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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3]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천만영화’, <변호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
박수용 사진 백종헌 2024-11-01

부산영상위원회와 함께하는 기획임을 밝히자마자 양우석 감독이 꺼낸 말은 “두 섹션으로 나누어 말씀드리고 싶다”였다. 첫 번째는 제작 당시 부산영상위원회로부터 받은 제작 지원에 대한 감사함, 두 번째는 이 지원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뻗어나온 작금의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이는 <변호인>이 1981년에 대한 영화임과 동시에 2013년에 대한, 다시 2024년에 대한 영화임을 깨닫는 과정과도 같다. 데뷔작인 <변호인>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의 다음 ‘지금’으로서 천착한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을 거쳐, 양우석 감독이 꿈꾸는 미래와 나란히 놓인 차기작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를 소개한다. 대화의 시작점에서 멀리도 떠나왔다 싶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항로는 결코 <변호인>의 너른 해역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 2013년 <변호인>이 개봉하고 12년이 흘렀다. 지금 <변호인>을 바라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 내가 생각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코리안 드림’의 신화다. 코리안 드림이 아메리칸드림과 다른 점은 교육을 통한 성공에 방점이 찍힌다는 것이다. 법조 계의 엘리트성이 강조되던 80·90년대에 노무현은 엘리트적인 면모와는 거리가 먼 인물 이었다. 어렵게 공부하며 자수성가한 그의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부의 정도에 따라 자녀의 성공을 만들어낼 정도로 진화했다. 현재 청년 들의 좌절감도 이 코리안 드림조차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변호인>이 출발한 과정을 다시금 듣고 싶다.

=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말하자면 노무현의 ‘갈라파고스의 시기’다. 진화론을 처음 제시한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섬에서 채 한달도 체류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이 다윈의 인생은 물론 인류의 지성사를 바꾼 것이다. 노무현에게는 이 기간이 바로 변호사 시절이라 본다. 하지만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된 후 그간 모아둔 모든 파일을 지웠다.

- 그 후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작품을 제작할 마음을 먹은 것인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

= IMF 당시의 막막한 분위기에서 자랐던 청소년들이 막 사회에 나올 시기였다.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몰두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먹고사는 일에 몰두하다가 무언가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싶었다. <변호인>은 그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직업윤리에 충실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국가가 법을 안 지키니까 법을 지키라고 호소하는 것뿐인데”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어마어마한 정의감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그저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 항의한 것이다.

- 시대극의 초반부는 관객에게 작품의 시대상이라는 일종의 약속을 설득력 있게 제안하는 임무를 띤다. 이때 <변호인> 초반의 생활감 있는 장면들의 촬영지가 대부분 부산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 처음 로케이션을 선정할 때 부산영상위원회 쪽에서 표현한 안타까움이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부산도 많이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부산의 옛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2001년작인 <친 구>까지가 아니었나 싶다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로케이션 탐색에 힘은 들었지만 사실 이런 시대극이 대부분 CG 영화다. 간판이나 차량, 건물 형태 등 소소하게 손봐야 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컷수로만 보면 CG의 양이 가장 많은 장르다.

- 영화 초반 우석이 살던 옛집은 해운대의 한 주택가에서 촬영했고, 우석이 진우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한 흰여울문화마을은 이후에 관광지화되기도 했다. 이 공간들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선택지가 정말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공간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봐야 하겠다. 얼마 남지 않은 80년대 풍경을 악착같이 찾다 보니 나왔던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 그렇다면 실제 모델이 남긴 삶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떤 아우라의 부재가 아쉽지는 않았나.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남아 있다. 80년대 후반에는 여성지조차 노무현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만약 그분의 이야기를 모두 스크랩한 사람이 있다면 분명 창고 분량 하나는 나올 것이다. 그래서 답사 때 우리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변했네”. (웃음) 요즘은 로케이션을 찾을 때 현장 다녀온다고 하면 그냥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한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하나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항의 시위 장면은 실제 시위가 진행되었던 중구 대청동의 중앙성당에서 촬영되었다.

