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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에서의 논리, <지옥> 시즌2 연상호 감독 × 최규석 작가 대담
박수용 사진 최성열 2024-10-31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의 감독으로 먼저 이름을 날렸던 연출가 연상호와 <송곳> <습지생태보고서> 등 현실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풍으로 평단의 지지를 받는 만화가 최규석. 대학 시절부터 절친했던 둘은 더 자주 얼굴을 볼 기회로 삼자며 함께 <지옥>이라는 놀이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편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은 기어코 이들로부터 두 번째 이야기를 소환해낸다. 먼저 네이버 웹툰 <지옥2:부활자>가 지난 7월 완결된 가운데 오는 10월25일에는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두 사람이 공동 각본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가 공개된다. 웹툰과 실사 시리즈라는 상이한 매체를 동시에 활용하는 두 창작자의 작업법은 사실 지극히 효율적이다. 함께 플롯을 꾸려나가는 도구이자 하나의 이야기가 분화하는 수많은 형질의 실험실, 거기에 창작의 즐거움을 자극하는 작가적 본령의 역할을 겸하니 말이다. 교류는 줄어들었다지만 그만큼 편안한 동반자의 분위기를 풍기던 두 친구의 유쾌한 대화를 잠시 엿들었다.

- <지옥> 시즌1 공개 당시 받았던 큰 인기에 두분 다 놀랐다고 들었다. 후속작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연상호 후속작 이야기를 처음 한 것은 <지옥> 시즌1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이었다. 최규석 작가와 두어달 동안 의견을 나눴지만 어째 이야기가 하나로 묶이지 않더라. 그때 나온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작품이 바로 웹툰 <계시록>이다. 그러던 중 시리즈가 공개되었고 생각보다 너무 좋은 반응 덕분에 자연스럽게 논의가 재개되었다.

최규석 <지옥>의 세계관에 어느 정도 안착하고 나니 의사소통이 갈수록 심플해졌다. <지옥> 시즌2를 작업할 때부터는 내가 지방에서 살게 되어 전화나 온라인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경우도 잦았다.

연상호 결말은 미리 정해놨지만 그곳까지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즉흥적으로 쓰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4화 대본을 써서 최규석 작가한테 보냈더니 박정자(김신록)한테 이런 설정이 있었냐며 전화하더라. (일동 웃음) 분명 처음 <지옥>을 같이할 때는 둘의 교류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교류가 더 없어졌다. (웃음)

- 이전 시즌과 달리 <지옥> 시즌2의 작업은 영상화를 상정한 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규석 아무래도 한쪽이 완성된 상태라면 나머지도 그 영향을 받아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지옥> 시즌2는 콘티만 있고 만화와 영상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이다 보니 시리즈는 시리즈대로, 만화는 만화대로 그 색깔이 짙어질 수 있었다.

- <계시록>은 최규석 작가의 만화적 스타일에도 전환점이 된 중요한 작품으로 보인다. 기존의 흑백 작화에서 벗어나 인물의 옷이나 하늘 등에 컬러 포인트를 넣기 시작한 새로운 스타일이 <지옥2:부활자>까지 이어지니 말이다.

최규석 6개월 분량의 짧은 만화인 <계시록>은 평소에 주저하던 여러 도전을 해볼 기회였는데, 컬러가 그중 하나였다. 사실 만화 <지옥>을 그릴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화살촉의 얼굴 분장과 무늬를 흑백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옥2:부활자>에서는 화살촉만이라도 색을 넣어보자는 생각으로 빨간 분장 등에 부분적으로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연상호 만화 원작이 흑백이다 보니 새진리회의 사제복 색깔 등의 설정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시리즈에서 등장한 하늘색 사제복이 워낙 각인되다 보니 만화에도 적용이 된 것이고.

이전 시즌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이야기

- <지옥> 시즌2는 이전 시즌에서 제시된 세계관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과도 같다. 특히 오지원(문근영)이나 천세형(임성재), 이수경(문소리) 등 세계관에 새로 진입하는 인물들이 기존 인물들 사이에 자연스레 안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이 까다로웠을 것 같다.

연상호 무척 힘들었던 부분이다. <지옥> 시즌1의 세계는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느꼈던 것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라면 <지옥> 시즌2는 현실 세상보다는 이전 시즌의 세계관 안에서 생각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새로운 인물 각자의 사연이나 에피소드는 있었지만 이를 큰 줄기 안에 어떻게 들어가게 할 것이냐는 고민이 필요했다.

최규석 사실 <지옥> 시즌1에서는 정진수(김성철)의 사고방식만 특이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아직 평범한 세상에 살고 있던 보통 사람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옥> 시즌2는 세상이 뒤집어진 지 8년이 지난 후의 사람들을 그린다. 바뀐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지닐 만한 생각과 논리를 이수경 등의 인물에게 투영하는 작업이 특히 까다로웠다.

- 광신도 집단인 화살촉이 <지옥> 시즌2에서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믿음에 복무하는 이들처럼 비치는 것 또한 독특하다.

