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바다 너머 섬)>(이하 <이어도>)는 7편의 단편영화(스크린)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봤을 때, 개별적인 영화들이 연결되는 순서가 있는가. 아니라면 당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공간적·시간적 장치이자 은유로서 나선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해류도 나선형이고, 해녀들이 물질로 채취하는 소라도 나선형이다. 각 작품의 내러티브는 선형보다는 원형에 가깝고, 시간과 공간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장소적인 것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되며,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서는 더 넓은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를 위해 스크린과 관객의 좌석을 나선형으로 배치하여,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 연관되도록 전시 공간을 조성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로 연결되는 인과적 연속의 고정된 내러티브가 아닌, 물결과 공명의 느낌을 작품에 반영했다. 하나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을 서로 연결된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기반으로 구성했다.
- <잔해>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미군이 제작한 선전영상의 푸티지를 사용했는데, 해당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나는 오랫동안 이 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2011년 제주 4·3사건의 역사와 기억에 대한 영화를 작업할 때, 현지의 역사학자이자 작가를 통해 처음 이 영상을 접했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 패전 후 미군이 제주에서 촬영한 최초의 영상이다. 그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일본군의 무기를 모두 수거하고 파괴하는 일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기를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그것들이 서서히 녹슬어 바다를 오염시키도록 방치했다는 점에서 매우 폭력적인 행위이다. 나는 이 영상이 훗날 일어난 제주 대학살의 전조이자, 전쟁의 지속적 충격과 잔해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잔해>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를 고려할 때 나에게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 영상에 내가 수년간 기록해온 제주 학살의 생존자이자 전작 <이별의 공동체>에 참여했던 고 고순안 심방(무당)의 목소리를 병치했다. 나에게 샤머니즘적 애도는 제국주의가 기록한 폭력에 대항하는 힘이다.
- <이어도>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각기 다른 속도를 가진 여러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유속, 호흡, 노랫소리 등 다양한 속도가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고 이는 특별한 리듬감을 형성한다.
<이어도>에는 말 그대로 다양한 프레임의 속도와 더불어 편집 방식에 의한 속도가 존재하는데, 리듬에 관한 관심은 작품의 주요 전제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호흡, 성가, 노래, 파도, 드럼이 만드는 시간과 리듬이 있다. 생각해보면 용암 바위처럼 가장 단단한 것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작품에서 인간의 규모와 수명은 자연현상과 연관되어 보이는데, 바람의 힘, 바다, 화산 토양 등 인간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할 이 현상에 대한 겸손함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 <어귀>에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숏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내장 기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장면들은 제주도의 역사와 신화를 실재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전시장의 중간에 배치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전시장의 중간에 유일하게 인간이 등장하지 않고 자연을 가까이에서 기록한 작품인 <어귀>와 <심>을 배치했다. 세계의 창조자이면서 세계이기도 한 설문대할망의 창조신화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제주가 그녀의 몸에서 창조되었다는 것, 즉 존재와 창조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 두 작품 <어귀>와 <심>은 다른 작품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나는 자연이 그 자체로 창조적이고 변화하는 힘이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의 감각과 문화 형성에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 관심을 가져왔다. 인간은 종종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있고 다른 생명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연과 자연환경은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어떻게 자연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
- 당신의 작업에서도 나타나듯, 역사가 외면해온 과거의 폭력은 여성들에 의해 기록되고 치유된다. 이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역사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는 소외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샤머니즘과 이전 작품인 <이별의 공동체>에서 다룬 바리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샤머니즘이 역사적으로 여성이 영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사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나는 가부장적 이해에서 신화를 떼어내면서, 신화를 재구성하는 개념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에 더해 제주 무속신화 속 모성애적 정서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 역시 치유되었다고 생각한다.
- 당신의 작업들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영화관과 미술관의 차이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으로써 영화관과 미술관 둘 다 좋아하지만, 관람 환경은 매우 다르다. 영화관은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보는 집단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나는 그런 관객의 집중력과 상영 후 관객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술관에서는 관객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스스로 작품을 접하기 때문에 집중력과 서사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 나는 이런 상황도 무척 좋아하는데, 작품의 현상학적 만남과 몰입의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는 여러 개의 스크린으로 작업함으로써 이를 강조하고 관객이 공간에서 작품을 대면하는 방식과 작품들이 서로 대화하는 방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관객이 서사 구성에 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과 자기 인식과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