= 유일하게 진짜 고집을 지켰던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도로 통행을 전부 막고 촬영해야 했기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거기에 보조출연진도 많다 보니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미리 합을 여러 번 맞춰보고 잔뜩 긴장한채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 주조연 배우의 대부분이 부산 또는 경남권 출신 이다.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부터 캐스팅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존재했나.

= 공간도 영화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특히 <친 구> <바람> <변호인> 등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는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주인공이다.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자 했다. 원래 <변호인>은 웹툰용으로 기획한 시나리오였다. 우연히 당시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님을 만나 영화로 제작 하게 된 경우고. 그러다 보니 각 배역에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 우석 역의 송강호 배우가 인터뷰에서 “양우석 감독님은 배우에 대한 신뢰가 커서 ‘이렇게 가야 합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인생 연기를 펼친 송강호 배우와 <변호인>으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임시완 배우의 어떤 점이 특히 미더웠나.

= 송강호 선배님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다 갖다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놀라운 분이다. (웃음) 축구의 공격수는 아주 짧은 순간 필드 위에 일종의 카오스 상태를 만들어내는 포지션이 아닌가. 그런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스태프가 내일은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현장에 임했다. 임시완 배우는 어마어마한 노력파다. 그런데 그걸 티를 안 낸다. 나중에 예능프로에서 동료인 광희씨가 “맨날 임시완이 거꾸로 매달려 있길래 뭐 하는 거냐고 놀렸다”고 이야기했는데, 고문당하는 장면까지 연습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노력의 자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웹툰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영화 콘티를 작성할 때 웹툰 작가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있나.

= 영화의 콘티는 원칙적으로 시나리오에 종속 되어야 한다. 어쨌든 영화는 시간예술이며 카메라와 스크린의 제약이 존재한다. 만화처럼 스타일과 감상법에 자유로운 변형을 줄 수는 없기에 더 보수적으로 콘티를 그린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대표였던 존 래시터는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자유로운 앵글을 자제하고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연극적인 숏을 요구했 다. 스크린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들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변호인>도 그렇지만, 이후 연출한 작품인 <강철비>와 <강철비2: 정상회담>은 확실한 논리적 영토를 구축한 뒤 그 구성 요소의 화학반응을 풀어나가는 관측과 설득의 영화라 느꼈다. 그렇기에 <강철비>의 두 철우처럼 인물의 성격과 정서 또한 논리를 담아내기 위한 최적의 도구라는 인상을 줄 때도 분명히 있다.

= 논리는 오히려 쉽다. 1, 2년 공부하면 논리는 알아서 나온다. 그 논리를 누구에게 투영해야 하는지, 어떤 인물이 이 논리를 설파했을 때 더 진정성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강철비> 를 준비하며 많이 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성격 보다 믿는 논리를 앞에 둘 수 있는 사람이겠다. 이때 논리는 곧 이야기, 내러티브다. 당장 자신이 입을 손해를 감수하고도 자신이 관철 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호인>의 우석이 그 예시다.

- 시대극으로서 <변호인>의 풍부한 로케이션이 눈에 들어왔다면 <강철비>는 정치물 특유의 현대적인 세트 디자인에 눈길이 갔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 세트를 제작해 96일간 촬영했다고.

= 당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2~3년 전에 예약하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운이 좋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스튜디오 수가 정말 적다. 한국에 실제로 필요한 스튜디오 수는 수백개 이상인데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스튜디오는 열개 남짓이고, 일반 사업자들이 스튜디오를 차리기에는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형성되는 정부 지원 스튜디오를 이길 수가 없다.