연상호 <지옥> 시즌2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두 인물이나 집단을 꼽자면 화살촉과 민혜진(김현주)이 아닐까. 양극단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굉장히 비슷하다. 민혜진 역시 자신이 믿는 원칙을 고수하는 나이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혜진은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라 자신의 믿음을 일부 수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어쩌면 자기 모습이 화살촉의 광적인 신념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최규석 화살촉 일원이나 새진리회 사제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내 결론은 범죄의 피해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로만 채워지는 “표백된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 그렇게 각자만의 슬픔을 많이 품고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 피해당한 약자를 대표하는 또 다른 유형의 인물이 천세형이다. 다만 천세형은 어떤 집단에 가담할 만큼 강한 신념을 지니지 못한 유약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최규석 자칫 너무 갈대 같아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천세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천세형을 설득하는 정진수의 말도 굉장히 섬세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지옥> 시즌1에서 뿜어냈던 교주 정진수의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장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연상호 천세형에게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기저에 아내에 대한 사랑이 동력원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자 점차 내 전작 <사이비>에 나오는 칠성이란 캐릭터와 비슷해지더라. 칠성도 종교에 빠진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종교를 믿고 있는 남편의 역할인데 의외로 <사이비>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바로 그다.

최규석 시리즈와 만화가 달라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천세형에 대한 묘사였다. 내가 그린 만화에서는 점차 감정이 식어가는 무미건조한 부부의 느낌이었다면 시리즈에서는 떠나가는 아내를 향한 애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편의 애틋함이 듬뿍 묻어났다. 배우의 연기가 이렇게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 자신이 믿는 논리를 관철하려는 치열한 설전이 <지옥> 시즌2의 골격을 이룬다. 대사량이 무거운 장면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텐데, 특히 이수경의 경우 대사 소화력으로 정평이 난 문소리 배우의 캐스팅이 전략적으로도 주효한 선택이라 느꼈다.

연상호 문소리 선배님 덕을 정말 많이 봤다. 이수경은 새 시대의 논리에 입각해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쓴 대본이지만 사실 내가 봐도 ‘이게 뭔 말이지’ 하고 집중을 놓치기 쉬운 대사들이 많다. (웃음) 그런데 촬영날 선배님이 동선이나 대사를 처리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점차 내 안에서도 정리가 되더라. 선배님이 언어에 힘을 주고 빼는 지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확실히 대사 전달력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만화의 경우 대사가 길어지는 것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균형이라는 고민을 낳을 것 같다. 어떤 전략을 취하는 편인가.

최규석 만화에서 대사를 길게 쓴다는 것이 정말 위험하다. 대사가 긴 신이 있으면 몇달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송곳>을 그릴 때도 한화가 통째로 강의하는 장면으로만 이루어진 경우가 있어서 그때부터 경험치를 쌓은 것 같다. <지옥> 시즌1에도 정진수가 죽기 직전 한화 내내 혼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고. 대사의 순서나 문장구조를 재배치해보고 어휘도 조금씩 바꿔보며 최대한 독자들의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문장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연상호 얼마 전에 <지옥2: 부활자> 단행본이 나와서 집에 가져갔는데 우리 딸이 재밌게 읽었다고 그러더라.

최규석 그래?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네. 우리 아들은 뭘 보려 하지를 않아요. (일동 웃음)

연상호 엔딩에서 배재현(오은서)이 자기 얘기인 줄 모르고 민혜진의 얘기를 듣는 게 재밌다 하더라.

- 시리즈의 엔딩은 액션 방식이나 민혜진의 마지막 대사 등의 디테일이 만화와 조금 다르지 않나. 이야기의 첫머리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연상호 만화 오프닝이 좀 헷갈리지 않나? 고양이 나왔다가 정진수 나왔다가 박정자 나왔다가. 한두번이면 모르겠는데 세번을 꼬니까. (일동 웃음)

최규석 내가 수미상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엔딩이 배재현으로 끝나니 오프닝도 배재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 나름대로는 <지옥>을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인간은 의미가 없으면 멸종하는 존재”라는 정진수의 말처럼 <지옥>은 의미 부여에 대한 이야기지 않나. 인간 앞에 나타난 여러 자연적 사태의 연결 지점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곧 이야기다. 그래서 엔딩에서도 민혜진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면서 끝이 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지옥> 외에도 앞으로 두분의 협업 계획이 있을지 궁금하다.

연상호 우선 <지옥> 외에 함께 작업한 미공개작이 하나 있다. 그 뒤에는 각자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질까 했지만 요즘 다시 생각이 바뀌는 것도 같고.

최규석 연상호 감독 생각이 하루에도 굉장히 많이 바뀐다. 보통 사람보다 시간이 한 5배는 빨리 가기 때문에. (웃음)

연상호 사실 만화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는 매체다. 함께 작업할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최규석 나는 원래 그리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다만 <지옥>을 비롯해 내가 지금껏 그린 대부분의 작품이 현대물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그리는 재미를 더욱 자극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예컨대 로봇이 나오는 판타지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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