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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3호 [인터뷰] ‘순도 높은 기쁨과 슬픔’, <이별, 그 뒤에도> 배우 아리무라 가스미, 사카구치 겐타로
박수용 사진 박종덕 2024-10-05

봄날의 홋카이도의 풍광, 집과 직장을 오가는 열차의 경적, 차분히 내린 커피의 향. 감각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난연한 화원 위에서 사랑을 잃은 여자와 심장을 얻은 남자가 만난다. 일본 멜로의 대표 주자 아리무라 가스미와 사카구치 겐타로의 조합은 환상의 설정을 품은 연애담인 <이별, 그 뒤에도> 에 당장이라도 만져질 듯 구체적인 정서의 밀도를 더한다.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창가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모든 답변에 앞서 서로의 의향을 살피며 한 마디 한 마디 신중을 기했다. 그 모든 눈길과 말결에 사랑이라는 불공평한 운명의 장난을 성실히 마주하는 두 주인공의 순수한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 <나라타주> <그리고, 살아간다> 등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연기의 측면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부분이 있을까.

아리무라 가스미 동료 배우로서 파장이 맞는 느낌이다. 함께 있을 때도 자연스럽고, 함께 여러 작품을 겪어낸 전우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웃음)

사카구치 겐타로 <나라타주>에는 무겁고 힘든 신도 꽤 있었지만 아리무라 가스미 배우와 함께 촬영할 때만큼은 연기에서 어떤 불필요한 마찰이 작용하는 듯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것이 좋은 연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 작품의 배경인 홋카이도와 하와이는 온도감도 풍경도 정반대다. 로케이션에 따라 연기의 호흡도 달랐을 것 같다.

아리무라 가스미 홋카이도에서 4개월간 촬영을 진행했다. 긴 체류 기간 덕분에 마치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1개월 정도 체류한 하와이는 햇빛과 색감 등 일본과 전혀 다른 이색적인 풍경이 오감을 자극했다. 로케이션이 주는 힘을 실감했다.

사카구치 겐타로 햇살이나 바람의 사소한 차이도 대사의 에너지와 연기 방식의 큰 변화를 낳는다. 추운 곳에서는 몸에 힘이 들어간다거나, 따뜻한 지역에서는 몸이 풀리며 자연스레 목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로케이션의 도움을 받아 연기했다는 생각이 든다.

- 나루세는 이식받은 심장에 의해 사에코에게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을 느낀다. 자발적으로 투신하는 사랑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카구치 겐타로 나루세가 자기 몸에 들어있는 유스케의 심장을 느끼는 미묘한 감각을 연기로 표현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배역 중 가장 정답이 없는 연기를 마주한 느낌이 든다. 나루세가 내리는 선택이 실은 유스케의 선택일지도 모르고, 분명 잘못된 선택을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택이 정답이면서 동시에 오답인 모순에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과 촬영감독 등 나루세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스태프와 대화하며 다각도에서 인물을 구축해 나갔다.

- 사에코는 삶의 목표가 “일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 말한다. 한편으로는 감정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에코를 이루는 성실함과 솔직함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아리무라 가스미 사에코를 연기하며 언제나 자신에게 솔직한 여성상을 목표로 삼았다. 기쁨과 슬픔, 분노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순도 높게 정제해 내려 했다. 일을 대할 때에도 사에코는 순수한 즐거움에서 태어나는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 커피와 일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여러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클라이언트와 대화하며 눈이 반짝이는 것처럼 일하는 사에코에게서 힘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 두 인물 모두 밝은 천성의 소유자이지만 그간 겪은 일들로 인한 슬픔이 얼굴에 문득 어른거리곤 한다. 비감 속에 순식간에 들어갔다 빠져나오는 연기가 까다로웠을 것 같다.

아리무라 가스미 사에코가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에 가 닿으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대본을 읽으며 정리한 후 수많은 연습을 거쳤다. 무엇보다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사에코 본래의 모습을 마음 깊이 새긴 채 연기했다. 결코 흔들리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마음속의 심지가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사카구치 겐타로 투병 당시의 나루세는 언제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회복 후의 그에게는 오히려 그 이전의 불안한 나날들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사에코도 동료들에게는 멀쩡한 척하지만 혼자 남았을 때는 “유스케가 없으면 재미없어”라고 외치지 않나.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값진 순간들이다. 그 지점을 정직하게 마주하다 보면 섬세한 표정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을 느낀다.

- 새 생명을 얻은 나루세는 출퇴근길이나 구내식당 등 일상의 가장 사소한 풍경에서 기쁨을 느낀다. 두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일상의 순간은 무엇인가.

아리무라 가스미 작품이 끝난 후 기존의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아침에 즐기는 여유로운 커피 한 잔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

사카구치 겐타로 내게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워낙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함께 모여 북적북적하게 밥을 먹을 때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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