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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금 여기, 극장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 CJ 무비 포럼 지상중계
남선우 2024-10-17

윤상현 CJ ENM 대표.

“숱한 천만 영화를 배출했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었던 지난 10월4일, ‘CJ 무비 포럼’이 열린 CGV센텀시티의 한 상영관에서 윤상현 CJ ENM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IP 파워 하우스를 꿈꾸는 CJ ENM은 세상을 바꾸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는다.”

CJ ENM, <씨네21>,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주최한 CJ 무비 포럼의 태도도 그러했다.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의 풍경을 직시하고, 그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CJ 계열사 경영진과 차세대 감독들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마련한 이번 행사의 메인타이틀은 ‘새로운 패러다임 탐색하기’(Navigating the New Paradigm). 이 항해는 “연간 1조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지속하겠다”라고 선언한 윤상현 CJ ENM 대표의 오프닝 스피치로 시작해 티빙과 CGV 소비자의 마음을 살핀 1부 ‘인사이트 토크’, CJ 계열사 리더들이 콘텐츠 사업 리부트에 얽힌 고민을 나눈 2부 ‘리더스 토크’,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문장을 필두로 <D.P.> 시리즈 한준희 감독, <LTNS> 전고운 감독, <> 유재선 감독이 한국 콘텐츠의 힘을 논한 3부 ‘글로벌 토크’로 이어졌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은 ‘좋은 이야기’에 있다는 믿음이 모든 대화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조진호 CJ CGV 국내사업본부장.

첫 순서로 조진호 CJ CGV 국내사업본부장, 민선홍 티빙 CCO가 차례로 발표를 맡아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극장과 OTT 소비 형태를 돌아봤다. 우선 조진호 본부장은 2024 영화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는 ‘시성비’로, 이는 투자 시간 대비 만족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조진호 본부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러닝타임이 2시간30분을 넘기는 개봉작이 많아졌으며, 해당 작품 중 일부가 CGV 앱 내 평점 지표인 에그 지수 90%대를 유지했음에도 관객 다수가 ‘지루하다’, ‘길다’ 등의 부정적 리뷰를 남긴 것을 예로 들었다. “영화를 짧게 만들면 흥행한다는 게 아니다. 영화를 길게 만들면 관객이 극장에 방문하기까지 허들이 생길 수 있다.”

두 번째 키워드 ‘서브 컬처의 진화’는 애니메이션과 중소형 아트영화 관객층의 성장을 가리켰다. 2023년에 <엘리멘탈>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있었다면 2024년에는 <인사이드 아웃2>와 <사랑의 하츄핑>이 있다. 2019년까지만 해도 10, 20대 청소년이 전체 애니메이션 관객의 50%를 차지했으나, 현재는 이 비중이 44%까지 줄어 보다 폭넓은 연령대가 애니메이션을 찾고 있다는 지표 또한 유의미하게 포착됐다. 아트하우스 관객의 증가도 CGV아트하우스 클럽 멤버십의 성장세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시장이 점차 둔화되고 있음에도 회원 수가 42만명까지 늘었고, 10, 20대 회원이 그중 65%에 달해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관객의 성향을 다시금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이는 세 번째 키워드인 ‘다양성과 상생’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올해 시장 활성화에 기여한 한국영화 <파묘> <핸섬가이즈> <파일럿>의 장르는 각각 오컬트, 호러 코미디, 사회적인 메시지를 곁들인 코미디로 다채로웠다. 나아가 드라마 시리즈, 브랜디드 콘텐츠와 극장의 협업 사례도 신규 관객 유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최종화를 CGV에서 단체 관람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이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관객 중 지난 1년간 극장에 방문하지 않았던 관객의 비율이 20%였고, 그들 중 45%가 추후 다른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재방문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가 기획하고 배우 손석구가 제작과 주연으로 나선 단편영화 <밤낚시>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뒤이어 티빙의 콘텐츠를 총괄하는 민선홍 CCO가 티빙이 중시하는 세 가지 지표인 구독 기여, 완주율, 시청 순방문자 수를 들어 티빙 콘텐츠의 저변 확대를 짚었다. 티빙 구독에 기여한 장르로는 공포, 스릴러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완주율 또한 <이재, 곧 죽습니다>(81%)나 <피라미드 게임>(80%)과 같이 “결말이 궁금하게끔 만들며, 사건을 추론해가는 재미”가 돋보인 시리즈들이 성과를 드러냈다. 민선홍 CCO는 지난 4년간 여성 구독자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 남성 구독자 상승률이 여성 구독자 상승률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변화가 콘텐츠 다양성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극장, OTT, TV는 시너지 파트너

최주희 티빙 CEO.

