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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만 콘텐츠의 현주소, 아시아 영상산업의 허브로 거듭나는 TCCF - 김소미 기자의 TCCF,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 방문기
김소미 2024-11-21

개회 5년차를 맞이한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Taiwan Creative Content Fest, TCCF)은 올해도 순항했다. 대만 내 문화예술산업을 전담하는 문화부 산하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의 막강한 지원 아래, 영화·방송을 아우르는 대규모 콘텐츠 교섭의 장을 꿈꾸는 TCCF는 마켓과 피칭 프로그램에 더불어 양질의 포럼이 종일 열리는 독특한 성격의 행사다. 11월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이번 행사에 관해 수에왕 대만 문화부 차관, 홈차이 TAICCA 이사장은 유망한 IP를 국제 투자자들과 연결하고 전세계 콘텐츠 전문가들간의 네트워킹을 도모하며, 산업 트렌드를 담론화하는 TCCF가 아시아 콘텐츠 산업의 허브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음을 역설했다. 분주했던 피칭, 마켓, 포럼 등 세개의 주요 섹션을 아울러 2024 TCCF의 현지 리포트를 전한다. 피칭 워크숍을 위해 대만을 찾은 <쇼군> 프로듀서 미야가와 에리코로부터 에미상 시상식 18개 부문 수상에 달하는 영광 너머의 고민을, 배우 가진동을 비롯한 네명의 대만 아티스트들에게서 국제적 협업 프로젝트의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벤치마킹한 태국콘텐츠진흥원의 설립 및 관련 법 개정을 알린 찰럼차트리 유콜 태국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 영화·드라마 분과위원장. 태국판 영화진흥위원회 설립, 로케이션 인센티브를 20%에서 30%로 상향 조정, 미디어 기업에 대한 세금 면제 제도 도입 등 2027년을 목표로 전향적인 계획을 다수 발표했다.

관광 스폿이 밀집된 타이베이 중심지를 지나 난강구에 다다르자 단연 랜드마크라 할 만한 거대 종합전시장이 눈길을 끈다. 개회 5년차에 쑹산 문화창의공원 일대를 떠난 TCCF의 새 무대로 자리매김한 난강전람홀이다. 이곳 7층에 올라서면 프레스, 세일즈, 심사위원(decision maker), 크리에이터 등 각자의 역할대로 배지를 부여받은 이들이 QR 코드를 찍은 뒤 전시장 안에 입장하는 정연한 풍경이 첫인상으로 자리 잡는다. 이어 펼쳐치는 거대한 부스 공간엔 베트남 텔레비전, TV도쿄, 후지TV, 라쿠텐 그룹, 싱가포르영화협회 등 전세계 88개 기관 및 기업이 저작권 거래와 네트워킹을 위해 포진해 있다. 대만 내 참가자로는 행사장 한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자리 잡은 대만 케이블TV 비디오랜드, 그리고 유저조이, 인벤텍, ADATA, 아수스 등 발군의 기술 기업들이 눈에 띈다. 100개 이상으로 전년보다 늘어난 부스에 폐막까지 약 1만명에 달하는 내빈 규모 등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알린 TAICCA는 특히 한국 참가진의 방문을 강조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TCCF에 첫 참가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은 영화, 숏폼, 애니메이션 등을 아우르는 한국 창작자들로 꾸려진 사절단을 대동해 단독으로 K콘텐츠 피칭쇼를 가졌다. 지난해 싱가포르 ATF(Asia TV Forum & Market), 올해 8월 열린 2024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서 교류의 물꼬를 튼 TAICCA와 경기콘텐츠진흥원(GCA)은 개회 첫날 양해각서(MOU) 체결식도 가졌다. “기관의 규모, 추진사업 등 유사점이 많은 두 기관이 앞으로 지속가능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마켓 프로그램 교환, 공동제작 및 공동펀드 등 협력 사업 개발에 시너지를 내겠다”(탁용석 경기콘텐츠진흥원 원장)는 취지다.

로컬화 성공 전략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K콘텐트 피칭쇼에서 시대극 애니메이션 IP를 소개 중인 모습.

