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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영화는 차이와 다름에 관한 우화다, <애니멀 킹덤> 토마스 카일리 감독
정재현 2025-01-23

<애니멀 킹덤>은 2023년 칸영화제의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됐다. 이는 토마스 카일리 감독이 지난 10년간 프랑스영화계에서 줄곧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받았다는 점에서 공교로운 배정이다. 2014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첫 장편영화 <싸우는 사람들>은 이듬해 세자르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고, 2018년 연출한 시리즈 <아드 비탐>은 그해 프랑스 각종 전문지가 선정한 올해의 시리즈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애니멀 킹덤>이 등장했다. 인류에게 원인불명의 동물화가 발생하고, 수인(獸人)은 보호소에 격리되거나 사살된다. 프랑수아(로맹 뒤리스)와 에밀(폴 키르셰) 부자 역시 변이로 인해 격리된 가족 구성원 중 한명이 탈출하자 사라진 가족을 찾아 나선다. 4년간의 준비 끝에 이전에 본 적 없는 ‘동물의 왕국’을 구현해낸 토마스 카일리 감독과 화상으로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와 봉준호의 <괴물>을 참고했다고. 제도의 폭력으로부터 도피하는 부자의 서사라는 점에서 <허공에의 질주>와 닿은 부분이 있다.

‘전승’을 키워드로 잡고 작품을 만들어갔다. 부모로부터 유산을 받는 것도 전승의 일종이지만 그보다는 선조나 기성세대로부터 세상을 물려받는 경우를 생각했다. 나는 최근 아버지가 됐다. 내가 아이를 키우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아이가 나를 가르친다는 인상도 받는다. 서로의 삶을 계승하는 기적이다. 프랑수아와 에밀 역시 마찬가지다. 두 부자를 둘러싼 사회가 변했고, 이들 각자도 세상의 영향을 받아 변화에 직면한다. 이때 세상의 변화는 두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킨다.

- 반면 <괴물>과의 연관은 흥미로운데.

<괴물>이 액션과 가족드라마, 코미디와 판타지 장르가 뒤섞으며 캐릭터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점이 와닿았다. 사실 <괴물>뿐 아니라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봉준호 감독의 유연함을 매번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 영화 속 인간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반려견처럼 인간이 허락한 동물들은 가족 곁에서 공생할 수 있지만 수인들은 인간으로부터 배척받는다. 변이 사회를 그리는 방식이 ‘동물화’여야 했던 이유는.

<애니멀 킹덤>은 차이와 다름에 관한 우화다. 출신 지역이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이 한데 모여 평화로운 세상을 꾸려갈 수 있을지 고심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 주제다. 이 메시지를 보편적으로 전하기 위해 동물화가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동물성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공통분모다. 인간성을 논하기 전의 인류는 단세포에서 출발했고 그 세포가 끊임없이 변이돼 지금에 이르지 않았나. 그 진보 속엔 수많은 증오, 분열, 혐오가 존재해왔다.

- 에밀을 연기한 폴 키르셰의 활약이 놀랍다. 어떻게 기용했나.

에밀이 청소년인 만큼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를 찾았다. 또 작품 속에서 여러 변화를 겪는 만큼 하나의 단일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배우를 찾았다. 폴은 미개척지 같은 첫인상을 선사하는 배우였다. 촬영 당시 갓 성인이 된 터라 그런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내 그에게서 유년만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에밀에게 닥치는 여러 상황이 고난의 연속 아닌가. 그런데 폴은 배역이 처한 힘듦에 짓눌리기보다 생명에의 충동을 강력하게 느끼는 밝은 미소의 소유자다. 동 세대 연기자 중에서 큰 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친구다.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 수인들이 겪는 점진적인 신체 변화는 어떻게 안배해 지도했나. 시간 순서대로 작품을 촬영할 수도 없었을 텐데.

폴과는 1년에 걸쳐, 조류 인간 픽스로 분한 톰 메르시에와는 6개월에 걸쳐 작품을 만들어갔다. 두 배우는 매 촬영 각각 3시간, 7시간의 특수분장을 소화해야 했다. 여러모로 녹록지 않았다. 수인의 육체언어를 창조하는 과정은 감각을 깨우는 과정이었다. 먼저 안무가와 함께 문자언어가 아닌 후각, 청각, 시각 등의 요소를 새로 깨워 응용하는 과정을 논의했다. 이후 수인의 육체언어를 양적, 질적으로 배우들과 함께 조형해갔다. 변이가 일어날 때는 육체의 변화가 외부에서 내부로 침잠해가는 것이 아니라 수인의 내부로부터 몸의 변화가 발원한다는 설정을 배우에게 주입하는 식이었다.

- 에밀과 프랑수아 부자 곁엔 두 여성 캐릭터가 존재한다. 경찰 줄리아(아델 엑사르코풀로스)는 수인을 무조건 체포, 사살하는 동료들과 달리 프랑수아의 고통을 이해하고 상부에 항명하는 면모도 보인다. 니나(빌리 블레인)는 변이를 겪는 에밀을 친구 혹은 연인으로 맞이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영화에 드러나지 않지만, 줄리아 또한 작품 속 여러 수인과 마찬가지로 변이 중이다. 변이를 지칭하는 명사 ‘mutation’이 ‘전근’과 동음이의어기 때문이다. (웃음) 말장난을 의도한 설정인데 한국 개봉판의 자막엔 이 트릭이 적용됐을지 궁금하다. 줄리아가 겪는 가장 큰 변이는 복종 여부다. 줄리아는 경찰이라 법이나 제도에 상명하복이 중요한 직종에 종사하지만 프랑수아를 만난 이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고민해가기 때문이다. 니나는 판단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녀는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DHD) 증세를 호소하며 여과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라 남들과 달리 타인을 바라볼 때 가치 판단을 거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다른 에밀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영화 속 동물화는 다양한 함의를 품는다. <엑스맨> 시리즈처럼 소수자 배척의 은유로 볼 수도, 전세계가 공통으로 겪었던 코로나19의 은유로 볼 수도 있다. <애니멀 킹덤>이 세계 각국에서 개봉한 만큼 작품 속 동물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을 수많은 관객에게서 들었을 듯한데.

관객으로부터 가지각색의 감상을 들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어쩌면 그 일이야말로 내가 영화를 만드는 궁극적 이유인지도 모른다. 지난 4년 동안 관객 각자가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 강박적으로 집중했다. 기자가 언급한 두 가지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주의나 청소년 문제를 경유해 영화를 해석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그 모든 감상을 듣고 있으면 안심이 됐다. 차이 속의 공존을 논하는 영화의 목소리처럼 관객 각자의 시선이 모여 세상을 낙관적으로 변화시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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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스튜디오디에이치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