2부는 콘텐츠 시장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뛰고 있는 CJ 계열사 리더들의 대담으로 채워졌다. 서장호 CJ ENM 콘텐츠유통사업부장, 이동현 CJ CGV 경영혁신실장,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CEO, 최주희 티빙 CEO가 참석했으며 장영엽 <씨네21> 대표이사가 모더레이터로 나섰다.

‘리더스 토크’의 포문을 연 화두는 제작비 상승과 편성 문제. 서장호 CJ ENM 콘텐츠유통사업부장은 코로나19 이후 드라마 제작비가 두배 가까이 올랐으며, 광고 판매도 하락해 드라마의 수익성이 낮아져 편성 확정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해외 판매에 집중하는 중이긴 하지만 이러한 불황이 국내외를 불문한 현실이기에 빠른 개선은 힘들 것이라는 진단이 잇따랐다. 최주희 티빙 CEO 또한 티빙을 비롯한 글로벌 OTT 업체들이 스포츠 중계, 광고형 요금제 등을 도입해 시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이를 투자의 기반으로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대표도 동조했다. “결국 얼마나 빨리 새 비즈니스모델을 찾느냐가 관건이다. 그때까지 버티기 위해 제작비를 절감해야 할 텐데, 위기를 단기간에 끝낼지 장기간 지속할지 여부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는 “국내 드라마 시장이 물량 경쟁에서 웰메이드 경쟁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전 프로덕션 과정에서 예산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배치해 장르별·규모별 예산 판단의 모델을 연내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서장호 CJ ENM 콘텐츠유통사업부장도 “초기 단계지만 제작비 절감을 위해 AI 기술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과 협업해 해외에서 콘텐츠 인지도를 높이고, 라쿠텐 비키, 아베마 등의 로컬 플랫폼에도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전략”을 추구 중이라고.

민선홍 티빙 CCO.

각사의 글로벌 진출 및 파트너십 구축에 대한 의지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넷플릭스 본사와 <사랑의 불시착> 리메이크 공동제작을 협의 중이며, 일본 방송국 <TBS>와 크리에이터 미팅을 정례화해 IP 기획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한편 CJ ENM은 아직 한국 콘텐츠의 매출이 높지 않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인도 및 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주목한다. “신규 시장 개발에는 더빙 등 다양한 투자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유관 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과도 협업해 한국 콘텐츠를 선보일 새로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다할 예정이다.”(서장호)

리더스 토크에 동석한 리더들은 마지막으로 극장, OTT, 그리고 TV 채널이 서로의 경쟁 상대가 아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대표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좋거나 나쁜 동재>를 소개하며 “CJ가 가지고 있는 리소스를 활용하면 히트 IP를 리니어 채널(tvN), OTT(티빙), 극장 개봉(CGV)으로 전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동현 CJ CGV 경영혁신실장도 “극장은 ‘오프라인 공간’과 이에 기반한 ‘팬덤 결집’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플랫폼과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라며 “최종 결과나 스포일러에 민감한 예능 콘텐츠나 인기 드라마 마지막회 단체관람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관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다양한 협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응답했다. 최주희 티빙 CEO도 거들었다. “시리즈와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공동제작 편성, 영화와 시리즈 동시 기획, 스핀오프와 숏폼 등 IP의 수명주기를 늘리는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 중이다. OTT와 영화관의 특징을 살린 디지털과 오프라인 공간의 협업도 더욱 활발히 진행하겠다.”

여전히 답은 ‘이야기’에 있다

장경익 스튜디오드래곤 CEO.

한준희 감독.

