제를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영화발전기금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특정 영화제를 개별 지원하기보단 서독제 역시 동등하게 지원사업에 공모해야 한다”라며 “서독제만 따로 지원할 특별한 사유가 없다”는 뜻에서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사업을 폐지했다(<씨네21> 1476호 포커스 ‘영진위의 서독제 지원사업 폐지, 수면 위로 올라와, 내년 서울독립영화제 지원사업 폐지에 반발하는 영화인들’). 영진위는 2023년에 56억원(41개 단체 수혜)으로 편성했던 영화제 지원사업 예산을 2024년 28억원(10개 단체 수혜)으로 대폭 줄였다가 올해엔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사업분의 예산을 더한 33억원으로 결정했다.

서독제가 영화제 지원사업에 공모했다면 서독제를 제외한 중소 규모 국내 개최 영화제의 지원 수혜액이 줄어들 예정이었다. 올해엔 33억원 규모, 총 20개 내외 영화제를 지원하는 것으로 지난해 대비 규모가 소폭 늘어났지만, “안 그래도 적은 지원금 규모에서 작은 영화제들이 서독제와 겨루게 되는 국면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영화제 관계자 A씨)라는 게 국내 개최 영화제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올해 서독제 집행위원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는 “공모를 통해 알량한 지원금을 받고 다른 영화제에 피해를 미치기보단 서독제 상근 직원의 인건비를 깎으면서까지 내린 어려운 결정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지금 현실은 삼각김밥을 먹던 사람들에게 김까지 뺏어서 맨밥만 먹으라는 처사다. 50년이나 이어온 상징성 있는 영화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마땅한 귀책 사유도 없이 불이익을 강요하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진명현) 공모에 보이콧한 서독제의 상황도 좋지 않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이대로 예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면 지난 블랙리스트 정국과 비슷하게 상금 부문의 예산을 절반가량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되고, 독립영화인과 관객에게 직접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남겼다.

영화제 지원사업에 대한 반발 드러나

서독제의 보이콧 사태는 자연스럽게 올해 영진위 영화제 지원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요점은 작은 영화제들의 사업 수혜 여건이 까다로워졌고, 대규모와 중소 규모 영화제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한 탓에 실무적인 차원의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올해 영화제 지원사업은 예년과 다르게 지원 대상을 대규모 영화제(5개 내외 지원)와 중소 규모 영화제(15개 내외 지원)로 구분하여 지원한다. 총사업비가 12억원 이상일 경우 대규모 영화제로 구분한다. 지역영화네트워크는 “산업성이 강조되는 중규모 영화제와 문화다양성을 추구하는 소규모 영화제를 하나의 범주에서 평가하겠다는 것은 영화제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와 행정편의주의가 빚어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영진위 지원사업엔 중소 규모 영화제에 대해 “지원 직전년도까지 3회 이상, 개·폐막일 포함 3일 이상 매년 개최”, “지원 직전년도까지 2개년 평균 장편 10편 이상 상영. 단편 3편당 장편 1편으로 간주”라는 신청 자격이 있다. 지역영화네트워크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영화제, 지역 영화제와 신생 영화제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불공정한 결정”이라고 응대했다. 다만 영진위 관계자 B씨는 “영화제의 신청 자격과 인건비 집행 관련 사항은 지난해와 동일하기에 올해부터 영진위가 더욱더 제한적인 정책을 펼치려 한 것은 아니”라며 “지난해 본사업 관련 간담회를 두 차례 열어 영화인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이고 올해도 최대한 공정한 사업 진행을 목표했으나 미비한 부분은 앞으로도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영화제 관계자 C씨는 “이번 영진위의 지원사업 요강엔 분명한 문제가 있다”고 짚어냈다. ‘12억원’으로 규정된 영화제 규모의 구분 조건이 모호하고 모순이 있다는 의견이다. 12억원이란 기준은 영화제 지원사업의 지원액을 포함한 금액이다. 그러므로 10억원 언저리의 예산을 운용하는 영화제들은 자기자본을 확보할수록 오히려 지원금 수혜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를테면 10억원 규모의 영화제가 중소 규모 영화제 부문에 지원하기 위해선 최대 2억원 미만의 지원금만 신청 및 수령할 수 있고, 되레 8억~9억원 규모의 영화제가 지원 금액의 최대치인 3억원을 받게 된다. 국내 개최 영화제 관계자 D씨는 “10억원 내외로 운용하던 영화제들은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는 지원액 때문에 당해 자기 예산 수립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며 “영진위가 배정된 예산을 최대한 집행하고 영화계의 비판을 덜 받기 위해 편의주의적으로 기준을 나눈 탓에 중소 규모 영화제가 불합리함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D씨는 “지난해엔 그나마 한국영화 상영작 편수라는 기준이 있어 영진위가 한국영화 살리기에 집중한다는 방향성을 명확히 가늠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영진위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실무진은 더욱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 E씨는 “1억원 규모의 영화제, 5억원 규모의 영화제 등의 구분을 더 구체적으로 나누거나 부문을 완전히 통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특정 영화제에 대한 쿼터 수혜 개념으로 적용되어 문화적 다양성과 새로운 영화의 큐레이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라며 “상영작 개수에 대한 조건 역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사업의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사업의 정책적인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더하여 코로나19 팬데믹이나 영화발전기금의 축소 때문에 지원 자격을 잃은 영화제의 경우 등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며 “올해 사업의 심사가 종료되고 나서 다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문체부 관계자 G씨는 “2024년 영진위 영화제 지원사업의 규모가 줄면서 발생한 영화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올해엔 20개로 지원 편수를 늘렸고, 앞으로도 영진위와 소통하여 영화제가 자생력과 지속 가능성을 골고루 확보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라고 응답했다.

