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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로의 약 처방,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김혜영 감독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5-02-27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이하 <괜괜괜>)는 그 제목처럼 모든 아픔과 상실도 괜찮다고 말하는 성장물이자 치유의 드라마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인영(이레)은 부모를 모두 여의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아가면서도, 생전 어머니의 꿈이었던 무용을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캔디형’ 인물이다. 그런 인영의 주위엔 마녀라 불리는 완벽주의 무용 선생님 설아(진서연), 무용단의 센터이자 라이벌 나리(정수빈), 동네 약사이자 인영의 해우소가 되어주는 동욱(손석구), 미묘한 연애 기류를 느끼는 동급생 도윤(이정하) 등이 모인다. 자칫 아픈 서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괜괜괜>의 분위기는 <멜로가 체질> <유니콘> 등 코미디 색채가 짙은 작품을 연출해온 김혜영 감독의 사려 깊은 웃음과 ‘말맛’을 통해 정말이지 밝고 착하고 웃긴 영화로 거듭났다. 직접 만나본 <괜괜괜>의 김혜영 감독은 <괜괜괜>의 밝음이 인물화된 것만 같은 다정한 수다쟁이였다.

- <괜괜괜>의 뼈대를 잡아나간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 받았던 각본엔 타임 루프 설정이 있었는데 각색 작업에서 빼게 됐다. 무용을 소재로 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란 골자는 살리되 인물들의 감정에 더 초점을 맞춘 성장물로 바꿔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성장물이라는 테마를 좋아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데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울림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인물들을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방식을 택하려고 했나.

<빌리 엘리어트> 같은 작품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무용으로 꿈을 이루겠다는 욕망이 확실하고 이야기가 끝까지 돌진하면서 관객을 매료하지 않나. 하지만 그보다 <괜괜괜>의 중점은 성장, 다른 말로 인물들의 관계 변화에 두고 싶었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는 노랫말처럼 친구에게 받은 상처는 친구에게, 스승에게 받은 상처는 스승에게 치유하면서 서로 함께 나아가는 흐름을 그리고 싶었다. 그게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 한편으론 인영과 설아가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대안 가족 서사로도 보인다.

맞다. 그렇지만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단순히 물리적인 어른과 아이의 관계로 치환하려 하진 않았다. 물론 물질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성인이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두 사람이 친구 같은 관계가 되기를 바랐다. 아동 행동 교정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의 문제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 어른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치료한다기보다는 어른을 고쳐서 아이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도 우리 시대의 금쪽이는 대개 어른이라고 느끼는 편이다.

- 인영이와 설아의 관계는 인영이가 설아의 집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급진전한다.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를 확 좁힌 이유는.

<괜괜괜>의 내용은 사실 치밀한 침투극이기도 하다. 인영이는 예술단에 숨어 살 때도 물건을 여기저기 숨겨놓고 자기만의 놀이터처럼 공간을 바꿔버린다. 자기만의 재치로 그 공간과 공간의 사람들에 자신을 스며들게 하는 거다. 설아의 집에 가서 처음 한 일 중 하나가 화장실에 수건을 거는 행위인데, 이건 곧 ‘인영이가 곧 이 집을 장악할 것이다!’라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웃음) 되게 사소한 신이지만 설아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보여주면서 인영의 침투극이 시작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 <괜괜괜>이 착한 영화인 이유는 결국 모든 인물의 속사정에 공감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원래 주위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편인지.

근처에 상대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네가 싫어서 너를 밟고 일어서겠어!”보다는 “나도 잘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데 쟤가 더 행복해 보여서 혼란스러워…”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조금 모순적인 말인데, 그런 사람일수록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구나 싶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에도 무용만 한 소재가 없다고 느꼈다.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열하게 몸과 마음을 쓰고, 자기가 서는 위치가 바로 자존감이나 질투 같은 감정으로 연결되지 않나. 명확한 메시지라든지 대전제를 하나 ‘탁!’ 두고 치고 나가는 것보다는 이처럼 복잡한 감정선들이 다 물리고 물리면서 영화가 나아가길 바랐다.

- 인물들의 감정을 살리는 직접적인 방식은 아픈 전사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괜괜괜>은 인영이나 설아의 가정사 등에 대한 단서를 조금 보여주는 데에서 그친다.

고민했던 부분이다. 인영의 부모에 얽힌 전사 를 넣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엔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지금 사는 것은 현재고, 다가올 미래도 끝없는 현재의 지속이다. 과거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그들의 지금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인영이의 아픈 마음을 치료해주는 조연으로 약사 동욱이 등장한다. 서로를 편견 없이 대하고 적절하게 치유해주는 관계가 눈길을 끌었다.

평소에 면역력이 약해서 염증 같은 게 나면 집 근처 소아과를 가기도 한다. 근처 약국의 약사 선생님도 친절하셔서 “많이 불편하셨죠?”라는 말씀을 건네시는데 그러면 약을 먹기도 전에 병이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결국에 약이라는 건 위로의 차원이기도 하고, <괜괜괜>에도 이런 위로의 시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약사 캐릭터가 생겼다. 진지하게 집 근처 약국의 약사님을 시사회에 초대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는데 실례인 것 같아서 그만뒀다. (웃음)

- 작품에 개인적인 사유와 경험을 많이 녹여내는 편인 것 같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매번 약 심부름을 시키시곤 했다. 아버지가 일종의 난치병 때문에 항상 몸이 불편하셨던 터라 난 그게 당연히 그 병에 대한 처방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쯤에야 그 약의 정체를 알게 됐는데 아로나민골드라는 영양제더라. <괜괜괜>을 만들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나을 수 없는 병일지라도 어떤 약을 꾸준히 드시면 나을 수도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가지셨던 것 같다. 그 생각이 곧, ‘그러면 지금의 인영이에겐 어떤 약이 필요할까?’라는 고민까지 이어지게 됐다. 인영이를 위로하려고 동욱이 주는 비타민, 인영이 설아에게 주는 비타민도 아버지의 영양제처럼 어떤 위로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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