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AI 콘퍼런스에서 부산영상위원회가 창립 25주년 기념 AI 포럼을 열어 AI 기술과 한국 영화·영상산업에 얽힌 세 가지 이슈를 정리하고 토론했다. 발제로는 IT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가 AI 산업의 기술 동향과 한계를 설명했고, 장원익 엑스온스튜디오(XON Studios) 대표가 생성형 AI를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과 디지털 로케이션 촬영의 미래를 점지했다. 황경일 CJ ENM 저작권환경개선 TF장은 AI 기술에 관한 저작권과 창작자의 권리 문제를 짚었다. 마지막으로는 AI 기술의 향후 행보에 대한 발제자 세명의 토론이 이어졌다.
모든 게 바뀌는 시대
“7년 전을 기점으로 AI 기술은 이전보다 100배 빠르게 진보 중이다.” 이경일 대표는 2017년 구글이 ‘트랜스포머’라는 대규모 언어 모델 기술을 개발한 이후에 생성형 AI 기술이 지난 5~6년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진보의 속도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경일 대표는 현재 부산시에 레벨3 자율주행 자동차(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자율주행.-편집자)가 10대 중 1대꼴로 움직이고 있지만, 당장 10년 뒤엔 10대 중 9대의 차가 레벨3~4 자율주행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공지능기술이 지금처럼 변곡점을 맞이하려고 하는 때를 두고 ‘불협화음의 시기’라고 부른다. 급격하게 한 분야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 급격한 성장 혹은 쇠락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경일 대표는 “누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하고, 누구는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뺏을 거라 주장하고, 누구는 시장 전체를 파괴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는 시기”가 지금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인간의 지적 수준과 유사한 AI인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아직 멀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12개로 구분할 때 지금의 AI는 의사소통, 다중 인지 등 3개 분야에서 막 절반의 수준에 도달하려는 참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분야에선 아직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100년간 AI 기술은 인간의 지적 노동을 증강하고 보조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란 게 이경일 대표의 발제 결론이었다.
디지털 로케이션의 급진전
장원익 대표는 현재 생성형 AI 기술이 영화·영상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인 디지털 로케이션 기술의 정의와 현황을 설명했다. 디지털 로케이션은 VFX(시각효과) 분야의 일환으로 가상의 공간이나 인간이 직접 가기 힘든 공간을 버추얼 프로덕션 공정을 통해 촬영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로케이션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ICVFX(인카메라 VFX)는 미술 세트를 기반으로 대형 LED 월 등에 영상을 재생하여 촬영 배경을 더하는 고효율의 방법이다. 최근 <스타워즈> IP 시리즈 <만달로리안>이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화제가 됐다. 둘째는 XR 디지털 로케이션으로 미술 세트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 배경 영상이 피사체와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확장되어 좁은 공간에서 큰 촬영지를 촬영하기에 용이하다.
우리나라엔 2020년을 기점으로 디지털 로케이션 기술이 상용화되며 현재 CJ ENM, 덱스터스튜디오, 엑스온스튜디오, 부산영상위원회 등 22개의 기업과 기관이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거나 설립을 예정하고 있다. 장원익 대표는 현재 디지털 로케이션의 단계를 “실사 프로덕션의 물리적 한계를 생성형 AI의 에셋(디지털 로케이션의 배경 영상 소스.-편집자) 제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계”라고 평하며 “다만 버추얼 프로덕션이 기존의 모든 촬영 방식을 대체할 순 없으며 여러 콘텐츠 제작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하나의 축”이라는 지점도 명확히 짚었다.
AI 창작물은 저작물이 되기 어렵다
인공지능은 예술 콘텐츠의 저작자가 될 수 있을까. 3명의 발제자는 토론 섹션을 통해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먼저 황경일 TF장은 “현재 단계에서 AI 저작물을 정의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AI 콘텐츠가 저작물로 인정받긴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란 정의에 AI 창작물이 얼마나 적용되는지, 콘텐츠 제작에 인간이 어느 정도 비중으로 참여했는지 등 각종 기준이 아직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장원익 대표도 “창작이란 원천적으로 인간의 모방을 통해 시작하고 다른 작품의 스타일과 룩을 참고하는 과정”이므로 “어느 정도까지 AI를 활용하는지 명확한 검증 체계를 만들어야만 저작권 등 콘텐츠 시장을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경일 대표는 “20년 넘게 관련 분야에 종사한 결과, 인공지능이 우리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긴 어렵다”고 단언했다. 완전히 인간을 대체하기보단 인간의 창의적이고 경제적인 활동을 더 이롭게 만드는 도구에 가까우며 누구나 AI 기술을 사용해 균일한 창작물을 만든다 해도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경일 대표는 “차후 3~4년은 세계적으로 MS, 구글 등 거대 기업들의 방향성과 함께 AI 산업이 급변하는 도전의 시기”일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