3부 토크는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K스토리텔링의 힘’이라는 주제 아래 펼쳐졌다. 김성훈 <씨네21> 디지털콘텐츠본부장이 진행을 맡았고,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문장, <D.P.> 한준희 감독, <LTNS> 전고운 감독, <> 유재선 감독이 패널로 함께했다. 첫 질문의 초점은 ‘변화’에 있었다. 최근의 산업 환경이 작품의 소재, 장르, 포맷, 타깃 관객 설정에 미친 영향을 묻자 감독들은 일맥상통한 대답을 내놓았다.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비주류라고 인지해왔기 때문에 산업 환경이 변화한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다만 바뀐 시대에도 나와 관객이 재밌어하는 이야기,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파악하고 찾아가려고 한다.”(전고운) “이미 산업이 크게 뒤바뀐 후 데뷔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산업이 변화한다 해도 내가 재밌어하는 이야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려고 한다. 관객의 주의력에 대한 창작자들의 노파심이 이전보다 강해졌기에 어떻게 하면 몰입을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유재선)

반면 CJ ENM 영화사업부는 라인업 확보와 수립에 있어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핵심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과 고유성을 잘 살리면서 변화된 미디어 지형도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작품, tvN·티빙·영화배급 등 여러 플랫폼을 가진 CJ의 내부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작품, 한국 시장 너머 글로벌 시장에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이 가능한 작품”(고경범)을 찾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영화 시장의 사이클을 돌아보면, 2000년대 초반의 양적 질적 성과가 있었고, 2000년대 중반의 급격한 팽창 이후 후반의 침체와 손실, 2010년대 다시 성장이 있었고, 2010년대 후반 급격한 팽창,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침체와 손실이 있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 문제를 일단 접어두고 시장 사이클의 문제만으로 좁혀서 봐도, 지금은 새로운 합리적 사업 구조가 도출돼야 하는 시기다. 적정 제작비 수준, 타깃 관객, 콘텐츠의 방향, 마케팅 방법론 등을 다시 세팅하고, 이전과 다른 기준의 합리적인 사업 구조를 갖춘 작품을 찾고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고운 감독.

<잠> 유재선 감독.

한데 이를 뒷받침할 창작자들은 세대와 시대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전고운 감독은 앞선 세대 감독들의 영화에서 느낀 ‘기세’를 예로 들며 그들의 작품에서 문화를 선도하는 아우라를 느낀 반면 지금 세대는 눈치 볼 것이 많아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았다. 한준희 감독 또한 전적으로 연출자의 말을 경청하면서 제작하기 힘들어진 환경을 짚었다. “이제 감독이 기획자, 투자자와 시장에 대해 함께 논의해야 더 젊고 유니크한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이에 고경범 부문장은 해외 시장에서 주목한 한국영화의 경향을 설명하며 창작자들의 건투를 빌었다. “북미 영화인들이 한국의 이야기나 크리에이터에 주목하는 점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하이브리드 장르에 능해서 신선하면서도 풍부한 스토리를 만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보편적인 영화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문화적 고유성을 갖추고 있어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기생충>이 그런 작품이고, 블랙코미디와 사회 드라마, SF적 상상력이 유기적으로 혼합된 <지구를 지켜라!>도 그런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 남을 모방하거나 그들의 시선으로 창작의 기준을 수정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와 영상언어로 만드는 게 더 유효하지 않나 싶다. <기생충>과 같이 한국영화 자체를 세계로 유통하거나,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준비 중인 인도네시아영화 <사탄 슬레이브>처럼 이미 검증된 스토리를 감독과 함께 동반 진출시키거나, 10개 언어로 리메이크된 <수상한 그녀>처럼 보편성이 있는 스토리를 여러 로컬 영화로 확장하는 등 한국 창작자들이 각자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내면 CJ ENM이 각 작품의 성격에 적합한 방식으로 해외로 확산하는 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포럼은 고경범 부문장이 CJ ENM의 향후 라인업을 알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2025년 공개 예정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 영화 <조작된 도시>를 OTT 시리즈로 리메이크하는 <조각도시>, 노덕 감독이 참여하고 내년 상반기 티빙에서 선보일 <내가 죽기 일주일 전> 등과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부고니아>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 대화의 산물이 극장과 OTT를 어떻게 풍요롭게 밝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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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