- <변호인>의 배경인 부산과 <강철비>의 배경인 수도권은 지금껏 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진 한국 영화의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강철비2: 정상회담>의 배경인 바닷속과 잠수함 선내는 생경한데. 생소한 전문 분야에 대한 고증과 차별화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 작품에 임할 때 꼭 체크하는 것이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 대화했을 때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아직 준비가 안된 것이라 생각한다. 철저한 공부와 고증은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사실 창작 과정 중 공부가 제일 편하다. 공부할수록 창작도 편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답답할 때면 ‘내가 아직 공부가 덜 돼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만다.

- 어찌 보면 그동안은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 하다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는 잠수함 선내라는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셈인데. 밀실 연출에 특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 인물의 사방에 벽이 있는 좁은 공간에서는 카메라 렌즈를 조금만 잘못 선택해도 그림이 완전히 틀어진다. 잠수함이 밖에서 볼 때는 커보이지만 선내는 정말 좁다. 우리나라의 장보 고급 잠수함의 경우 25평 남짓한 공간에 40 명의 남자 승무원이 함께 생활한다. 약간이라도 폐소공포증이 있다면 승선이 불가능하다.

- 잠수함 내부의 색채나 구조물의 디자인도 칙칙하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폐쇄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나.

= 오히려 그 답답한 느낌을 피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폐쇄적으로 표현되더라. (웃음) 배가 떠다니는 수면이 말 그대로 면, 2D 공간임에 반해 잠수함이 움직이는 바닷속은 더욱 자유로운 3D 공간이다. 잠수함 바깥에서는 카메라가 훨씬 넓게 움직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움직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답답함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 아닐까.

- 부산 시내의 여러 로케이션을 돌았고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도 경험했다.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

= 먼저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현대 관료제에는 크게 보아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시스템이 있다. 네거티브 시스템을 간단히 말하자면 ‘법에서 금지하는 것만 아니면 다 해도 돼’이다. 만약 기존의 법이 포괄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이 탄생하면 그에 맞춰 규제를 만들어간다. 반면 포지티브 시스템은 ‘모든 규칙을 적어놓을 테니 이대로만 해’의 방식이다. 바꿔 말하면 ‘안 적혀 있으면 하지 마’겠다. 빠른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포지티브 시스템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왜 이 얘기를 하느냐면 부산영상위원회는 네거티브 시스템 문화를 정착시킨 한국의 공공기관 중 가장 성공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 언제나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방식이 정말 유연하다. 예를 들어 중앙성당에서의 촬영도 도로를 막고 촬영한 경우가 지금껏 없으니 안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부산영상위원회는 여러 교통법과 조례 등을 참고하고 유연하게 적용해 결국 선례가 없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해준 것이다. 결국 부산영상위원회의 노력을 통해 민간경제도 활성화되고 부산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도 제고되는 것이 아닌가. 지역 영상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반적 사고방식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 지방자치제와 지역 영상위원회의 역할은 분명 닮은 점이 많다. 영상문화산업의 발전이 곧 지역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적인 명제를 부산영상위원회가 증명한 것이 아닐까.

= 영화를 만들고 나서 제작자에게 남는 건 디지 털데이터뿐이다. 제작비는 모두 어딘가에 쓰인다는 뜻이다. 영화 촬영은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영했 다는 사실 자체로 부산영상위원회가 아주 귀중한 자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 영화인 양우석은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묵직한 주제를 마주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기작 <대가족>이 더 궁금하다.

= 입봉작 <변호인>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후 앞으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철비> 당시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고.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는 가족이라 본다. <대가족> 의 ‘대’는 ‘대할 대’, 즉 ‘가족에 대하여’라는 의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저출생 국가들의 공통점은 학벌 사회라는 거다. 사교육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돈이 들어가는 한국의 가족은 일종의 직업훈련소가 되어버렸다.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할 계기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어느 정도 코믹한 터치도 있다. 아버지는 만두 장사를 하고 아들은 스님이 되는데, 덕분에 만두 공부랑 불교 공부도 좀 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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