역동적이다. 마켓 부스와 포럼, 피칭 스테이지가 한 공간에 모인 거대 스튜디오 구조의 TCCF 전시장을 누비면서 느낀 감각이었다. 나흘간 기분 좋은 생동감은 계속됐다. 100여개의 부스를 지나면 곧장 나오는 포럼용 메인 스테이지, 그 옆 코너에 마련된 살롱에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의제가 쏟아져나왔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관계자들 너머로 창작자들이 모여 ‘대만영화는 과연 살아 있는가?’를 토론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된 영화산업을 향한 우려를 거듭하다가도, 이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아시아 배우들의 활약을 짚어보는 포럼이 이어졌다. 찰럼차트리 유콜 태국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 영화·드라마 분과위원장은 ‘태국 소프트 파워’ 포럼을 통해 최근 영상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태국이 콘텐츠 산업의 자원을 영상 분야로 집중(2025년 예산 약 670만달러)하고, 한국과 대만을 모델 삼아 태국콘텐츠진흥원(THACCA)을 설립할 것이라 밝혔다. 그는 로맨스, 학원물, 공포, 판타지, 특히 BL(Boy’ s Love)까지 태국 문화에 밀착한 장르 서사의 약진을 강조하는 한편 “20년 전 태국에서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마이크로시네마의 회복이 필요함을 절감한다”고도 짚었다. 이처럼 TCCF는 하나의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라 자본과 창작의 요구를 생산적으로 충돌시키는 모색의 장이다.

<셔터>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랑종>에서 제작자 나홍진 감독과 협업한 과정을, 일본 호러의 거장 이치세 다카 프로듀서가 <주온> <링> <검은 물밑에서>의 흥행 요인에 대해 토론했다.

그 가운데 올해 TCCF에서 유달리 각광받은 콘텐츠의 주제는 BL, 키즈, 호러,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버라이어티 쇼였다. 핵심은 현지화다. 일본 인기 만화 <체리 마호: 30년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가 일본 심야 드라마로, 일본 드라마가 태국 드라마 <체리 매직>으로 리메이크돼 사랑받은 사례에 특히 관심이 모였다. 지난 3월 방영된 태국 드라마의 최종회는 인스타그램에서 200만 조회수에 육박하는 기록도 세웠다. 작품을 연출한 눗타퐁 몽콜사와스 태국 GMMTV 컴퍼니 리미티드 프로듀서는 불교 사원, 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수로 등 현지의 특수한 공간성을 활용하는 동시에 이와 어울리는 판타지적 요소를 극대화했다고 장면별로 상세한 설명을 더했다. 일본 드라마를 담당한 혼마 가나미 TV도쿄 프로듀서의 전략은 반대였다. 일본 드라마는 20, 30대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보편적인 공감이 가능하도록 직장 내 갈등이나 오피스 환경을 강조했다. 시사점은, 각기 다른 로케이션 세팅을 보여준 이들의 전략이 내수시장만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로컬화의 목적은 오히려 동일한 원작과 BL 장르의 관습을 색다른 배경에서 다시 즐기기 원하는 글로벌 시청자들을 겨냥하는 것에 가깝다. 한편 키즈 콘텐츠 세션에는 주혜민 더 핑크퐁 컴퍼니 사업개발총괄이사(CBO)와 조셉 얍 BBC 스튜디오스 아시아 지역 수석 브랜드 및 라이선싱 매니저가 참석해 <핑크퐁>과 <블루이>의 전세계적 성공 배경을 논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가치는 문화적 다양성과 깊이, 그리고 키즈 콘텐츠에 요구되는 ‘360도 접근성’이다. 유튜브, OTT, 케이블 사업자 등 노출 기회를 최대화하고 문화적 다양성과 대표성을 담당하는 전담 부서를 별도로 운영해 현지의 전통문화와 대중문화 트렌드를 검수한다. 주혜민 CBO와 조셉 얍 수석 매니저 모두 “유니버설 스토리텔링을 위한 전문가, 또는 현지 전문가를 따로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예능의 소박한 ‘진정성’에 반하다