2월19일 발표된 영진위의 ‘2025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 접수 결과 공지’에 따르면 올해 해당 사업에 지원한 영화제는 대규모 영화제 10개처, 중소 규모 영화제 28개처로 총 38개처다. 국내 개최 영화제 관계자 F씨는 “부산, 전주, 부천 영화제를 제외하면 대규모 영화제에 선정될 영화제는 1~2개에 불과하다. 10억~15억원 규모로 진행되며 사실상 중소 규모인 영화제들은 어쩔 수 없이 부산, 전주, 부천 등의 대규모 영화제와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된다”라고 평가했다. 올해 대규모 영화제 부문에 공모한 영화제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이 있다(표 참고).

영화제, 독립영화, 지역영화의 연쇄적인 침체…차후 대응은

위와 같은 배경에서 중소 규모 영화제의 어려움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경우, 지난 1월에 지난해 대비 강릉시의 정동진독립영화제 지원 예산이 7천만원 삭감되자 “분명한 이유가 없는 일방적인 예산 삭감”임을 토로하기도 했다. 2024년 1만4500명의 관객을 모으며 2023년 대비 79%의 관객수 증대를 기록했음에도 정부 기조에 따라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김슬기 정동진독립영화제 사무국장은 “시비 지원액의 축소에 더불어 영진위 지원사업의 불확정성이 늘어나면서 최소 30%가량의 예산 절감을 예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라며 “영진위 지원사업 등의 기본적인 공공 지원액이 줄어든다면 여타 후원액을 끌어모으는 일도 더 어려워진다”고 곤란한 상황을 밝혔다. “사실상 정치적인 프레임과 갈등으로 인해 지역의 오래된 영화제가 갑작스러운 생태계의 위기를 맞게 되어 속상할 따름이다.”(김슬기)

결국 영진위 지원사업을 포함해 서독제 예산 항목의 폐지, 독립영화 및 지역영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산 삭감 기조가 영화제 생태계 전반에 불안감을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영화네트워크 소속 김진유 정동진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최근 몇년간 독립영화, 지역영화, 영화제까지 연쇄 작용처럼 그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영진위가 영화문화 진흥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 피드백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드물기에 정부의 영화정책 방향성이 잘 정리되어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국회 추경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국회를 통해 꾸준히 서독제 지원사업과 영화제 관련 사업 예산의 복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에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독제의 영진위 사업 보이콧은 정부의 잘못된 예산 정책이 독립영화, 영화제 생태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위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독립·예술영화와 지역영화, 영화제의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예산을 보호”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