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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좋은 서사는 여전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글래디에이터 Ⅱ> 리들리 스콧 감독
조현나 2024-11-14

장엄한 로마의 세계가 다시 구현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24년 만에 <글래디에이터>의 속편을 내놓았다. 검투사 막시무스(러셀 크로)의 죽음 후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와 황제의 딸 루실라(코니 닐슨) 사이에서 태어난 루시우스(폴 메스칼)가 새로운 주인공이 되어 돌아온다. 전쟁 노예가 되어 로마에 발을 들인 루시우스는 전장에서 잃은 소중한 이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검투사 신분으로 콜로세움에 입성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여러 인물의 욕망이 교차하는 로마를 다시금 화려하게 재건해냈다.

- 24년 만에 <글래디에이터>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속편을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가 성공했을 때 나는 바로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곤 한다. <글래디에이터> 이후 20여년간 다른 영화를 20여편 만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여전히 <글래디에이터>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루시우스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속편은 첫 작품보다 좋기가 어려운데 이번에는 비교적 매끄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만 각본 작업 자체는 굉장히 어려웠다.

- 폴 메스칼은 <애프터썬> <노멀 피플> 등 전작에서 루시우스와는 결이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 그가 루시우스 역에 어울리겠다고 판단하게 된 계기가 있나.

<글래디에이터 Ⅱ>의 각본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때 <노멀 피플>을 보게 됐다. 그때 나는 루시우스를 연기할 배우를 물색 중이었는데 <노멀 피플>을 보면서 폴 메스칼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모에서, <글래디에이터>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연기했던 리처드 해리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바로 폴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 막시무스와 루시우스의 성격 및 동기를 비교해본다면 어떻게 다른가.

둘 다 강한 면이 있지만 막시무스는 더 직설적이고 강력한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다. 반면 루시우스는 좀더 섬세하고, 폴 메스칼이 연극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경험 덕인지 더 극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로 완성됐다고 느낀다.

- 아카시우스 장군 역에 페드로 파스칼을 캐스팅하게 된 이유는.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에서 페드로 파스칼이 보여준 유머와 쿨한 매력을 정말 좋아했다. 캐스팅할 때는 직관에 기대는 편인데 페드로는 꼭 함께 일해보고 싶은 배우 중 한명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해 아카시우스 장군 역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월요일에 바로 시작하죠!”라고 답했다.

- 콜로세움에서의 전투 장면을 촬영할 때 중요하게 고려한 지점이 있나.

예산상 500명 정도의 엑스트라만을 고용할 수 있었는데 콜로세움은 4만명이 들어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500명의 엑스트라가 4만명의 역할을 하도록 연출해야 했다. 검투사들이 전투하는 모습 뒤로 환호하는 관객들을 디테일하게 설정해 구현했고 나머지 인원들은 CG 처리했다.

- 복서들이 관중의 환호에 힘입어 에너지를 쏟아붓듯이, 검투사들 또한 호응으로 인해 더 강하게 몰입하는 느낌이었다. 관중과 전투 자체의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렇다. 관중의 환호는 실제로 배우들이 검투 액션에 더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규모 세트에서 관중과 전투 장면의 상호작용을 구성해나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기에 양측의 상황을 긴밀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 콜로세움 전투, 해상 전투와 같은 넓은 구도의 장면을 매끄럽게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나는 미술학교에서 7년간 공부했는데 당시의 훈련과 경험이 영화감독이 된 이후 내 커리어에서 최고의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든 촬영을 시작하기 전, 항상 스토리보드에 상세하게 그림을 그리며 이미지를 구상한다. 모든 것을 미리 스케치하는 과정을 거치면 촬영 전부터 특정 신들에 관해 명확한 비전을 설정할 수 있다. 그래서 넓은 구도의 장면을 촬영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 최근 몇년간 영화산업은 크게 변화했다. 성인을 타깃으로 한 작품들이 전과 다름없이 충분한 관객을 모객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믿고 있다. 다만 나는 수많은 히어로영화들이 시각효과에 의존하는 걸 보며 아쉽다고 느낄 때가 많다. 화려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반면 서사 자체는 약한 경우가 많아서다. 좋은 이야기를 가진 영화는 장르를 막론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히어로물도 더 강렬하고 탄탄한 서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나폴레옹> 같은 여러 시대극을 연출해왔다. 특정 시대의 과거나 실존 인물을 다루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흥미를 느끼나.

나는 과거의 세계, 인물들의 의상과 행동부터 건축물까지 다시 구성해나가는 과정을 정말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재미를 느낀다. 물론 동시대를 다루거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연출해봤지만, 확실히 역사물과 시대극만이 지니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나는 지금도 <글래디에이터 Ⅲ>가 어떤 서사를 다룰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글래디에이터>를 “그는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끝맺었기 때문에 그다음 이야기를 계속 탐구하는 것이 내겐 중요한 과제다.

- 영화에서 역사적 정확성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창의적인 자유가 더 우선시되는 때는 언제인가.

역사적 사실은 종종 진실처럼 전해지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부분이 추측을 기반으로 한다. 가령 박물관에 있는 무기와 같은 유물은 의심의 여지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관한 디테일한 요소는 대체로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지만, 때로는 예술적 해석이 더 필요하다고 여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보에 기반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엄격하게 지키는 것보다는 창작자의 해석이 가미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계속해서 스토리를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오슨 웰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소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차 세트와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내가 영화를 계속 연출하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자유롭게 구상하고 완성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모든 과정이 즐겁다. 지칠 새도, 지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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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