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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3] 부산영상위원회 아카이브 총서 <부산의 장면들> #1, ‘천만영화’, <변호인> 부산 제작기
박수용 2024-11-01

<변호인>은 억울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누명을 쓰고 고문당한 후 재판에 넘겨진 진우(임시완)를 변호하는 속물 변호사 우석(송강호) 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 인권변호사의 극적인 인생 뒤에는 슬프고 아름다운 실화의 무게가 놓인다. 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국가보안법 재판(일명 부림사건)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일부였던 부산 가톨릭 센터 농성이 그것이다. 단순히 한 개인의 신화를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와 그 공동체가 공유하는 행동의 역사, 말 그대로 ‘부산의 장면’ 이다. 한 사람의 항의가 그를 뒤따라 울리던 아흔아홉개의 이름들로, 더 나아가 공동의 기억으로 이어지며 그 정신을 모두가 함께 계승하도록 하는 것이 <변호인>이 훌륭히 맡아낸 소임이 아니었을까.

이에 부산은 <변호인>이 꼭 마주해야만 하는 풍경이자 <변호인>과 같은 시대극이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변호인>의 제작 진은 17일간 부산 시내를 종횡무진하며 도시에 남은 80년대의 파편을 수집해 그 시절을 그대로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양우석 감독과 핵심 제작진의 회고, 그리고 당시 로케이션 지원을 담당한 부산영상위원회 경영지원팀 이승의 팀장의 증언을 중심으로 <변호인>의 제작 과정을 재구성해보았다. 부산영상위원회와의 긍정적인 협업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진심 어린 고민까지 길어냈다는 양우석 감독과의 길고 깊은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부산은 또 하나의 주인공

<변호인>이 바탕으로 삼은 부림사건의 배경은 1981년의 부산이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당시의 공기와 정신을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을 담아내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였다. “되도록 찍어야 할 피사체가 실재하고 남아 있는 곳들을 찾아서 찍는 데 주력”했다는 이태윤 촬영감독의 말처럼, 부산은 “<변호인> 속 또 하나의 주인 공”(양우석 감독)이다.

마침 부산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들이 곳곳에 생동감을 품은 채 남아 있는 도시로, 70·80년대 시대극의 배경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대표 촬영지다. 이에 <변호인>은 중구 대청동 중앙성당 앞 거리, 흰여울문화마을, 보수동 책방골목 등 부산의 정겨운 여러 풍광을 후경으로 삼아 17일간 촬영을 진행했다.

80년대 흔적이 남은 보수동과 해운대

해운대 주택가에서는 영화 초반 우석 가족이 살던 집을 촬영했다. 쥐가 나오는 집에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부부의 따뜻한 마음이 옛 가옥의 누르스름한 색채와 어우러져 정겨움을 자아낸다. 돈이 필요해 처분했던 고시 책을 다시 찾아와 공부에 매진하는 우석의 회상 장면은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촬영했다. 지금도 옛 정취를 가득 머금은 헌책방이 자리한 덕분에 관광지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동 책방골목에서의 짧은 신이 사실 양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하지 못한 장면이라고. “기장에서 촬영이 끝나고 넘어가는 도중에 감독님이 발목을 삐끗해서 병원에 가야 했다. 때문에 (제작사 위더스 필름의) 최재원 대표님이 보수동에서의 촬영을 대신 진행했다.”(이승의 팀장)

그럼에도 로케이션 선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의 발전 때문이다. 당시 사건의 흔적이 남은 공간들을 비롯해 부산의 많은 지역들이 이미 재개발을 통해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한정적인 로케이션 선택 지로 인해 “공간이 우리를 선택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며 로케이션 선정 과정의 어려움을 고백했다. “얼마 남지 않은 80 년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을 악착같이 찾았다.” 해운대 주택가와 보수동 책방골목, 칠산동과 중앙동의 주택가 골목 등이 그러한 노력 끝에 발굴된 로케이션이다.

<영화부산> 2013. VOL.6 ‘부산 촬영 클로즈업’, “[STAFF 37.5] 내가 먼저 배우를 사랑한다” (<씨네21> 934호), “<변호인> 제작기 영상”(NEW) 발췌

한편 <변호인>에 담긴 풍경 중에는 당시에도 세련되고 쾌적한 공간이었던 대도시 부산의 면모를 강조하는 공간도 많다. 일례로 우석이 요트를 즐기는 바닷가는 기장군 임랑해수욕장 에서, 해동건설 관계자와 점심을 함께하는 개인실은 부산진구의 롯데호텔 부산에서 촬영됐다. 진우의 변호에 뛰어들기 전돈과 성공을 좇던 속물 변호사 우석의 모습을 상징하는 공간 들이다. 우석을 둘러싼 공간이 변화하며 그의 옷차림과 매무 새도 달라진다. 우석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 김서영씨는 “초반엔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로 가다가, 점차 자연스럽게 흐트러진 머리로 인권변호사로서의 정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승의 팀장은 “부산에는 과거의 공간은 물론 해운대 주변의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들도 공존한다.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촬영지”라고 강조했다.

문화적 도시재생의 모범, 흰여울문화마을

우석이 진우의 변호를 맡기 위해 진우의 집으로 향하는 장면은 흰여울문화마을에서 촬영했다. 언덕길에 촘촘히 들어선 80년대식 서양 가옥과 흰 담벼락 너머로 넓고 푸른 부산 바다가 펼쳐지는 흰여울마 을은 이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촬영지로 주목받으며 영화계의 인기 로케이션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이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제작진 중 일부가 <변호인>에도 참여하 면서 양우석 감독에게 흰여울마을을 추천했다는 후문.

“예전 흰여울마을길은 정말 조용한 시골 바닷가 마을이었다. <변호인> 개봉 후 부산에서 손꼽는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저희가 뛰어난 관광지 하나를 발굴했다는 자부심이 든다.”(이승의 팀장) <변호인>의 흥행 이후 흰여울문화마을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으며 문화 사업을 통한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각인되고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열기를 품은 중구 중앙성당

중구 대청동에 위치한 중앙성당은 1957년 설립한 이래 중구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도맡아온 랜드마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중 부산에서 진행된 가톨릭 센터 농성의 주요 장소이다. 영화의 마지막, 우석이 목청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박종철 열사 추도집회를 이끌던 바로 그곳이다. 집회가 벌어진 실제 장소에서의 역사적인 촬영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대청로부터 용두산길까지 100m가량의 도로를 통제한 후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이기에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단시간에 이루어져야 했다. 다행히 주변 도로로 우회가 가능한 지역이어서 중구청과 중부경찰서의 협조로 네 시간가량 교통 통제 및 촬영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승의 팀장은 “부산의 모범택시 기사님들까지 힘을 모아 촬영 진행에 협조해주셨다”며 부산 시민의 협조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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