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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씨네21>의 추천작 가이드 ②
씨네21 취재팀 2024-10-01

클라우드 Cloud

구로사와 기요시/일본/2024년/124분/길라 프레젠테이션

요시이(스다 마사키)는 온라인상에서 ‘라텔’이란 이름의 리셀러로 활동한다. 물품에 관계없이 매진 행렬을 기록하지만 특별한 전략은 없다. 대량 구매한 물건을 비싸게 되팔 뿐이다. 요시이가 질보다 양을 중요시한 결과로 일부 소비자들이 판매한 물건의 품질에 관해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에 집결한 소비자들의 분노가 거세지며 요시이는 순식간에 불특정 다수의 표적이 된다. 외진 곳으로 사업지를 옮긴 요시이는 그의 일상을 위협하는 비가시적인 존재들을 서서히 감지한다. <클라우드>가 묘사하는 집단 광기는 가해자들이 요시이를 분노 발산의 수단으로, 그를 공격하는 과정을 일종의 게임으로 여긴다는 데에서 진정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요시이를 향한 분노는 주체와 시작점이 명확하지 않다. 가해자 중엔 요시이의 성공을 시기하거나 그와 마찰을 겪은 이들도 자리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신원을 서둘러 밝히지 않는다. 가해자와 요시이의 대면이 유예된 만큼, 요시이를 제외한 주변인들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너의 악몽이 되겠다”라는 한 가해자의 말은 그래서 더 섬뜩하다. 연쇄적으로 발생한 증오는 종국엔 피해자에게까지 옮겨붙는다. 화를 표출할 수만 있다면 타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서로를 향한 총격 신이 신랄하게 이어진다. 공포, 분노, 의심이 복잡하게 뒤얽힌 스토리가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요시이 역의 스다 마사키와 연인 아키코를 연기한 후루카와 고토네의 몫이 크다.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조현나

마이 선샤인 My Sunshine

오쿠야마 히로시/일본, 프랑스/2024년/110분/특별기획 프로그램 :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

눈 덮인 시골 마을. 타쿠야는 아이스하키팀에 속해 있지만 아이스하키에는 그다지 재능도 열정도 없다. 야구도 썩 잘하지 못하는 그는 그저 단체 생활을 위해 스포츠에 참여하는 소년이다. 어느 날 타쿠야는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에 맞춰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소녀 사쿠라를 보고 반한다. 사쿠라의 코치를 맡은 아라카와는 타쿠야가 스케이팅에 잠재력을 갖고 있고 사쿠라와 함께 아이스 댄스 페어를 이루면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고 믿고 새로운 훈련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합 준비에 매진하던 세 사람의 여정은 그들의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마이 선샤인>은 두 소년, 소녀와 아라카와의 마음에 부는 미풍과 파열을 우아한 피겨 안무처럼 옮겨내는 영화다. 파스텔 톤의 몽환적인 화면이 담아낸 계절의 변화와 인물의 감정이 은은하게 잔상을 남긴다. <나는 예수님이 싫다>(2018)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이 연출했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임수연

글로리아! Gloria!

마르게리타 비카리오/이탈리아, 스위스/2024년/106분/월드 시네마

1800년 이탈리아 베니스, 고아 소녀들을 돌보며 성가대 등 음악을 할 수 있게 가르치던 수녀원이 있다. 이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테레사는 우연히 지하실을 청소하다 예배장의 지배자 펄리나가 숨겨둔 피아노를 발견한다. 그는 피아노를 재미 삼아 연주하다 자신이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새로 취임한 교황이 수녀원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펄리나는 이를 기념해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그에겐 좋은 곡을 만들어낼 만한 능력이 없고, 대신 테레사와 수녀들이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글로리아!>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남성 권력에 맞서는 페미니즘 서사로서, 예정된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 뮤지컬 시대극으로서 신나는 쾌감을 선사한다. 이탈리아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마르게리타 비카리오의 감독 데뷔작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 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다. /임수연

환희의 얼굴

이제한/한국/2024년/126분/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환희의 얼굴>은 단편소설처럼 목차를 비추며 주인공 환희와 연결된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보여준다. 환희는 곳곳에 존재한다. 하루는 가까운 선생님에게 다짜고짜 돈을 빌려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고, 또 하루는 제주 식당에서 동료에게 크림브륄레와 퐁당오쇼콜라를 비교·설명하며 오픈을 돕는다. 유학을 고민하는 남자와 그의 엄마 이야기를 순순히 들어주기도 하고, 책 서문에 쓰인 이야기가 자신을 가리키는 줄 알고 대뜸 작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영화 전체를 동요시키는 큰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작고 사소한 사건과 일상적인 환기를 반복해 매듭지으며 환희를 통해 보편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특히 장면에서 필요 인물을 카메라가 오랫동안 응시하면서 프레임 바깥에서 대답하는 상대방을 비추지 않는 방식은 두 인물의 관계와 역사, 상호작용에 집중하게 만든다. 전작 <소피의 세계>로 섬세한 세계관을 구현해낸 이제한 감독의 에너지가 충분히 느껴진다. /이자연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한국/2024년/114분/뉴 커런츠

