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마지막엔 항상 감사할 일이 생겨.” 점점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를 겨우 재운 뒤 식탁에 앉아 한숨 돌린다.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 따뜻한 물 한잔과 함께 정적을 음미하던 아내가 입을 뗐다. “그래서, 요즘 좀 행복한 것 같아.” 잠든 아이들은 천사다. 꿈나라로 떠난 아이의 평화로운 얼굴을 지켜보다 절로 나온 감탄사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래, 잘됐네. 나도 기뻐.”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답변 앞에서도 아내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당신도 밤마다 너무 걱정 말고, 지금 눈앞의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문득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세상 심각한 표정의 우울한 사내가 물끄러미 이쪽을 보고 있다. 그렇게 한주 동안, 딱딱하게 굳은 얼굴 가죽 밑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품은 채 지냈다. 출퇴근길 인파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의식의 끝자락은 질문 하나를 붙잡고 곱씹는다. 행복이 뭘까.
클레어 키건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며 남 일 같지 않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영화 내내 관객이 목격하는 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빌(킬리언 머피)의 무표정이다. 빌의 표정을 쉽게 읽을 수 없는 건 그가 지나간 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빌은 망각하여 편해지는 대신 미처 삼킬 수 없는 걸 속에 품은 채 고민하는 인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고 끝에 소녀를 향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나서야 냉정한 현실 앞에서 얼어버려 자신도 모르게 차가워졌던 빌의 얼굴에도 옅은 화색이 돈다.
영화는 그 미소에서 멈췄지만 아마도 현실의 빌에겐 곤란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다. 부조리한 권력이 강요한 침묵을 깰 땐 그만한 희생과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건, 빌이 숭고한 대의를 지닌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모른 채 외면하는 걸 견딜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마음 그릇의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인지라 불의, 부조리, 부당함을 견딜 수 있는 역치 또한 차이가 난다. 누구에게나 좋은 마음이 있지만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긴 어렵다. 나 역시 아직 좋은 사람이 될 자신(혹은 용기)은 없다. 다만 고민하고 흔들리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주 내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는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지’를 고민했다. 지나간 것을 곱씹고 후회하는 게 편한 나는, 눈앞에 주어진 사소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이런 후회형 인간인 내가 쓸모를 발견하는 유일한 시기가 있는데 바로 지금, 2024년 베스트 영화를 꼽는 송년호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1년의 마지막엔 늘 감사한 일이 생긴다. 1년 동안 함께했던 영화들을 다시 찬찬히 복기하는 시간. 무엇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고민하고, 놓친 작품에 반성하며, 어떤 작품을 한번이라도 더 소개할까 번민하는 춥고 긴 밤. 그 끝에 마주한 건 결국 1년을 함께 버텨준 영화들에 대한 감사다. 영화와 함께한 소소한 기억들이 실오라기처럼 모이고 뭉쳐 어느덧 몽실몽실하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독자 여러분의 걱정, 번민의 밤도 끝내 소소한 행복으로 이어지길 소망하며 올해 마지막 편지를 부친다. (올해도 쉽지 않았고 내년에는 더 힘들어질지 모르지만) 지금 좀 행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