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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좁은 도시 속 넓은 사랑’,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모두 다 잘될 거야> 레이 영 감독
남지우 사진 오계옥 2024-11-21

2019년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데 이어 올해 네팔과 태국에서도 혼인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홍콩과 한국은 이 물결에 합류할 수 있을까. 11월7일 막을 올린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모두 다 잘될 거야>는 그 빛나는 가능성에 마음을 모은 이들의 영화다. 30년을 함께한 팻(이임림)을 먼저 떠나보낸 안지(구가문)는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로 장례와 상속 과정에서 소외된다. 부부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이별한 레즈비언 커플은 평생 일궈온 재산뿐만 아니라 연인을 오롯이 애도할 권리마저 위협당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레이 영 감독은 자신의 미래가 될 동성애자의 노년을 상상하고 그려보다 감지했다. 홍콩의 새벽을 비추는 동성혼 법제화라는 여명을. 그 상서로운 징조를.

- 동성 커플인 두 주인공의 계급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이 상주하는 고급 맨션, 온 가족이 모여도 넉넉한 식사 공간, 한 송이에 50홍콩달러(약 9천원)인 꽃을 여섯 송이씩 사는 씀씀이까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중년의 레즈비언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80년대 홍콩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블루칼라 노동자도 상당한 소득을 올리던 때다. 섬유 산업체의 여공이었던 팻과 안지는 함께 살며 경력을 쌓았고 창업에 성공해 부동산을 소유하게 된 경우다. 2020년 LGBTQ의 상속권 의제를 공부하며 인터뷰한 실제 레즈비언 커플들의 내러티브도 비슷했다. 현재 60~70대가 된 당시 퀴어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부모나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명 의무를 지고 살았다. 결혼, 출산, 육아 대신 커리어에 집중했던 이들은 중산층의 삶을 목표로 열심히 일했고 집값이 훨씬 저렴했던 1990년대에 ‘내 집 마련’을 했다. 영화 속 갈등의 핵심이 되는 팻의 아파트는 이 과정에서 얻은 상징적인 결과다.

-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과 그에 기반한 일생의 선택이 인물의 중·노년기를 상상하는 데 영향을 준 셈이다. 이러한 특성이 동세대의 게이 커플들에게서도 발견되나.

내가 만난 많은 게이(남성 동성애자) 커플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높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엔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보다 훨씬 더 높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금 격차 때문에 여성이 성공하려면 사업 감각이 뛰어나고 수완이 풍부해야 했다. 팻에게도 그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시나리오를 썼다. 여성이 직업을 갖기보다는 가정에 머물기를 기대하던 시절에 형성된 게이와 레즈비언 커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 <컷 슬리브 보이즈>(2006), <프론트 커버>(2015), <아저씨x아저씨>(2019)에 이어 탐구의 대상을 게이에서 레즈비언으로 확장했다.

연구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인터뷰할수록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가족 안에서 레즈비언 커플은 좋은 친구 사이, 혹은 비혼주의자 하우스메이트 정도로 ‘패스’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알려고 하지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 t ask Don’t tell)라는 중국인 사회 특유의 행동 양식이 더해지면서 이들의 사실혼 관계와 섹슈얼리티는 공식적으로 공표되지도,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한다. 안지는 한동안 자신이 팻의 파트너이자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했지만, 팻의 죽음 이후 그 관계는 피상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면 두 남성의 동거는 친구 사이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만큼, 게이 커플은 완전한 커밍아웃을 하거나 아예 옷장 안에 머물게 된다.

- 영화는 홍콩의 과밀한 도시 공간을 다양한 시야각에서 비추고 있다. 작은 영토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사는 환경에서 퀴어 시민들은 어떻게 사적이고 친밀한 삶을 유지하는지 궁금하다.

전작 <아저씨x아저씨>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자식 세대가 등장한다. 월급만으로는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홍콩 젊은이들은 결혼 후에도 한쪽 부모의 집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하지만 LGBTQ커플은 그 ‘혜택’마저 누릴 수 없다. 장기간 연애를 하고도 독립된 가정을 꾸리기가 쉽지 않기에 여전히 각자 부모와 사는 퀴어 커플이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 퀴어들이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이성애자들이 성적으로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모텔 등을 찾는 반면, 게이 남성들은 전용 목욕탕인 배스하우스를 간다. 그리고 레즈비언에겐 그런 공간마저 부재하다. 섹스리스 퀴어로 살아가는 셈이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LGBTQ 관계가 깊고 친밀하며 장기적으로 발전하기가 더욱 어렵다.

- 홍콩은 영국 식민지의 영향을 받아 가장 서구화된 아시아 국가이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사회운동의 역동으로 가득한 나라다. 홍콩은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충분한 사회·정치적인 역량을 갖췄다고 보나.

2023년 9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지난 6~7년 동안 LGBTQ 활동가들은 해외에서 결혼한 후, 그 혼인 관계를 홍콩에서도 법적으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해 왔다. 이성애자들은 해외에서 결혼을 신고하면 자동으로 법적 인정을 받기 때문에, 동성 부부가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인권차별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첫 승소 이후 홍콩 정부는 법원으로부터 2년 이내에 동성결혼을 인정할 법적 체제를 마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어떤 범위까지 권리를 인정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 아시아 최초의 LGBTQ영화제인 홍콩레즈비언&게이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세계 유수의 퀴어영화를 큐레이션한다. <씨네21>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특히 아시아권의 퀴어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다. (웃음) LGBTQ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퀴어의 사랑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접근한 영화다. 앞으로는 성소수자라는 주제가 영화의 중심이 아닌,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야기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가씨>는 퀴어 주체를 더 넓은 이야기 속에서 유영할 수 있게 만든, 마치 미래에서 온 퀴어영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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