올해 TCCF 포럼의 단연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나영석 PD의 단독 강연

TCCF 웰컴 파티에 유일한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이가 조진웅 배우라는 것, 외신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심심찮게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대한 반응이 인사 대신 들려왔다는 사실을 올해의 소소한 미담으로 남겨둘 수 있을까. 인터뷰로 만난 대만 아이돌 그룹 JC 크루 출신의 배우 JC 린은 “황정민, 하정우, 조정석, 류준열, 손예진, 구교환, 김지원을 존경한다. <D.P.> 시리즈, <우리들의 블루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이 내 인생 드라마다.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열띠게 답할 정도였다. 한국 콘텐츠를 향한 관심의 절정은 행사 마지막날 열린 나영석 PD의 단독 강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만 인기 예능의 프로듀서인 A는 “오직 이 세션을 보기 위해 6만원 상당의 배지를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무대에 오른 나영석 PD는 <서진이네> <뿅뿅 지구오락실> <채널 십오야>의 각기 다른 운영 전략을 설명하면서 “친밀감에의 소구”를 키워드로 꼽았다. 한국 예능이 대만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로도 “특정 그룹의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관계성을 지켜볼 때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시아 문화의 중요한 감수성”이라고 해석했다. 나영석 PD는 “<서진이네>는 이서진, <뿅뿅 지구오락실>은 이영지라는 키맨을 우선 설정한 뒤 그와 어울리는 조합을 만드는 데 집중한 예능이다. 이들의 성격적 조화가 미션이나 극한상황을 만나서 각자의 장단점, 인간적인 실수, 성장 지점을 드러나게 한다. 내 모든 예능은 이 효과를 이끌어내고 밀어붙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TCCF가 열리는 동안 타이베이 중심가 101타워 인근에서는 <뿅뿅 지구오락실> 팝업 행사도 성황을 이뤘다. 나영석 PD의 등장에 앞서 전세계적인 버라이어티 쇼의 약진과 성공 비밀을 파헤치는 개막 세션의 연사도 모두 한국 패널- 김인순 썸씽스페셜 부사장, 김지우 MBC 프로듀서- 로 구성됐다. 일본 <TBS>와 한일 합작 연애 리얼리티 제작을 추진 중인 썸씽스페셜은 연애, 댄스를 키워드로 하는 합작 리얼리티쇼를 내년 2월 런던에서 열리는 밉(MIPTV)에서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이라 예고했다. 앞서 <TBS>는 배우 채종협 주연의 한일 합작 드라마 <아이 러브 유>의 성공을 누린 바 있다. 한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의 김지우 PD는 <나 혼자 산다>로 대표되는 이른바 한국형 논-스크립티드 리얼리티의 매력을 강조했다. “비슷한 형식의 킴 카다시안 쇼가 스타의 화려하고 비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재미를 찾는 데 반해 <나 혼자 산다>는 스타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소탈한 모습을 지닌 점에서 재미를 찾아 ‘공감’과 ‘익숙함’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역시 기존의 여행 예능이 톱스타 섭외, 아름답고 로맨틱한 공간, 맛집과 힐링, 수십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던 것과 달리 덜 유명하더라도 솔직하고 리얼한 출연자들을 섭외, 작은 카메라로 대부분을 촬영해 친밀감을 더하는 작업 방식을 활용했다.”

참가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피칭 심사위원들의 모습. <잠>을 제작한 루이스픽쳐스의 김태완 대표도 참여했다.

TCCF의 꽃인 피칭 프로그램은 올해 21개국 62개 프로젝트가 참가했다. 새롭게 후원사로 참여한 CJ ENM HK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이하 부천영화제)의 아시아판타스틱영화네트워크(NAFF) 및 기술, 금융, 애니메이션 분야의 다양한 단체가 후원해 총 735만TWD의 상금을 확보, 30개 이상의 시상과 국제 페스티벌 교류를 추진했다. TCCF와 교환 프로그램 MOU를 맺은 지 3년차인 부천영화제에선 올해 모은영 프로그래머가 참석해 부천영화제의 IP 개발 프로그램인 괴담 캠퍼스 선정작 <안구> 피칭을 도왔다. 그리고 대만 호러 코미디 <돈 워리 어바웃 뱀파이어>가 타이베이국제영화상, 그리고 BIFAN+ 어워드를 수상해 2025년 부천영화제 아시안프로젝트마켓 초청작으로 최종 선정됐다. 대상격인 TAICCA X CNC상은 대만 장편애니메이션 <클라우디드 레오파드>(망고워크 스튜디오), 심사위원 특별상은 한국, 카타르, 덴마크 공동제작 다큐멘터리 <더 앨리웨이>가 수상했고 허광한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정강 경찰서>로도 알려진 인전하오 감독이 대만, 한국 합작의 코믹 스릴러 <콜 오브 랍스터>로 중화텔레콤상을 받았다. 다양한 대만 피칭 참가작을 확인한 모은영 프로그래머는 “레퍼런스로 거론된 수많은 한국영화들의 존재감에 놀랐다. 한류 붐은 예년만 못하지만 한국형 제작 모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움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 호러 코미디 등이 강세를 보인 피칭작 수상 결과 역시 장르적 경쟁력에서 돌파구를 찾는 업계의 공교로운 관심사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였다.

피칭 인기작 중 하나인 대만·한국 합작 코미디 <콜 오브 랍스터>의 인전하오 감독이 무대에 올라 작품 컨셉과 개발 과정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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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TAIC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