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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짧게, 신선하게, 재미있게, 2024년 멀티플렉스의 ‘스낵 무비’ 전략 돌아보기
이유채 2024-12-20

<밤낚시>

아이돌 포스터가 걸린 영화관 풍경이 익숙해진 2024년 여름, 극장에서 새로운 시도가 감지됐다. 관람료가 1천원, 3천원, 4천원으로 저렴하고 13분, 31분, 44분으로 짧은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에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뉴노멀 시대의 영화관은 궁여지책으로 여러 프리미엄 전략에 도전해왔다. 대표적으로 타깃층이 분명한 공연 실황 영화, 아시안컵·프로야구·LoL 월드 챔피언십 등은 높은 가격을 책정해 수익성을 올렸다. 공간 활용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상영관을 팬 미팅, 콘서트 장소로 대여해주거나 클라이밍 짐, 골프 연습장과 같은 레저 센터를 설치해 (관객이 아닌) 사람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일련의 전략 외에도 새로운 활로가 필요해졌던 것일까. 아니면 극장의 본질인 영화에 집중할 필요를 느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이른바 ‘스낵 무비’의 멀티플렉스 등장은 영화관이 영화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의지로 읽혀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밤낚시>가 쏘아 올린 스낵 무비 유행

<나야, 문희>

<4분 44초>

올해 들어 극장은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맞춰 시간 대비 비용과 효율을 중시하는 ‘시성비’ 트렌드에 주목했다. 이에 맞춰 대폭 길이를 줄이고 가격을 낮춘 영화들을 상영했다. 시작은 CGV의 <밤낚시>였다. 지난 6월14일 CGV는 현대자동차와 배우 손석구가 컬래버레이션한 <밤낚시>를 단독 개봉했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13분, 티켓값은 1천원이었다. ‘과자처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단편에서 중편 길이의 숏폼 영화를 뜻하는 신조어인 ‘스낵 무비’가 <밤낚시> 제작 중에 만들어져 현재 통용되고 있다. CGV는 <밤낚시> 사례를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당초 6월14~16일, 21~23일 2주 상영을 계획했으나 호응이 이어져 몇 차례 상영을 연장했다. 18일까지 15개 지점에서 모은 관객수가 4만6천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집계돼 결과도 유의미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CGV 자체 분석 결과, <밤낚시> 전체 관객 중 <밤낚시>를 보러 왔다가 다른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5명 중 1명(약 19%)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스낵 무비가 일반 영화 관람까지 관객을 인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밤낚시>의 성공에 힘입어 CGV는 10월25일, 두 번째 스낵 무비 <집이 없어-악연의 시작>을 선보였다. 이번엔 상영시간 8분에 1천원을 책정했다. 2주간 상영한 결과, 관객수는 3500명대로 그쳤으나 애니메이션 장르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나타냈다. 12월에는 AI 영화 2편을 연달아 내놓는 모험에 나섰다. 12월11일에 단독 개봉한 <엠호텔>은 한 노숙인이 어느 호텔의 열쇠를 주우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판타지로 상영시간은 7분, 관람료는 1천원이었다. 전국 20개 지점을 상영관으로 잡았으며 12월18일을 기준으로 약 4100명이 관람했다. CGV의 스낵 무비 기획을 담당하는 엄정민 CJ CGV ICECON기획파트장에 따르면 “<엠호텔>을 본 관객 중 약 35%가 동일 극장에서 타 영화를 관람”해 관객 유입 효과를 불렀다. 스낵 무비가 가진 마중물 역할의 잠재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배우 나문희가 주연한 <나야, 문희>는 12월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상영시간은 총 17분으로 1편당 3분가량인 초단편 5편을 묶었다. 티켓값은 3천원이다. 한편 CGV는 단편영화의 극장 관람 기회를 지속해서 늘려나가기로 했다. 지난 11월 CGV아트하우스 20주년을 기념해 한국독립단편영화 정기 상영회 ‘숏츠 하우스’ (SHORT HOUS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 상영작은 김종관 연출, 정유미 주연의 6분짜리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이다. 티켓값은 1천원으로 아트하우스 전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하고 참신해지는 전략들

<문을 여는 법>

<다큐 황은정: 스마트폰이 뭐길래>

롯데시네마도 연달아 스낵 무비 대열에 합류했다. 참신한 컨셉과 다양한 굿즈 제작, 활발한 무대인사 등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후발 주자지만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7월3일에 단독 개봉한 <다큐 황은정: 스마트폰이 뭐길래>는 인기 유튜브 채널 <사내 뷰공업>의 대표 시리즈 콘텐츠인 ‘다큐 황은정’의 영화 버전이다. 유튜브 콘텐츠를 극장에서 개봉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70분으로 제작됐고 티켓값은 영화의 배경인 2011년 물가를 반영해 7천원으로 결정했다. 관객수는 약 5600명으로 유효한 숫자는 아니나 관객들의 열띤 호응에 미니 팬 미팅 회차를 10회 이상 여는 결과를 얻었다. 11월1일에 개봉한 옴니버스영화 <4분 44초>는 매일 4시44분, 한 아파트의 입주민과 방문객이 실종된다는 이야기에 맞춰 4분44초짜리의 에피소드 8편을 묶어 총상영시간 44분으로 제작됐다. 티켓값은 ‘4’천원으로 책정했다. 명확한 기획력의 힘일까. 영화진흥위원회의 ‘2024년 11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4분 44초>는 “11월 한달간 관객수 4만6761명을 기록”하며 “11월 한국영화 기준 흥행 10위에 오르며 업계와 관객의 주목”을 받았다. 1020세대 관객의 비율이 60%를 넘어서며 젊은 층을 사로잡았고 전체 관객 중 약 13%가 다른 영화를 찾는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11월20일에는 배우 김남길과 KB국민은행이 기획 제작한 <문을 여는 법>을 단독으로 선보였다. 상영시간은 31분, 티켓값은 3천원으로 2700여명이 극장을 찾았다.

앞으로도 극장 업계는 스낵 무비의 원년에서 확인한 가능성과 기대감을 바탕으로 스낵 무비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유명 크리에이터, 신인 창작자와 협업은 물론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소재 발굴과 스토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소비 트렌드의 세분화, 개인 취향의 다양화에 맞춰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넓히는 과정에서 스낵 무비 상영을 시작했다. 올해는 처음 시도한 해이니만큼 당장 어떤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한계를 두지 않고 이색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데 주력했다. 관객 반응 데이터를 축적해가면서 앞으로 무엇을 보완하고 확장할지, 어떤 프로모션을 붙여서 갈지 고민하고 있다. 내년에는 윤곽이 잡힐 것이다.”(엄정민) 영화관이 다른 무엇이 아닌 영화에 투자할수록 관객의 극장 체험 기회는 늘어난다. 관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영화관을 찾을수록 극장산업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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