젊은 선원 용수가 물에 빠져 실종된다. 평화로웠던 어촌 마을은 발칵 뒤집히지만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자식을 기다리며 바다만 바라보는 어머니와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하게 된 베트남인 아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늙은 선장은 예외다. 용수를 대신해 얼마 전 낙향한 다른 선원이 일을 시작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실종이 용수의 자의적 선택이었다는 것을 모두 밝힌 채 시작한다. 미스터리 대신 이 영화가 제시하는 볼거리는 받쳐놓은 돌이 빠진 자리에 모난 돌이 들어오며 연쇄적으로 붕괴하는 공동체의 속살이다. 분노의 이동 경로 위에 소외계층의 현실을 촘촘히 배치한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에 이어, 박이웅 감독은 성실하고 야심차게 한국 지방 사회의 현주소를 인물들의 표정 위에 빼곡히 기록한다. 쇠락해가는 지방 어촌의 폐쇄성과 이익공동체의 병폐, 국제결혼과 이민자를 향한 편견, 맹목적인 모성과 폭력적인 부성의 보완재로서 이웃의 역할까지 일필휘지로 그려낸다. 여기에 마을의 균열을 사정없이 들쑤시는 배우 윤주상의 열연은 다단한 드라마 속에서 자칫 과열되거나 휘발될 수 있는 긴장감을 훌륭히 조타한다. 그리고 그 끝에, 누군가는 10년이 넘도록 가슴 치며 바라보는 미결의 항(項)이자 한국 사회가 응시하는 기억의 부동항(港)으로서의 바다가 있다. 여기서도 박이웅 감독은 예의 미더운 직설을 발휘한다. 하룻밤이나마 재회의 창을 열어주는 것, 그렇게 오래 잃은 웃음을 되찾아주는 것이 영화의 권능을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믿는 순수하고 고마운 마음이 담겼다. /박수용 객원기자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

박송열/한국/2024년/97분/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전작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에서 구직난을 겪으며 300만원에 매여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던 영태(박송열)와 미주(원향라) 부부에게 드디어 작고 소중한 월세방이 생겼다. 게다가 친척으로부터 싼값에 식당을 넘겨받은 선배가 무일푼인 영태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이전보다 나아진 상황에 부부는 임신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다. 그러나 선배는 돌연 제안을 철회하고, 난처해진 영태는 고뇌 끝에 “키케가 홈런을 칠 거야”라는 메모를 남긴 채 돈을 벌러 떠난다. 홀로 남겨진 미주는 남편의 성공을 기원하며 꿋꿋하게 돈을 벌며 살아간다. 대체 영태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가 집을 비운 뒤로 미주의 일상에 자꾸만 기묘한 꿈들이 끼어드는 경우가 잦아졌다. <키케가 홈런을 칠거야>에 이르러 박송열은 한국에서 먹고사는 이야기를 가장 빼어나게 담는 감독으로 거듭났다. 3년 전 부산을 찾았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경제적인 연출로 돈의 심리적 태도를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스스로 정해놓은 몇 가지 규칙을 흥미롭게 위반하며 담론을 확장한 모양새다. 부동산 규제가 폐지된 세상 속에서 아내의 이름은 정희에서 미주로 바뀌었고, 영태는 존엄을 지키기보다는 무모한 야심을 품으려 한다. 무엇보다 익숙한 부부의 현실 위로 꿈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투사시키는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돈에 대한 확고한 태도다. 박송열, 원향라 부부가 가내수공업으로 빚은 이 엉뚱한 ‘먹고사는 이야기’는 번뜩이는 작가의 탄생이라 확언할 수준에 이르렀다. /최현수 객원기자

수연의 선율

최종룡/한국/2024년/108분/뉴 커런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수연의 나이는 겨우 열세살이다. 행방불명자로 확인된 할아버지의 주민등록은 곧 말소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은 재개발 지역 보호수 이전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자신을 받아줄 거라고 기대했던 이웃이나 친구의 부모도 그의 새로운 보호자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러다 수연은 우연히 유튜브에서 표면성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 선율을 입양한 부부의 브이로그를 접한다. 아이를 한명 더 입양할 계획이 있다는 말에 희망을 품은 그는 의도적으로 어린이집을 나오는 선율에게 접근한다. <수연의 선율>은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열세살 수연과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일곱살 선율의 기묘한 연대를 축으로 예상 가능한 듯 가능하지 않은 영리한 플롯을 펼쳐낸다. 납작하고 수동적인 어린이 피해자 묘사를 벗어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묘사하며 주인공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 과정에 얽힌 사연을 모두 설명하거나 굳이 재현하지 않음으로써 고통의 이미지를 과잉 반복하지 않고 보호와 양육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미덥다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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